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대변의 몸값이 껑충 뛰었다. 그간 역한 냄새를 풍기는 것으로 홀대했던 대변에 대한 인식이 순식간에 변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대변을 통해 인간 질병을 짐작하는 것을 넘어, 얼마 전부터는 노화 방지를 위한 ‘회춘의 묘약’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모아졌기 때문이다.
긴 인생에서 단순히 오래 사는 것보다는 ‘젊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중요해진 요즘, 소위 ‘똥’으로 불리는 대변 속에서 발견한 획기적인 것은 무엇인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이 펴낸 ‘KISTI의 과학향기’에 실린 내용을 통해 자세히 살펴보자.
◇ 회춘의 열쇠, 대변 속 ‘장내 미생물’
사진/뚱뚱한 사람의 대변 속 미생물을 정상 쥐에게 이식하자 뚱뚱해졌고(위), 마른 사람의 것을 이식한 경우 쥐가 날씬해졌다(아래). (출처: The Cell)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최근 청년 물고기의 대변을 먹은 중년 물고기 수명이 41% 늘었다는 연구 조사를 생물학 공개 학술 데이터베이스 '바이오아카이브'에 정식 공개했다. 연구팀은 항생제로 장내 미생물을 제거한 중년 킬리피시에게 젊은 킬리피시의 장내 미생물을 이식할 경우 수명 연장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놀라운 결과를 도출했다.
패트릭 스미스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원은 “동물은 노화 과정에서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을 상실하는데, 이때 유해균들이 장내 생태계를 압도하게 되는 것”이라면서 “젊은 대변 속 미생물을 이식해 장내 환경을 재구성하면 수명 연장을 꾀할 수 있다”고 했다.
젊은 물고기의 배설물을 먹은 늙은 물고기의 수명이 41%나 연장됐다. 날씬한 쥐의 배설물을 주입받은 뚱뚱한 쥐가 날씬해졌다. 이런 실험을 토대로 인간의 노화방지와 회춘에도 대변(장내 미생울)이 기여할 수 있다는 추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건강한 대변으로 비만 잡는다
미국 워싱턴대학교 제프리 고든 연구팀은 사람의 장내 미생물을 쥐에게 주입한 연구에서 뚱뚱한 사람의 미생물을 주입한 쥐는 뚱뚱해진 반면 마른 사람의 장내 미생물을 주입한 쥐는 날씬해졌다는 결과를 공개했다. 대변 속 미생물이 비만 예방 약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증명한 셈이다.
또,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학, 이탈리아 피렌체대학, 영국 쿼드램연구소 등의 국제 공동 연구진은 대변 이식으로 쥐들의 장내 미생물군을 변화시킨 결과, 공간 학습 능력 및 기억력이 변화되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대사제어연구센터 김병찬 박사는 “이 분야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90%에 달하는 미지의 세계”라면서 “이미 밝혀진 사례로 비만을 포함해 당뇨와 같은 대사성 질환과 암, 아토피, 정신질환 등 대부분의 질병에 장내 미생물이 밀접한 상관성을 갖고 있는 것이 규명됐다”고 설명했다.
◇ 미국엔 ‘대변은행’까지 등장
미국 보스턴에 ‘오픈바이옴’이라는 간판을 단 대변은행이 등장했다. 건강한 대변의 가치를 인정해, 건강한 대변을 제공하는 사람에게는 연평균 1000만 원 상당의 금전적인 혜택이 제공되는 일종의 대변 판매 보관소다.
이렇게 수집된 건강한 대변은 주로 건강기능식품을 만들거나, 의학 치료 방법인 ‘대변 이식’ 등에 활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대변을 그대로 이식하는 것은 아니고 대변에 존재하는 유용한 미생물을 선별해 식염수 등과 함께 특수 처리한다. 한국에서는 지난 2016년 대변 이식이 정식 의료기술로 인정받았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이동호 박사는 “대변 이식은 장내 미생물 구성을 빠르게 회복시키는 치료법”이라면서 “항생제를 오남용하지 않고, 스트레스가 적으며 꾸준히 운동을 한 좋은 대변을 가진 사람이 슈퍼 기증자로 평가받는다”고 설명했다.
조선일보 2021.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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