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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상도 마다한 '기부왕' 경비원

부산갈매기88 2013. 1. 23. 09:03

경북 구미 이승형씨 월급 200만원 중 50만~100만원 적십자 등 5개 기관에 기부
"기부는 우주만물에 보험드는 일"

지난 12월 5일 인천 송도 컨벤시아. 행정안전부가 주최한 제7회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 시상식이 열렸다. 자원봉사 유공자와 단체 등 244명이 훈·포장과 대통령, 국무총리, 행정안전부장관상을 받았다. 경북 구미의 한 회사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이승형(67)씨는 국무총리상 수상자였다. 하지만 이씨는 이날 시상식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씨 등 총 3명을 추천한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추천을 받아 이승형씨를 만났던 지난 6월부터 이씨는 한사코 시상식 참석을 거절했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구미의 회사에서 만난 이씨. 그의 한 달 월급은 200만원 남짓인데, 박봉을 쪼개 한 푼 두 푼 기부해온 것이 14년째다. 그동안 기부한 금액만 1271만원. 적십자사 관계자는 "금액 자체가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자신도 어려운 환경에서 수입의 일부분을 떼어 내 꾸준히 남을 도와온 삶이야말로 기부의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14년째 경비원 월급을 쪼개 지금까지 1200여만원을 적십자사에 기부한 이승형씨. 이씨는 지난해 12월 행정안전부 주최 제7회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 시상식에서 국무총리상 수상을 거부하고 불참하기도 했다. /남강호 기자
이씨는 상이용사(傷痍勇士)다. 제대 6개월을 앞두고 사고를 당해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이씨는 "장애 때문에 상심해 15년 동안 폐인으로 살았다"며 "술도 많이 먹고 싸움도 많이 했고, 요샛말로 완전 주폭이었다"고 말했다. 전남 목포에서 문구점을 했지만, 술로 세월을 보냈다. 방황하던 이씨를 잡아준 것은 신앙심 깊은 장모였다. 이씨는 "3개월 동안 교회에 들어가 숙식을 하며 마음을 닦았다"며 "그 뒤에 운명을 바꾸는 데 마음이 우선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기부를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처음에는 동사무소에 1만∼2만원을 기부했다. 1999년부터는 적십자에 기부를 시작했다. 이씨는 "처음에는 매달 2만원씩 보냈다"며 "우울하고 침체돼 있다가도, 통장에 돈 넣고 은행에서 나오면 몸이 풍선같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해가 거듭되며 이씨의 기부는 점점 커졌다. 매월 조금씩 돈을 모아 50만∼100만원씩 보냈다.

이씨는 지금 적십자뿐 아니라 5곳의 기관에 조금씩 기부를 하고 있다. 박봉을 쪼개 꾸준히 기부를 계속해 올 수 있었던 것도 이씨가 가진 나름의 '기부 철학' 덕분이다. 그는 "물 좋고 경치 좋은 데 가서 맛있는 거 먹는 것도 즐거움이지만, 먹고 즐기는 건 본전 생각난다"며 "기부는 하는 내내 살아있는 기쁨"이라고 말한다. 가족에게도 그의 철학을 전파하고 있다.

"자식들 만날 때마다 남을 생각하며 살자고 얘기해요. 물려줄 것도 없지만, 재물 상속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누구나 탐을 내지만 마음 속에 있는 상속은 형체도 없고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사기당할 일도 없고, 도둑이 와서 훔쳐갈 일도 없잖아요. 기부는 우주 만물에다가 보험을 들어놓는 것이기 때문에 남한테 사기당할 일도 없다는 말을 (자식들에게) 많이 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