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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경의 베이징 리포트]몸값 낮춘 156세 전취덕…변화하는 中노포

부산갈매기88 2020. 8. 5. 10:29

156년된 베이징 오리구이점인 전취덕(취안쥐더)이 코로나19 충격으로 가격인하, 봉사표 폐지 등 몸값을 낮췄다. 사진 전취덕 홈페이지

 

마오쩌둥(毛澤東) 중국 주석이 “영원히 보존하라”는 친필 휘호를 써준 곳.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생전 27차례나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아꼈던 식당. 역사적 미·중 정상회담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도,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찾았던 베이징 카오야(오리구이) 전문점.

 

중국을 대표하는 음식점 전취덕(全聚德·취안쥐더)이 몸을 낮췄다. 음식 가격을 인하하고, 매장 내 식사 손님에게 부과하던 봉사료도 없앴다. 156년 된 노포인 전취덕의 변화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직격탄을 맞은 외식업계의 위기를 민낯으로 드러낸다.

 

전취덕은 ‘156세 생일’을 하루 앞둔 지난달 25일 홈페이지를 통해 음식 가격을 10~15% 가량 인하하고, 모든 매장에서 봉사료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신 쓰촨(四川)·광둥(廣東)요리 등 47개 음식을 추가해 선택의 폭을 넓혔다. 전취덕 측은 “코로나19는 외식업계 전체에 큰 충격을 줬다”면서 소비심리가 회복되는 동안 몸을 낮춰 소비 대중화를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베이징을 대표하는 오리구이집 전취덕 간판.

 

1864년 세워진 전취덕은 중국 전역에 100여개의 매장이 있으며 일본·캐나다·호주·프랑스에도 분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간 전취덕은 주요 지점 내 식사 손님들에게 ‘홀’은 음식 값의 10%, ‘룸’은 15%의 봉사료를 따로 부과해왔다. 이 봉사료를 없앤 것이다. 음식 값은 평균 10% 정도 가격을 내렸다. 주 메뉴인 오리요리 중 절반 정도는 15%까지 몸값을 낮췄다. 젊은 고객을 겨냥한 1∼2인 세트도 새로 선보였다.

 

코로나19 충격이 전취덕의 변화를 가속화시켰다.

신경보 보도에 따르면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올해 상반기 전취덕의 적자규모는 1억3000만 위안(약 222억원)에 달한다. 막대한 영업 손실을 감내해야 하는 위기 속에서 가격 인하와 메뉴 다양화로 손님 끌어들이기에 나선 것이다.

350년된 역사를 가진 중의약 업체 동인당은 보양을 내세운 커피를 판매하고 있다. 사진 동인당

 

그동안 전취덕은 고급 레스토랑의 대명사처럼 인식됐다. 세계적인 정치 명사들의 방문 역사를 내세워 고급 메뉴를 내세운 비즈니스 연회, 해외 관광객들을 중심으로 한 영업에 집중해왔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 집권 이후 공금을 낭비하지 못하도록 공무원들은 단속하는 8항규정(八項規定)의 직격탄을 맞아 2013년 순이익이 전년 대비 27%까지 하락했다. 다소 회복되는 듯하다가 2017년 다시 위기를 맞아 배달 등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이렇다 할 효과는 없었다. 특히 가성비 낮은 음식과 서비스, 봉사료라는 생경한 시스템 등으로 젊은 고객층의 외면을 받았다. 음식점 평가 어플리케이션 ‘다중뎬핑’에는 봉사료에 대한 불만이 많다. 어플리케이션 평가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젊은층 고객들이 전취덕을 외면하는 이유가 됐다. 이번 전취덕의 몸 낮추기에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중국 정부가 인증한 100년 이상 역사를 가진 노포를 ‘중화노자호(中華老字號)’라고 하는데, 최근 전취덕을 비롯한 노자호의 변신이 두드러지고 있다.

 

전취덕과 함께 마오쩌둥 주석이 가장 아꼈던 식당 중 하나인 동래순(東來順·둥라이순)도 자존심을 낮췄다. 중국식 샤브샤브인 훠궈집은 동래순은 최근 1인당 68위안(약 1만1200원)짜리 뷔페 메뉴를 내놓았다. 소고기, 양고기 무제한이라는 홍보에 고객들이 몰리고 있다. 우황청심환으로 유명한 350년 역사의 전통 중의약 업체 동인당(同仁堂·통런탕)은 보양커피와 밀크티 메뉴를 선보였다. 1020세대 고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중의약과 결합한 음료를 출시한 것이다.

 

1858년 베이징에 문 연 음식점 혜풍당반장(惠豊堂飯庄·후이펑탕판좡)은 대표메뉴인 자장미엔을 온라인으로 판다. 알리바바그룹이 운영하는 신선식품 전문마트인 허마셴셩과 함께 표준화한 맛을 구현한다. 주문에 맞춰 면을 바로 삶아 배달한다.

 

1000여개의 중화노자호 중 전체 10%만이 수익성이 양호하고, 70%에 달하는 업체들이 혁신 부족으로 시대 흐름에 뒤쳐져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촉진시킨 노포들의 혁신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다만 무조건적인 가격인하는 단기적 처방에 불과하며, 노포의 전통과 가치를 전승하면서 현재 소비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국무역촉진위원회연구원의 자오핑(趙萍) 주임은 CCTV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산업화나 표준화 같은 변신보다는 구매한 노포 상품이 기대하고 있던 가치를 얼마나 충족시키느냐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202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