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 만물박사

한국 크리스마스 씰의 역사

부산갈매기88 2011. 10. 14. 08:07

  한국에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씰을 개발하고 이를 보급, 판매하기 시작한 이는 누구일까? 해마다 12월이면 접하는 이 의문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1890년에 내한한 캐나다 출신 여의사 로세타 셔우드(Rosetta Sherwood)는 한국 최초의 여성을 위한 병원인 보구녀관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국 도착 즉시 "여성을 위한 의료사업은 여성의 힘으로"라는 표어를 내걸고 여성을 위한 의료교육을 시작하였다.

 


  1891년에는 역시 캐나다 출신 의시이자 목사인 홀(William J.Hall)이 내한 하였고, 그는 평양에서 의료활동을 시작하였다. 그후 그는 앞서 내한한 셔우드 와 서울에서 결혼하였다. 홀 의사는 청일전쟁 당시 만연하던 콜레라와 장티푸스 등 전염병 치료에 몰두하다가 과로에 학질이 겹쳐 1894년 11월 24일 사망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는 약관 34세였다. 한국에 온지 꼭 3년만이었다.


  미망인 로세타 셔우드에게는 겨우 돌을 지낸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셔우드 홀이었다. 이때 그녀는 또 임신 7개월째였으므로 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1897년 그녀는 아들 셔우드와 딸 에디스를 데리고 다시 한국 선교사로 나왔고 남편을 기념하여 평양에 병원을 설립하였다. 이것이 기홀병원(The Hall Memorial Hospital)이다.


  어미니와 함께 평양에서 살던 셔우드는 그의 나이 18세 때인 1911년 미국으로 건너가 마운트 유니온대학을 거쳐 토론토 의과대학에서 의학교육을 받고 의사가 되었다. 역시 의사였던 마리안 버텀리(Marian Bottomly)와 결혼한 그는 아버지를 이어 선교사의 신분으로 1926년 내한하였다.


  처음에는 해주 구세병원에서 일하면서 해주 의창학교 교장직을 겸임하였다. 그후 그는 조선에서 수많은 사람이 결핵으로 죽어가는 것을 보고 결핵의 퇴치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당시 폐결핵은 사형선고와도 같은 것이었기에 결핵퇴치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는 조선에서는 최초로 결핵요양원인 구세요양원을 1928년 해주 교외 왕신리에 설립하게 된 것이다.


  그뒤 결핵협회(The Tuberculosis Association)를 조직하고 1932년 12월부터 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크리스마스 씰의 기원이 되었던 것이다. 크리스마스 씰, 그것은 홀 의사의 한국인 사라의 씰이었다. 그는 선교사로 내한한 이래로 1940년까지 14년간 한국에서 값진 봉사를 하였다. 일제에 의해 마지 못해 한국을 떠났던 그는 인도로 가서 23년간 선교사로 봉사한 뒤 1963년 은퇴하였다.


  본국에서 노후를 보내던 홀 의사는 여러 사람들의 권유로 1978년 『With Stethoscope in Asia, Korea』라는 자서전을 출판하였는데 이 책은 『닥터 홀의 조선 회상』이란 제목으로 역간되었다. 그는 1992년 98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고, 그 유해는 유언에 따라 양화진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