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식히기

90년 전에도 전차-버스 환승 시스템이 있었다

부산갈매기88 2020. 3. 2. 08:15

서울 전차 운행하던 경성전기
부영버스 인수 뒤 전차와 연계
버스·화물차 임대 사업하기도

1930년대에 서울과 인천 사이를 운행하던 승합 버스와 화물차. 서울SF아카이브

1930년대에 서울과 인천 사이를 운행하던 승합 버스와 화물차. 서울SF아카이브

우리나라 최초의 시내버스는 서울이나 부산이 아닌 대구에서 처음 탄생했다. 정확히 100년 전인 1920년의 일이다. 인구나 교통 수요는 당연히 서울과 부산에 미치지 못했을 텐데 대구에서 한반도 최초의 시내버스가 다니게 된 이유는 뭘까? 답은 전차가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당시 경성)은 1899년에 전차가 개통되었고 부산은 1909년에 경편열차가 운행을 시작한 뒤 1915년에 모두 전철화가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 교통량을 감당하는 것은 대부분 자동차다. 서울만 놓고 봐도 지하철보다 버스의 대중교통 분담률이 더 높다. 그러나 위에서 밝혔듯이 이 땅에서 대중교통의 시작은 자동차가 아닌 전차였다. 한 번에 많은 사람을 실어나를 수 있는 수단은 자동차가 아닌 전차였던 까닭이다. 다만 전차는 철로를 깔아야 다닐 수 있기에 운행 지역에 제약이 많았다.

서울에서 시내버스가 다니기 시작한 것은 1928년부터다. 당시 경성부(지금의 서울시)에서 직접 부영버스를 운영했다. 그리고 이때 버스 안내양이라는 직업도 처음 생겼다. 이 안내양들은 곧 장안의 화제가 되어 뭇 남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그 중에는 영화배우로 발탁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전차보다 비싼 요금 탓인지 부영버스 사업은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결국 1932년에 경성전기주식회사에 넘어가게 된다.

버스 사업을 경성전기회사가 맡았다는 것은 요즘으로 치면 한국전력이 시내버스를 운행하는 격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당시 경성전기가 전차 운행 사업을 했기 때문이다. 즉 대규모 대중교통 사업을 운용하는 능력과 노하우를 지닌 유일한 곳이었기에 버스까지 떠안게 된 것이다. 경성전기는 버스 노선들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쳐서 전차와 연계된 환승 시스템으로 재편했다. 전차가 다닐 수 없는 서울의 구석구석으로 버스 노선을 확장해서 일종의 지선 역할을 부여한 것이다. 이런 환승 제도의 이용을 장려하기 위해 관광지 나들이 코스를 개발해서 홍보하기도 했다.

경성전기는 버스뿐만 아니라 트럭(화물차)도 운용했다. 당시 경성전기의 화물차 옆면에는 트럭의 일본식 표기인 ‘トラック(도라꾸)’란 글자가 붙어 있었는데, 이 말이 널리 퍼져서 20세기 말까지도 노인 세대들이 쓰는 경우가 흔했다. 또 화물차나 버스는 임대도 가능해서 전세 차량으로도 많이 쓰였다. ‘차를 대절한다’는 말도 이때 생긴 것이다.

이렇듯 자동차 교통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면서 대중교통은 전차와 자동차의 경쟁 양상이 되었지만, 이내 자동차의 우세는 확연히 드러났고 그런 추세가 계속되었다. 1966년에 이르면 서울시 교통수단별 승객수송 비율에서 전차는 15%도 채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되자 서울시는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도심 교통난을 해소하기 위해 세종로 지하도를 건설하기로 했는데, 그러자면 먼저 전차 선로를 뜯어내야 했던 것이다.

당시 서울의 전차 사업은 일제강점기가 끝난 뒤엔 한국전력이 맡아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서울시에서 전차 선로 철거를 요청하자 그나마 수익이 나던 광화문선을 쉽사리 포기할 수가 없어서 답을 미루게 되었다. 이에 서울시는 과감하게 전차 사업을 통째로 한국전력으로부터 인수하기에 이른다. 그리고는 불과 2년 뒤인 1968년 말에 서울의 모든 전차는 운행을 종료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21세기 들어 기후위기와 환경오염이 첨예한 이슈가 되면서 누구나 온실가스 및 미세먼지 발생을 억제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렇게 보면 지난 세기에 전차가 내연기관 자동차와의 대결에서 굴복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전기자동차가 점점 늘어난다고는 해도 한 번에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는 전철의 경제성이나 친환경성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요즘 경전철이 계속 생겨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다. 우리나라는 작은 땅덩어리에 비해 인구밀도가 높은 만큼 자동차 보유 대수도 많은 편인데, 가급적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우리의 앞날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터이다. 우리 집은 작년에 차를 폐차시킨 뒤로는 새 차를 장만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자가용 없이 지내도록 노력할 셈이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한겨레신문/202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