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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폐렴, 독재자 무너뜨리나

부산갈매기88 2020. 2. 27. 11:38

독재 정권은 우발적 사고로 붕괴된다. 2011년 튀니지가 노점상 청년의 분신(焚身) 자살에 의해 무너졌듯, 중국 시진핑 체제도 우한 폐렴의 ‘내부 고발자’ 리원량의 죽음으로 무너질 수 있다.


34살 젊은 나이에 우한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 그는 중국 후베이성 중앙병원의 안과 의사였다. 작년 12월 30일 저녁 단체 채팅방에 “화난 수산물시장을 다녀온 환자들이 사스 증상을 보이니 검진할 때 보호장비를 쓰라”는 문자를 보냈다가 다음날 중국 공안의 경고를 받았다. 입 닥치지 않으면 유언비어 유포죄로 처벌하겠다는 거다.

● ‘내부고발’ 은폐한 중국 정부


리원량은 입 다물고 진료만 하다 감염돼 병원에 실려 갔다. 중국 보건당국은 1월 11일 우한 폐렴 첫 사망자 발생을 발표하면서도 자신들의 잘못을 말하지 않았다.

중국 정부가 리원량을 유언비어 유포자로 체포하면서 ‘내부 고발’을 은폐했다는 사실은 31일에야 그 젊고, 정직하고, 정의감 넘치는 의사가 병원 중환자실에서 자신이 겪은 일을 SNS 동영상에 올리면서 알려질 수 있었다.


그가 7일 오전 2시58분 경 결국 숨졌다고 우한중심병원이 밝혔다. 그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도 적지 않다. 제대로 말도 못하는 상태에서 문자 인터뷰를 통해 “진실이 가장 중요하다. 건강한 사회는 하나의 목소리만 있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던 의사였다(불현듯 “당신이 검사냐”하며 상관에게 대든 우리나라 검사가 떠오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과 위험성을 처음 언급했다가 중국 정부의 경고를 받고 진료 중 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숨진 중국 후베이성 의사 리원량.

● 억울한 죽음은 혁명을 부른다


중국 땅에도 자신의 업(業)에 목숨 거는 의사가 있음을 세상에 알린 리원량은 진정 의사다운 의사였다. 유언비어 유포죄로 처벌하겠다는 압박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지만 “만일 그때 모두가 이 사실을 중시했다면 오늘의 전염병 폭발은 없었을 것”이라며 그는 죽을 때까지 안타까워했다.

리원량의 죽음에 중국 인민들의 분노가 끓어오른다. SNS 추모글에 중국 정부의 책임을 묻는 주장도 등장했다. 관영매체 중에서도 어용으로 꼽히는 환추시보 사설에서 조의를 표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중국 정부는 그 분노가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향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조절하고 있을 것이다.

2010년대 초 ‘아랍의 봄’은 튀니지 노점상 청년의 분신자살에 촉발됐다. 오랜 독재와 부패, 경제난과 실업난에 지친 튀니지 사람들은 2010년 12월 17일 부패 공무원의 단속을 받고 제 몸에 불을 붙인 무함마드 부아지지의 동영상을 보고는, 더는 못 참겠다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2011년 튀니지의 극심한 경기 불황 속에서 취업을 하지 못 해 경제난에 허덕이다 자신의 몸에 불을 질러 사망한 무함마드 부아지지. 그의 분신사건 이후 전 아랍권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 중국정부의 책임을 묻는 중국인민들


벤 알리 정권의 강경 진압에도 시위는 멈추지 않았다. 이듬해 1월 4일 부아지지가 끝내 숨지자 아예 독재자 퇴진운동으로 확산됐다. 다급해진 벤 알리는 13일 새벽 사과성명을 TV로 생중계했으나 군부는 그날 중립을 선언했다. 결국 다음날 벤 알리는 사우디로 망명했다. 부아지지의 분신 28일 만이었다.

2011년 부아지지의 죽음처럼, 1987년 ‘탁 치니 억 하고 죽은’ 대학생 박종철의 죽음처럼, 청년의 희생은 혁명을 몰고 오는 가장 아픈 폭탄이다. ‘우발적 사고’ 같은 사망사건이 일어나고, 시위가 확대되면서 독재정권이 유화적 대책을 내놓으면, 군부 등 지배엘리트는 냉혹하게 계산한다.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리원량의 죽음에 중국 정부가 당혹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 당장 시위가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점이다. 단 하나, 사람이 모이는 것을 극도로 피해야 하는 우한 폐렴의 속성상,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기 힘들다는 점만 빼고(이 대목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운도 좋다 싶다).

무함마드 부하지지의 죽음 이후 전 아랍권 국가에 퍼진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현지의 시민들.출처=위키미디어

● 중국몽은 깨질 수 있다…그럼 대깨문은?


하늘의 명(天命)을 받은 천자(天子)가 나라를 다스린다고 믿는 중국이다. 가뭄 같은 천재지변이나 역병은 천명이 바뀐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천명이 바뀌고 왕조의 이름이 변하는 것이 혁명(革命)이다. 거의 200년에 한번씩 왕조가 바뀌어도 중국인들이 태연하게 자기 삶을 살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지난주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현대의 중국인들이 이번 전염병을 놓고 시진핑이 하늘의 분노를 산 것이라고 보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폐렴사태가 시진핑 체제의 정당성을 흔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인민들의 실망이 커지고, 공장들이 폐쇄되면서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중국이 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겠다는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도 깨질 수 있다.

남의 나라 걱정할 때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4일 “정부는 비상한 각오로 신종코로나 종식에 나설 것”라고 했다. 비상한 각오 아니어도 좋다. 중국몽만 믿고 오랜 동맹을 버릴 꿈만 꾸는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들이 제발 꿈에서 깨길 바랄 뿐이다. 단 한사람도 우한 폐렴에 희생되는 일 없이.

동아일보 2020/2/07/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