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우리 땅

‘독도서 미역 따고…’ 거문도 주민들의 기록 찾았다

부산갈매기88 2018. 9. 18. 07:13

영남대 독도연구소 현지 조사, 주민이 남긴 어업 활동기록 확보

 

거문도에서 평생을 산 고(故) 김병순 옹이 남긴 메모 등 1400여 점의 기록 가운데 일부. 테두리 안이 거문도민의 독도 어렵 활동 관련 기록이다. 영남대 독도연구소 제공

“거문도 사람들은 독도에서 미역도 따고 가지어(可支魚·강치)를 포획하여 기름을 내어 농가의 수용에 긴요하게 쓴다.”

거문도(전남 여수시 삼산면)에서 평생을 산 김병순 옹(1915∼2010)이 남긴 기록이다. 영남대 독도연구소는 올 초 거문도 현지를 조사한 결과 거문도 주민들이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독도에서 어렵 활동을 했다는 기록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호남 어민이 독도로 출어를 나간 것은 독도 영유권과 관련돼 있다. 우리 학계에서는 전라도 남해안 지역에서 돌섬을 ‘독섬’이라고 부르는데, 이 지역 어민들이 독도로 출어하면서 독도의 어원이 됐다고 본다. 이 시기 거문도와 초도의 주민들이 독도로 가서 어렵 활동을 했다는 건 구술을 통해서 알려져 있지만 관련 기록은 없었다.

박지영 독도연구소 연구교수는 “김 옹의 기록에서는 독도에서 채취한 미역 등을 배로 실어와 국내 농가에 판매했다는 것까지 알 수 있다”며 “주민이 직접 기록한 자료가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강치 기름은 주로 농가에서 등유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소가 김 옹의 아들 태수 씨(76)를 통해 입수한 이 기록에는 거문도와 인근 초도 등 주민들의 생활사와 관련해 울릉도 독도에 관한 여러 귀중한 기억이 담겨 있다. 기록광인 김 옹은 본인이 인지하고 있는 사실과 주민들로부터 들은 내용을 1960년대부터 기록했다. 
 

“거문도인들은 1800년대에 울릉도를 왕래하여 본도의 생산물인 미역 약초 등을 운반했었다. … 도민들은 원목을 선박용으로 벌채할 때는 독기(도끼)로 반경(半徑)쯤 찍어서 높은 끝에 줄을 매고 몇 사람이 잡아당기면 통나무의 반쪽이 갈라진다. 일본인들이 들어와서 톱을 써서 도벌(盜伐)을 해간다고 한다.”

김 옹은 거문도 주민들이 울릉도에서 가져온 목재를 사용해 만든 주택과 함지박의 사진도 남겼다. 박 연구교수는 “거문도 주민들이 울릉도에 다녀왔다는 물증”이라고 설명했다.

동아일보 2018. 9.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