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맛집

도다리를 품은 쑥…‘가장 진한 봄날’을 맛보다

부산갈매기88 2020. 3. 30. 16:18


■ 봄철 별미 ‘도다리 쑥국’

“우물쭈물하다가는 놓칩니다… 몸에 봄 저장하세요~”

도다리 가을엔 살 오르고 봄엔 살 부드러워져
가을엔 횟감·봄엔 국거리 ‘제철이 두번’
갯바람 속 훈풍맞고 자란 ‘해쑥’ 사용
방부작용·해독성…한국인이 사랑하는 허브
국물 먼저 먹고 도다리 살 발라 쑥과 함께 한입
찬물·김치로도 가시지 않는 ‘향의 여운’

봄을 먹는다. 봄은 겉으론 매우 따뜻하고 나른한 이미지. 하지만 무척 성급하다. 금세 떠나버린다. 향긋한 꽃바람을 몰고 온 듯하더니 휘리릭 지나간다.

비록 전염병의 기세에 갇혀버린 화창한 봄날이라지만 즐겨볼 기회도 없이 보낸다는 것은 퍽 우울한 일이다. 우물쭈물하다간 곧 선풍기 커버를 벗기고 있는 초라한 자신을 발견하고 만다. 그래서 봄은 먹어야 한다. 눈과 코, 귀로 즐기는 봄이야 슬쩍 묻었다가 사라진다지만 입으로 삼킨 봄은 몸에 남아 오래간다.

봄을 가장 닮은 음식은 바로 도다리쑥국이다. 미항(美港)이자 미항(味港) 통영을 위시해 거제, 사천 등 경남 남해안 쪽에서 봄철 국으로 끓여 먹던 가정식 메뉴다. 도다리가 앞에 붙었지만 사실 주인공은 쑥이다. 쑥국에 도다리를 넣은 것이다. 봄은 도다리가 최고로 맛있을 때가 아니다. 가자미목 가자밋과에 속하는 도다리는 산란기를 앞둔 가을에 가장 살이 오른다. 사실 쑥만 있으면 도다리 대신 가자미를 써도 상관없다는 얘기다(실제 이렇게 끓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도다리는 산란을 마친 겨울엔 뼈가 약하고, 봄에 부드러운 새 살이 올라 국을 끓이기에는 봄철이 제일 좋다고도 한다. 결론적으로 도다리는 횟감으론 가을, 국거리론 봄에 맛이 가장 좋다는 얘기다. 제철이 두 번이다. ‘봄도다리 가을전어’란 말도 괜히 생겨난 것은 아니다. 참고로 해양수산부는 최근 ‘3월의 해산물’로 주꾸미와 함께 도다리를 꼽았다.

▲  위부터 통영 동해식당, 서울 충무집, 광양 광양만횟집의 ‘도다리쑥국’

좌광우도(머리 쪽에서 볼 때 눈이 왼쪽에 있으면 광어, 오른쪽에 있으면 도다리)란 말이 있다. 원래 옛날에는 값비싼 고급 횟감인 넙치(광어)를 싼 도다리와 구분하기 위해 나온 말이지만 지금은 의미가 없다. 대대적으로 양식하는 광어 값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도다리는 자연산이 많아 이것만 찾아다니는 사람이 많다. 도다리는 광어보다 기름이 적어 담백하고 살짝 단맛이 난다. 광어보다 옆 지느러미살이 적게 나오는 것도 차이점이다.

잘 손질한 도다리를 뭉텅뭉텅 잘라 육수에 넣고 된장을 풀어 끓여 쑥을 듬뿍 얹으면 되니 집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다. 통영 토박이 박정욱 통영시티투어 대표는 “통영 것은 아무케나 끼리는기 아이고 딱 정해진 대로 해야 한다(통영식 도다리쑥국은 아무렇게나 끓이면 안 되고 정해진 방식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단 통영이 품은 수많은 섬에서 자란 해쑥을 쓴다. 차가운 갯바람 속 몇 가닥 안 되는 훈풍을 가려 맞고 돋아난 놈이다. 정월 대보름 전에 캐내서 끓여야 무병장수한다지만 그땐 쑥이 정말 귀하다. 일반적으로 4월까지는 쑥국을 해먹기 좋다.

생선살과 된장이 우러난 구수한 국물에 싱그러운 쑥을 한가득 올려 다시 한 번 팔팔 끓여낸다. 특별히 더 들어갈 것도 없다(그래서 ‘쑥국’이다). 한소끔 끓여내고 1인당 한 그릇씩 퍼주면 끝이다. 매운탕처럼 거창하지 않아 좋다. 밥을 말기 전에 국물 한 숟가락으로 향과 온도를 음미한다. 그다음 보드라운 도다리살을 숟가락으로 살살 긁어내 숨죽은 쑥을 함께 떠 입안에 밀어 넣으면 그만이다. 상큼한 봄 향기가 폐부까지 밀려든다. 찬물을 마셔도, 새콤한 볼락 김치를 먹어도 가시지 않을 만큼 진한 향의 여운이 남는다. 그 봄날의 향을 입과 코로 맛보는 음식이다. 아직 갯바람이 찬데 뜨끈한 국물이라 더 좋다. 뜨거운 국물 한 숟가락에 비타민과 단백질까지 모두 맛볼 수 있다. 밥상 위 도다리쑥국 한 그릇에는 봄날이 들어 있다.

쑥은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허브다. 단군신화에도 등장하는 산나물이다. 번식력이 굉장히 강한 쑥이지만 한국인이라는 무시무시한 천적이 있다.

▲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세계 어디나 한국인이 모여 사는 곳이면 쑥이 무성히 우거질 틈이 없다. 봄날에 죄다 캐 버린다. 대표적인 봄나물로 무쳐 먹고 국을 끓인다. 방부작용이 있어 상하기 쉬운 떡에 넣거나 상처에 바르기도 했다. 말리고 태워서 모기를 쫓고 뜸을 뜨는 데도 썼다. 식용이면서 약용이기도 했다. 쑥의 방부작용과 해독성을 알아차리고 이에 주목한 것이다. 산불이 나 잿더미가 돼버린 곳에 가장 먼저 돋아나는 식물이 쑥이다. 쑥(대)밭이 됐다는 얘기도 그런 특성에서 나왔다. 각종 중금속을 모두 빨아들여 오염지역을 정화하기에도 좋다.

서양에서 쑥은 무서운 존재다. 그리스신화와 구약성경에도 등장하는데 선악과(사과)만큼은 아니지만 썩 좋지 않은 평가다. 공교롭게도 인류 최초의 대형 원전사고가 발생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은 원래 쑥이란 뜻이다. 러시아어 체르노(cherno)는 ‘검은’, 빌(buile)은 ‘잎사귀’, 즉 쑥(유럽 쓴쑥)이란 뜻이다. 쓴쑥(wormwood)은 대부분 독초나 구충제 정도의 이미지였고, 그나마 식용으로 칠 때도 ‘쓰다’는 이미지만 강조했다. 한때 쓴쑥이 인기를 끈 적도 있었다. 프랑스에선 쓴쑥으로 담근 술을 즐겼다. 아브산으로도 불리는 압생트(Absinthe)에는 아니스(annis), 회향(fennel)과 함께 쓴쑥이 들어간다. 환각작용이 있어 많은 예술가가 이를 마시다 중독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피카소, 고갱, 고흐, 로트레크, 보들레르, 랭보, 오스카 와일드 등이 매일 밤 이 술에 절어 살았다. 압생트를 그림에 넣을 정도로 예찬한 빈센트 반 고흐는 결국 자신의 귀를 잘랐다. 유럽의 쑥은 보헤미안의 예술혼을 일깨웠다는 공도, 폐쇄적이고 암울한 취중으로 이끌었다는 과도 함께 평가받고 있다.

한편 아시아 온대지방에서 자연적으로 자라는 우리의 쑥은 봄을 알리는 향기로운 전령사로서 오랜 시간 사랑받고 있다. 부드럽고 유들유들한 봄 도다리는 따사로운 봄볕처럼 우리 몸을 보듬어준다. 나른한 춘곤증을 이겨낼 에너지를 주고 굳었던 미각의 소생을 돕는다. 청정한 들판과 바다에서 나온 이 둘이 꽃잎과 여린 이파리처럼 밥상 위에서 활짝 피어났다. 숟가락이 저절로 춤을 추는 화창한 봄 소풍이다. 만인이 근심에 젖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올봄이라지만 이대로 허송세월할 순 없다. 향기로운 추억으로 포만하면서 새로 온 소생의 계절을 맞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 향기로운 봄날의 쑥은 해독성도 품고 있다니 말이다. 볕 잘 드는 날을 골라 다시 한 번 상춘의 통영을 다녀와야겠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통영에선 어디든지… 서울이라면 ‘충무집’

어디서 먹을까

어쨌든 통영을 가야 한다. 도다리쑥국의 수도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싱싱한 도다리와 해쑥을 구하기도 좋다. 집에서 늘 먹던 음식이라 그런지 조리 솜씨도 같은 남해안이라도 통영만 한 지역이 드물다. 통영시 중심가인 항남동엔 동해식당이 있다. 지역 특성과 향토색이 가득한 밥상을 차려 내는 집이다. 철 따라 제철 재료를 쓰는데 요즘은 도다리쑥국을 준다. 향기가 진한 해쑥과 큼지막한 횟감 도다리 하나를 통째로 넣고 끓여낸 국의 그 진한 녹색에 마음까지 파릇해진다. 볼락 등 생선구이, 멍게비빔밥 등 다양한 통영의 손맛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통영과 같은 남해안이지만 전남인 광양에도 도다리쑥국을 잘하는 집이 있다. 광양시의 신시가지인 중동 광양만 횟집은 계절마다 제철 음식을 내는 집이다. 섬진강 하구 망덕포구의 명물인 벚굴도 있지만 요즘은 어른 손바닥보다 두 배쯤 큰 도다리를 넣고 끓여낸 도다리쑥국이 인기다. 특히 도다리를 넣은 미역국도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다.

서울에선 충무집으로 가면 된다. 서울 노포와 맛집이 몰려 있는 다동에는 통영 토박이 배진호 사장이 하는 통영향토음식점 충무집이 있다. 이곳에서 통영까지 가지 않고도 현지 정통 방식의 도다리쑥국을 즐길 수 있다. 개업 당시부터 인근 직장인뿐 아니라 멀리서도 입소문을 타고 찾아들더니 몇 년 전 빌딩 지하에서 나와 근처의 고풍스러운 한옥집으로 옮겼다. 향긋한 멍게비빔밥과 함께 맛보는 시원한 국물은 잃어버린 봄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해준다. 다진 아나고(붕장어)회 등 횟감도 여느 집에서 쉽사리 볼 수 없는 것들이고 곁들여내는 찬도 통영식이다. 꼬시래기, 톳, 미역 등 바다 내음 가득한 해조류 나물처럼 맛좋고 영양가 높은 반찬을 상에 깔아준다.


문화일보 202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