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지리산(1,915m)
★산행일시: 2017. 1. 21. 토. 맑은 후 오후 흐림
☢산행 참석자: 부산백산산악회원 42명(방랑자, 황령산, 동방, 블랙이글, 금호지, 동무, 인선, 태평양, 한사랑, 새콤달콤, 태영, 야초, 몰운대, 가을바람, PINE, 스마트, 미산, 파앗, 호두, mountain99, 정용대, 은수, 청림, 은하수, 즐거운 산행, 윤호, 임하, 일식, 윤슬, 수피아, 박영상, 이진섭, 운해, 부산갈매기 외)
●산행 코스: 중산리 매표소~칼바위~유암폭포~장터목 대피소~제석봉~천왕봉~천왕샘~개선문~법계사~로타리산장~망바위~칼바위~중산리 매표소
◔시간대별 산행코스:
09:45 중산리 매표소 출발
09:50 통천길 입구
1016 칼바위
10:20 구름다리/법계사 갈림길
11:01 이정표(중산리 2.6km/장터목 대피소 2.7km)
11:43 유암폭포
12:59 장터목 대피소(식사 30분)
13:53 제석봉
14:06 이정표(장터목 대피소 1.0km/천왕봉 0.7km)
14:22 통천문
14:48 천왕봉
15:10 천왕샘
15:20 개선문
16:00 법계사
16:02 로타리산장
16:35 망바위
17:10 구름다리
17:14 칼바위
17:40 통천길 입구
17:50 중산리 주차장
★산행 시간(후미 기준): 7시간 05분(점심식사 30분, 기타 휴식 30분)
<순수 산행시간: 6시간 05분>
◍산행거리: 11.9km(GPS)
◎교통편: 신부산고속 전세버스
▶산행 tip: 백산 산악회 제 301차 정기산행은 지리산 천왕봉을 찾아갔다. 새해가 되면 으레 지리산 정기를 받으러 갔었는데, 올해 첫 정기산행은 민족의 영산 태백산으로 마수걸이를 했다. 지리산은 무엇보다 남성미가 넘쳐 눈이 내리면 환상적인 설경을 연출하기에 가고 싶은 산이다.
산행 들머리는 중산리 매표소에서 시작을 하지만, 매표소 가기 전 [머물곳 펜션]에서 하차를 하여 10여 분 걸어올라 가야 한다. 지리산 관리사무소 중산리 분소에서 산행채비를 갖추어 칼바위~유암폭포~장터목 대피소까지 3시간여 걸어 올라간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중식을 한 후 제석봉으로 오르며 설경을 즐긴다. 제석봉에서부터는 칼바람이 매섭게 분다. 제석봉에서 천왕봉 아래의 통천문까지 숨 막히는 설경에 마음이 녹는다. 감동의 물결이다. 또 서쪽에서 살아 움직이는 구름의 활발한 움직임에 더 큰 감동의 물결이 밀려온다. 시리고 아리는 바람의 위력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천왕봉 정상에서 인증샷을 한다. 매서운 추위에 정상에 오래 머무를 수가 없다. 곧바로 법계사 방향으로 하산을 서두른다. 정상에서 1시간 여 걸려서 법계사에 도착한다. 로타리 산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통천길 입구까지 1시간 반 걸려 돌길과 너덜길을 따라 하산을 한다. 1시간 이상의 돌길에 최악의 시간을 맞이한다. 7시간여의 산행은 끝이 난다. 설경의 감동은 가슴에 살아 있고 용틀임을 한다. 힘겨웠지만 천상의 눈 축제를 즐긴 산행이었다.
♣원하는 만큼 소원은 이루어진다.
새해의 부푼 희망을 안고 지리산 중산리로 향한다. 어제 지리산에는 눈이 내렸다고 하기에 잔뜩 기대를 한다. 단성을 지나 중산리로 가는 도중의 지리산 정상은 하얀 고깔모자를 둘러쓰고 있다. 그러면 그렇지. 원하기에 소원은 이루어지나 보다. 버스 안은 약간 흥분이 된다.
중산리로 접어들어 매표소 가기 전의 [머물곳 펜션] 앞에서 하차를 한다. 그 펜션은 사촌 동생이 운영을 하고 있다. 깨끗한 펜션이 한 눈에 들어오건만 산행 일정 때문에 들르지 못해 아쉽다. 거기서 중산리 매표소까지 10여분 지름길인 산으로 가로질러 간다. 산에는 하얀 눈이 수북히 쌓여 있다. 매표소에서 산행채비를 한다고 아이젠을 신지 않고 오르니 산길은 조금 미끄럽다. 매표소에 도착하니 골바람이 싸 하게 지나간다. 일행들은 화장실을 다녀오고 분주하게 산행채비를 갖춘다. 매표소 입구에서 단체 인증샷을 한다. 매표소에서 칼바위로 오르는 통천길 입구까지는 5분 정도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야 한다. 예년 같으면 [통천길]이라고 쓰인 입구 간판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고 지정거렸는데, 올해는 대부분 통과를 한다.
♣지뢰밭길 같은 통천길
[통천길] 입구에서 칼바위까지 25분여 돌길과 바위틈을 헤치며 올라간다. 어제 내린 눈이 길에 깔려 있고 돌길이라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지뢰밭 길을 피해 가듯 요리조리 바위틈새를 비켜간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가지만 몸이 달아올라 하나 둘씩 겉옷을 벗어 배낭에 챙겨 넣는 일행도 있다. 예상한 것보다 푸근한 날씨다. 봄 날씨 같다. 이렇게 백산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는 하늘이 감사할 따름이다. 하얗게 눈이 덮이어 있는 개울에는 졸졸 거리는 물소리가 골짜기를 울리고, 구멍이 숭숭 뚫린 냇가 개울 길옆에는 산죽이 파릇파릇하게 독야청청하고 있다. 나목은 겨울의 부대낌에 이파리를 다 떨구고 서 있고, 산야의 대지 위에는 하얀 솜이불이 뒤덮여 있다. 목가적인 풍경에 마음은 편안해진다.
그 고요함을 즐기기라도 하듯 일행은 말이 없다. 발아래에서 눈을 밟을 때 나는 사각거림이 겨울 속의 봄 같은 느낌이다. 칼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고 잠시 소란스럽다. 무딘 칼 모양인가, 아님 부러진 칼끝인가. 누군가 지어준 그 이름에 고개를 끄덕거려 볼 뿐이다. 교대로 사진을 찍는다. 그 사진 속의 얼굴이 되어본다. 지나가는 궤적을 남긴다는 것은 산꾼에게 중요하다. 이 길이 행여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기에. 그렇게 산길마다 애정이 간다. 칼바위에서 3~4분을 오르면 구름다리가 나타난다. 그 구름다리를 건너면 장터목 대피소와 법계사로 오르는 삼거리길이다. 여기서 오늘 법계사로 길을 잘못 든 일행이 몇 명 있었으니.
♣시간이 멈추어버린 빙폭
그 삼거리 길에서 왼쪽의 계곡을 따라 장터목 방향으로 오른다. 계곡의 졸졸 거리는 물소리도 때론 친구가 된다. 그리고 냇가의 소폭이 흘러내리다 고드름이 된 것도 있고, 두텁게 빙벽을 형성한 것도 있다. 이제 선두조와 후미조의 간격은 조금 벌어지고 있다. 운해님의 무전기가 그것을 확인시켜 준다.
계곡을 가로질러 철 계단이 놓여 있고, 오른쪽으로 암벽이 가로막기도 한다. 그 암벽 사이에 놓인 철 계단. 누군가의 헌신과 땀 흘림이 있었기에 편안히 산을 오른다. 수많은 산꾼들이 산을 오르지만 그 땀방울을 기억해 줄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늘 편안함에 길들어져 당연함으로 받아들이고 있기에. 삼거리 갈림길에서 50분 정도 올라가면 너럭바위가 나온다. 일행은 잠시 그곳에서 목을 축인다. 고갈된 에너지를 충전하기도 한다. 후미조들이 합류한다. 산은 빨리 가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산속에 박혀 있는 돌 하나하나의 의미와 나무 한 그루의 나이테를 아는 것도 뜻 깊다. 그들도 지리산과 함께 나름의 세월 지킴이기에.
조금씩 고도를 높여 오르면 제석봉 아래의 산허리가 보이는 너덜지대가 나타난다. 냇가에 바위들이 여기저기 흐트러져 있는 곳. 산꾼들은 바위 몇 개를 주워 돌탑을 만들어 놓고 갔다. 사람들은 지나간 발자취를 남기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돌에 이름을 새기기도 하고, 돌탑을 쌓아 두기도 하고. 그곳에 서면 뒤편으로 머리에 하얀 수건을 눌러쓴 산꼭대기를 만나게 된다. 그 하얗게 뒤집어 쓴 산꼭대기의 마력에 끌리어 한두 사람씩 미래 시간의 주인공이 된다. 훗날 그 사진을 바라보면서 옛날을 추억을 더듬게 될지도.
이제 다리를 건너서 7~8분 오르면 유암폭포가 나온다. 그 시간이 멈춘 얼음폭포가 눈부시게 하얗다. 그런데 그 폭포 가기 전 1명의 구급환자가 발행했다. 길옆에서 피네님이 사혈침으로 무릎에 피를 빼고 있다. 그 동안 바쁜 일정 때문에 오지 못한 임하님이 다리에 쥐가 난 것이다. 평소 바쁘다는 핑계로 산행을 게을리 한 탓에 몸이 먼저 알고 신호를 보낸 것이다. 멋진 지리산의 산행을 즐겨야 하는데, 몸에서 이상 신호가 감지된 것이다. 백산의 자랑은 구급조치를 할 수 있는 구급팀이 있다는 것이다. 피네님이 청파님, 그리고 때론 다른 일행이 응급조치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 무언의 봉사자가 있기에 백산인들은 안심하고 산행을 함께 한다.
하얀 빙폭 앞에 일행은 교대로 사진을 찍는다. 그 힘차게 내리던 물들이 한순간 멈춰서버린 빙폭은 정말 거대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얼마나 추웠길래 거대한 물줄기가 얼어붙었단 말인가. 소 위에서부터 얼어 올라간 빙폭은 폭포 전체가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혹시 누군가 소가 제대로 얼지 않아서 얼음이 깨지지 않나 걱정을 하며 걸어 들어갔는데, 제대로 꽁꽁 얼어붙어 있다. 그래서 그 빙폭 아래에 올라서서 동화되어 본다. 각자 한 사람씩 사진을 찍기에 시간은 다소 걸린다. 어찌 이 환상적인 장면을 두고 그냥 갈 수 있겠는가. 하루살이 떼처럼 흩날리는 옅은 눈에도 감동을 받는 부산 사람들 아닌가.
♣설경의 아름다움보다 더 헌신적인 사랑이 있었으니
응급치료를 받고 곧바로 임하님과 피네님이 유암폭포로 와서 함께 한다. 그런데 이 유암폭포에서 장터목 대피소까지의 1.6km가 이번 산행의 분수령이다. 유암폭포 위로 경사가 급해지고 돌계단에 눈과 얼음이 엉겨붙어 있어서 시간이 다소 걸린다. 특히 점심때라 에너지는 고갈되어서 발걸음은 무디어진다. 더운 물이라도 한 모금 마시면서 조금 천천히 올랐으면 하지만 일행은 점점 멀어진다. 한 발자국이라도 멀어지지 않으려면 발걸음을 본능적으로 옮겨야 한다.
그런데 응급처치를 받은 임하님이 맨 뒤에서 걸어 올라오는데 몸 상태가 온전치 않은 듯하다. 그래서 윤호님이 배낭을 받아서 앞쪽에 메고서 올라온다. 자신의 몸마저도 가누기 힘든 상황인데, 동료를 위해서 무거운 배낭 하나를 더 멘다는 것은 자기 희생이 없이는 힘들다. 지리산 산행에 평소 대비하지 않은 임하님이었기에 체력에 많은 부담이 된 모양이다. 전쟁 중 적진에서 부상당한 아군을 메고 가는 것과 같으리라. 그 아름다운 마음은 환상적인 눈꽃보다 더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파앗님의 게스트로 정기산행 및 번개산행에 온 박영희님도 오늘 컨디션 난조를 보인다. 그래서 후미대장 스마트님이 배낭을 넘겨받아 메고 오른다. 예전엔 후미대장 붉은 노을님이 고군분투를 했는데, 오늘은 스마트님이 바톤을 이어 받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한다는 것은 때론 자신의 이익과 결부될 경우가 있다. 하지만 산악인의 헌신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참사랑이다. 그 상황과 여건을 알기에 자기 한 몸 헌신하는 것이다. 후미대장이라고 해서 특별한 상급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산에 오면서 즐기고 행복해야 하는데 때론 그 뒤치다꺼리를 위해 땀방울을 흘려야 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장터목 대피소 아래 700여 미터쯤에서부터 멋진 설경이 전개된다. 어제 내린 눈이 나무 위에 수북히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오기를 기다린 것처럼. 그곳은 햇살이 아직 제대로 들지 않은 골짜기라 눈이 나무에 걸터앉아 있다. 그 환상적인 설경에 마음이 녹는다. 가슴이 확 열리는 듯한 느낌이다. 순백의 동화 나라에 뛰어노는 사슴 한 마리가 된다. 발걸음은 무디어도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3시간 가까이 걸어 올라와서 피로했었는데 그 경치를 보고 피로를 한 방에 날려버린 느낌이다. 최근 바빠서 산행에 제대로 참가하지 못한 은하수(은방울)님도 발걸음도 무디어져 느릿한 걸음으로 앞서서 걸어 올라가고 있다. 그 후미의 동태를 살피면서 운해님도 앞서 걷고 있다. 천상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기에 마음은 들떠 있다. 장터목 대피소는 50미터도 남지 않았는데 마음은 대피소에 가 있다.
♣설경에 취하고 칼바람에 정신을 차린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하니 벌써 식사를 하고 제석봉으로 오르는 방랑자님과 황령산님. 젊음은 좋고, 체력 또한 좋으니......
장터목 대피소 안은 초만원이다. 그러나 작년에 비해서 대설주의보 탓으로 인원이 조금 적은 듯하다. 작년에는 발 딛을 틈이 없었는데. 그래도 올해는 대피소 안에 약간의 여유가 있다. 대피소 안을 들어서자마자 더운 열기로 안경에 김이 서려 앞을 분간할 수가 없다. 아~ 안경 낀 자의 서러움. 앞서간 일행은 열심히 여기저기서 식사를 하고 있다. 입구에서 식사를 위해 배낭을 뒤적거리는 피네님 옆에 선다. 밖에서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먹는 식사에 비하면 얼마나 황홀한 식사인가. 바람을 피할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아직 도시락은 약간 온기를 유지하고 있다. 급히 일식님이 컵라면을 끓여서 피네님과 나를 위해서 뜨끈한 국물이라도 마셔보라고 가져온다. 그 사랑과 헌신을 마신다.
소리 없이 한 사람씩 제석봉으로 오른다. 스마트님과 은하수님, 그리고 일행 몇 사람이 후미에서 제석봉으로 향한다. 주목나무가지 위의 눈에 마음이 얹혀서 발걸음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는다. 한 컷 한 컷을 찍는다고 일행의 발걸음은 엉거주춤한다. 위쪽에서 골바람이 내려온다. 으스스 고개가 움츠려진다. 제석봉의 돌길은 휘몰아치는 칼바람과 함께 걷는 것이 부자연스럽다. 작년에는 온통 눈이 쌓여서 멋진 설경을 연출하였는데 올해 제석봉은 황량한 벌판 같다. 세월을 지켜 낸 고사목이 제석봉 여기저기 서 있다. 제석봉 허허벌판의 면도칼 북풍에 볼때기가 시리고 아려온다.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장갑을 벗으니 추위에 욱신거린다. 아린 진통이 장갑을 껴도 가시길 않는다. 제석봉에서 바라보는 지리산은 아주 가깝게 백설기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느껴진다. 일행들은 제석봉에서 지리산자락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제석봉을 지나 산허리 쪽으로 내려서니 바람은 없다. 바람을 피해 골짜기 여기저기 서 있는 주목나무 위에 걸린 눈송이들의 향연에 죄다 입이 떡 벌어진다. 가슴에 전율이 인다. 이렇게 하늘이 예비해 두고 있었으니. 산자락 한켠에는 바람에 밀려온 눈이 산더미를 이루고 있다. 그 설경에 손 시린 것도 잊는다. 연신 사진을 교대로 찍는다고 부동자세다. 설경은 카메라 속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아니 누구인가? 낯익은 얼굴이 이쪽으로 걸어온다. 태평양님이다. 칼바위 위 삼거리 갈림길에서 법계사로 올라 천왕봉으로 등정하고 장터목 대피소 방향으로 하산을 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보다 조금 빠른 듯 하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의 천왕봉
통천문 가기 전 산자락에 눈이 많이 쌓여 있다. 피네님이 일행 몇 명을 그 너른 공간 위에 사진을 찍어 준다고 불렀다. 수북히 쌓인 눈에 일행을 눕히어 사진을 찍어준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웬걸 후다닥 달려가서 눈을 뒤집어 씌었으니 한바탕 소란스러움이 일어난다. 순백의 눈은 동심의 시계가 작동하나 보다. 어릴 적 했던 눈장난을 쳐보고 싶은 것이다. 작년에 비해 상고대가 형성되지 않아서 약간 아쉬움을 남기며 통천문으로 오른다.
통천문 위의 천왕봉 능선길은 호된 칼바람이 휘몰아친다. 볼이 시리다 못해 아린다. 볼때기에 고춧가루를 뿌린 느낌이랄까. 그래도 사진 한 장씩 찍어주겠다고 시린 손가락으로 열정을 다하는 운해님. 이 백산의 기둥이다. 그 헌신과 땀방울, 배려가 있었기에 지금의 명품 백산으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한 장의 사진이 사진으로써의 가치가 있기까지 여러 작가들의 수고가 있었음을 잊지는 말아야 할 것 같다. 서쪽 삼봉산(1,187m) 방향에서 구름이 북에서 남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 산을 뒤덮는 구름의 모양이 파도처럼 이동하기 시작한다. 장관이다. 그 광경을 지켜보느라 일행은 한 동안 서 있다. 변화무쌍한 지리산이다. 오전에는 맑은 날씨였는데 지금은 구름으로 뒤덮여 있다.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의 지리산이다.
천왕봉 정상에는 오늘 따라 타산악회원들이 없다. 국립공원 대설주의보 발령으로 산행통제가 오늘 새벽 04시에 해제되었기에 그 내용을 알지 못한 산악회는 오지 못한 것이다. 다행히 운해님이 어제 미리 해제시간을 알았기에 우리는 휘파람을 불면서 오를 수가 있었으니. 뭐든지 발품을 팔고, 정보를 얻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정상석 인증샷은 추위 때문에 오래 걸리지 않는다. 멋지고 찍고 싶어도 강풍에 서 있을 수가 없다. 천금만금을 준다 해도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정상의 차가운 날씨에 스마트 폰의 배터리는 슬그머니 눈을 감아버린다. 에고~~이걸 어쩌나. 오늘 사람만 지치는 것이 아니다. 배터리도 혹한의 날씨에 지쳐버렸으니.....
♣하산은 날아갈 수만 있다면
천왕봉 정상에서 법계사까지는 1시간이면 내려갈 수 있다. 천왕샘 부근과 개선문 주위는 그래도 눈이 많아서 볼거리가 있다. 법계사에 접근할수록 눈은 많지가 않다. 오늘은 중간에 충분히 쉬지를 못해서 그런지 아님 수분 공급이 원활치 못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몸 상태가 예전과 다른 것 같다. 몸의 컨디션이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른 것 같다.
후미에서 일식님, 몰운대님과 함께 하산을 하니 법계사에서 앞서간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다. 휴대폰 시계마저 없으니 갑자기 멍청해지는 느낌이다. 우주선을 타고 우주 공간의 외딴 별나라에 와 있는 듯 하니. 서둘러 하산길을 운해님이 재촉한다. 오후 4시가 넘으니 갈 길이 바쁘다. 로타리 산장에서 망바위까지 20여분 걸려 하산을 한다. 하지만 그 이후 구름다리까지 30여 분이 가장 힘이 든다. 체력도 고갈되고 하산길이 급경사에 돌길과 진흙길이다. 모두 혀를 내두르면서 에고~~소리를 질러댄다. 마땅히 망바위 하나 보고 나면 볼거리도 없다. 지루한 하산길이다. 그래서 '휙 날아서 하산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파앗님의 게스트인 박영희님과 인선님이 다소 힘들어 하는 것 같다. 내심 말은 하지 않아도. 잘 걷는 친구들은 쌩 하니 가버리고. 죽으나 사나 발품을 팔면서 가고 있으니.
구름다리가 있는 삼거리 갈림길에 먼저 간 일행을 조우해서 따뜻한 물 한 잔을 얻어 마신다. 평상에 걸터앉아 피곤한 다리도 주물러 본다. 앞길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결코 만만치 않은 길인데. 올라올 때는 눈이라도 있어서 좋았지만 이제 산꾼들이 길을 짓여겨 놓고, 또 따뜻한 날씨에 녹아서 눈이 없을 게 뻔하다. 인생은 앞길을 알면 이처럼 시시한 것임을.
♣고생한 추억이 오래 간다?
장터목대피소/법계사 삼거리 갈림길에서 칼바위를 지나 통천길을 따라 내려간다. 예상한 대로 눈은 다 녹아서 없고, 많은 산꾼들에게 짓밟힌 등로는 몰골이다. 오히려 추적추적한 돌길이 조금 미끄럽기까지 하다. 후미에서 스마트님은 인선님을 앞세우고 하산을 서두르고 있다. 남의 배낭을 장터목 대피소 아래에서 천왕봉까지 메고 왔으니 어지간한 체력으로서는 녹아떨어질 터인데, 인선님을 앞세우고 계속 이야기를 하면서 내려오고 있다. 대단한 체력이고 정력이다. 정말 붉은 노을님 대타로 잘 발탁이 된 것 같다. 어디 후미로 가고 싶어서 가겠냐만. 전체를 위해 희생할 줄 아는 희생정신과 배려심이 없어서는 안 될 일이다.
최악의 통천길을 마무리한다. 통천길 입구까지 7시간여 걸쳐 산행을 했다. 뒤돌아보니 진한 고생이 있었지만, 그 고생은 산행의 전 여정과 설경의 행복이 더 컸기에 상쇄될 수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그 고생은 오랜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아 있을 것 같다.
♣비하인드 스토리와 뒤풀이
중산리 매표소에서 앞서간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음을 숙지하여 대형버스 주차장까지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보통 택시는 5천원이다. 한 명이 추가되었기에 7천원을 일식님이 지불했다. 굳이 한 살이라도 젊은 사람이 내어야 한다고.
버스에 다 모였다. 코스를 법계사 방향으로 거꾸로 돈 회원이 4명이나 있었다. 미산님과 가을바람님은 법계사에서 천왕봉을 두 번이나 오르내렸다. 천왕봉 인증샷을 두 번이나 한 산꾼은 아마 전무후무일 것이다. 두 사람의 체력에 또한 박수갈채를 보낸다. 자기 동네 뒷동산 오르듯 두 번이나 정상을 오르내렸으니 평범한 사람은 흉내도 내기 전에 기진맥진해버릴 일이다.
거기에 비해 임하님과 윤호님은 장터목 산장에서 오던 길을 되돌아 내려갔다. 천왕봉으로 오르기엔 체력 안배가 안 되어. 제석봉에서 그 이야기를 은수님 신랑에게서 듣고 마음이 짠 했다. 임하님 혼자 갈 수 있는데, 굳이 함께 친구가 되어 윤호님이 하산을 했으니. 윤호님의 희생정신과 배려심. 그 사랑에 머리가 숙여진다. 과연 나라면 그 환상적인 설경을 뒤로 한 채 하산을 했겠는가.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리라. 그러나 떄론 사노라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박수를 보낸다.
뒤풀이는 40여 분을 달려 단성에 있는 단골집 [강성갈비집]으로 갔다. 지리산 부근으로 오게 되면 가끔 한 번씩 들르는 집이다. 원지의 해물탕집이 오늘은 문을 닫았기에 [도] 아닌 [개]가 되었다. 그래도 회원들이 즐거운 식탁을 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동방 회장님의 건배 제의에 백산을 "위하여!!!"하고 천장이 내려앉을 듯 고함을 쳤다. 이런 저런 이야기꽃이 핀다. 찌개 또한 보글보글 거리고 부딪히는 술잔이 정겹다. 이번 산행을 통해서 진정한 산꾼으로 다듬어져 갈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성공에서 인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때론 실패에서 성공으로 가는 과정을 배우기에. 그렇게 인생은 다듬어지고 사회와 국가를 위한 일꾼으로 되어간다. 좀더 큰 뜻을 세우고 올해는 살아보자!!!
전체 진행을 위해 수고한 운해님, 남의 배낭까지 짊어지고 생고생을 한 후미대장 스마트님과 윤호님, 그리고 함께 한 회원 여러분과 게스트 분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산행지도
♣산행사진
▲▼이렇게 앞뒤로 배낭을 걸었네요.
▼거꾸로 돌아오는 태평양님을 만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