삶의 이야기

옷과 신앙인

부산갈매기88 2011. 4. 4. 08:32

46억 짜리 집에 사는 한 재벌 내노라하는 재벌과 권력가의 부인들이 모이는 상류층 모임에 나들이를 나갔습니다. 세트당 2백만 원에 이르는 팬티와 브래지어 등 맞춤 속옷을 입고, 300만원 하는 원피스을 입고 1백만원 가는 헨드백을 들고, 50만원하는 벨트를 찾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1억원짜리 이탈리아제 밍크코트를 걸쳤습니다. 물론 손가락에는 2억원하는 반지가 빛을 반짝이고 있습니다. 현관을 나서자 1억 8천만원 하는 차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한참 가는데 티코가 끼어 들었습니다. 경종을 울렸습니다. 비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티코는 아무 말 없이 천천히 제 갈 길을 갔습니다. 화가난 부인은 운전사에게 "빨리 달려요! 시간이 늦었어요. 티코하나 못 밀어내고 뭐해요 "라고 채근하였습니다. 운전사는 가속 페달을 밟았습니다. 곡예 운전을 하였습니다. 중앙선을 넘나들었습니다. 결국 앞에 오는 장의 버스와 정면으로 부디 쳤습니다. 뒷 좌석에 타고 있던 부인은 "억, 억, 억 ......"하며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습니다.

가상적인 이야기입니다. 요즈음 "고급옷 로비설"이 매스컴의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선물했는지, 사달라고 했는지, 아니면 중재자가 거짓으로 선물해달란다고 말했는지, 그것도 아니면 거짓으로 선물해 달라고 했다고 소문을 퍼뜨렸는지 세인들은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연일 매스컴은 베일에 가려있던 재벌과 고관부인들의 사생활과 뒷 얘기가 무성합니다.

의혹의 발원지는 고위직 부인들이 단골로 드나든다는 라스포사였습니다. 이 점포는 초일류 범주에는 들지 못한다고 합니다. 장관부인과 재벌회장 부인들이 주로 애용해온 옷 집은 이보다는 좀더 품격있기로 알려진 부티크들이 있다고 합니다. 국내 디자이너 중에서 가장 비싼 옷을 만들고 있는 부티크로는 이광희 부티크와 앙드레 김, 박윤정(미스박 테일러)이 꼽힌다고 합니다. 보통 정장 한 벌에 150만~300만원 정도이고 극소수만 생산하여 판매한다고 합니다. 많이 팔면 부인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옷은 사람에게 많은 영향력을 줍니다. 독일 시인 릴케도 [말테의 수기]에서 "그 무렵 나는 어떤 특정한 의상으로부터는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한 의상을 몸에 걸치게 되면 금방 그 힘에 지배당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거동도 표정도 사고까지도 그것에 영향을 받는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옷이 날개일 뿐 아니라 마음도 새롭게 변화시킨다는 이야기입니다. 의복에 관련된 인간의 심리상태를 이론적으로 연구, 정립한 학문이 의복 심리학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의복 심리학의 권위자인 이인자 교수는 "의복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의 성격, 가치관, 자아개념, 감정상태, 연령, 성, 소속, 기분, 직업 등을 나타내는 중요한 매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부와 지위, 가치를 옷을 통하는 표현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처칠도 늘 비싼 돈을 치르고 양복을 맞춰 입었다고 합니다. 한 젊은 의원이 "나 같으면 그 돈으로 기성양복을 몇 벌 더 사서 입겠다"고 말하자 처칠은 대답하기를 "나는 비싼 돈으로 옷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옷을 만드는 사람의 인격을 사는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이번 사건에 드러난 재벌 부인이나 고관 부인들이 "우리가 옷 사는 것을 왜 이렇게 공론화하는냐?"라고 불쾌하게 생각하면 안될 줄 앎이다. 옷에도 윤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일하게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 중에서 인간에게 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본래 최초의 사람인 아담과 하와는 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벌거벗었지만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불편하지 않았습니다(창 2:25). 그러나 죄를 짓고 나서부터 그들은 나뭇 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창 3:7). 옷은 범죄 후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어 사람들이 만든 옷을 벗기시고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서 입혔습니다(창 3:21).

 

하나님은 옷을 만들어주심으로써 죄를 범한 인간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옷은 죄를 짖는 수단이나 죄를 은폐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우리의 생명을 보존하고 아름다움을 가꾸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옷 입는 문제로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들의백합화를 예로 들며 책망하셨습니다(마 6:25-28). 바울도 옷을 탐내지 않았음을 고백했습니다(행 20:33). 바울은 옷차림에 대해“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딤전 2:9)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다양하게 변화하는 문화 속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선한 것이고 삶의 풍요가 되겠지만 옷이 죄의 수단이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불행하게도 이번 사건의 주인공들은 모두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옷은 뇌물의 수단이 되어서도 안되고 죄를 짖는 도구나, 신분과시의 수단, 수치의 도구가 되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

옷과 신앙인/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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