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태종대 비밀의 숲길과 태종사 수국 번개 트레킹 후기(2021/7/3/토)

부산갈매기88 2021. 7. 4. 14:32

여름철꽃의 대명사인 수국. 수국은 여름이면 거제 해금강, 연화도, 그리고 시내 여기저기에서 얼굴을 맞댈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태종대 태종사의 수국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토양에 따라 흰색, 붉은색, 보라색, 파아란 색 등 형형색색이 새색시 치마처럼 아름답다. 향기는 별로 없을지 모르지만 다양한 색상은 우리의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하다.

도심지 화분이나 화단에서 무심히 볼 수 있는 수국이기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수국이 무리지어 있으면 또 다르다. 수국은 차분한 오누이같은 느낌을 준다. 수국은 향기로 유혹을 하지 않는다. 늘 수수한 자태에 왠지 눈길이 그냥 간다.

코로나로 거리두기를 한다고 떠들어대도 태종대 버스종점에서 버스는 수많은 승객을 토해내고 있다. 바닷가라 그런지 아님 오늘 비가 예보되어 있어서 그런지 몸을 가누기 힘든 바람이 횅하니 불어댄다.

버스종점에서 법융사로 오르기 전 관음정사 쪽으로 골목안을 삐끔거려보니 10여명이 줄지어 서 있다. 최근 인터넷 블로그에 관음정사 앞 분홍색 집의 수국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요즘 인터넷 검색을 하게 되면 요상한 정보마저 수확을 하게 되는 세상이다. 얼른 틈새에서 사진 한장을 찍고 되돌아나와서 법융사로 향한다. 법융사는 주차장을 지나 올라가야 한다. 법융사의 수국은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다. 뭔가 야생적인 느낌이다.

이제 비밀의 숲길을 찾아서 철조망을 따라가다가 겨우 문을 찾는다. 이후 해안쪽 철책을 따라 호젓한 산책로를 걷는다. 비밀의 숲답게 덩굴식물과 나무들이 뒤엉켜 있고, 왼쪽으로 간간히 해양대가 있는 아치섬이 고개를 들이밀기도 한다.

물론 된비알도 돌길도 있어 낑낑거리며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너무 조용하여 두려움마저 드는 숲길이다. 대체로 1시간 반 정도이면 비밀의 숲길은 끝낼 수 있다. 그 멋진 기분은 군부대가 왼쪽에 나타날 때 사라진다. 그 군부대 정문에서 오른쪽 언덕을 살짝 넘어가면 태종사이다.

이제 비마저 뿌리기 시작하기에 우산을 꺼내서 인파 속에 파묻혀 본다. 대웅전 앞의 좌우 수국은 색상이 다르다. 그 사이의 대웅전에서 예불을 드리는 불자들의 모습이 분주하다. 세상의 근심과 짐을 내려놓고 가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경내 서쪽 길을 따라 수국들이 도열하여 얼굴 드러내기 시합을 하고 있다. 상춘객들은 그 수국 사이에서 행복 보따리를 잠시 내려놓고 있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시간 공유만으로도 이미 천국을 걷고 있는 것이다.

수국은 대웅전 앞 인도만 있는 게 아니다. 대웅전 앞으로 되돌아가서 넓은 계단을 내려가니 더 화려하고 형형색색의 수국들이 대향연을 펼치고 있다. 세상의 시름과 번뇌가 수국으로 다 날아가버리는 것 같다. 거기 있는 모든 이의 얼굴이 환해진다. 잠시라도 세상의 짐을 벗어놓고 싶은 게 인간의 바램이다.

수국 사이 여기저기에 인간 벌들이 무리지어 사랑의 쪽지를 던지고 있다. 연인도 가족도 코로나의 아픔을 이기려고 아우성이다. 비는 점점 거세진다. 버스종점에서 택시를 타고 남항대교 입구의 엉터리집으로 향한다.

오랫만에 번개 트레킹에 온 일식님의 구수한 입담에 좌중이 행복해진다. 게다가 알콜이 한 순배 도니 분위기는 구름 속을 두둥실 떠간다. 세상 사는 게 별 거 있던가. 코로나 상황이지만 시집장가 갈 사람은 가고, 세상과 이별할 사람은 또 이별을 하고, 검은 짐승들은 외로움을 덜어 줄 친구를 찾아 제각각 돌아다닌다. 단지 무리의 숫자만 적을 뿐이다. 결국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지구가 돌아가듯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닌 듯 하면서 제 갈길을 찾아 다니고 있는 것이다. 겁장이인척 하면서.

삶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다람쥐 체바퀴처럼 돌아간다. 단지 세상의 규율과 법칙에 조금 덜컹거릴 뿐이다.

조석현님, 차돌이님, 일식님께서 동행해주심을 감사드린다. 2시간 정도 아주 가볍게 행복한 시간을 공유했다. 이렇게라도 한 주일 살아갈 자양분을 보충해주니 정말 감사하다. 앞으로도 오랜 시간 함께 우정을 나눌 사람들이기에 함께 건강을 잘 챙겨나갔으면 하는 게 바램이다. 코로나는 빨리 종식 된다기 보다는 동행하는 불청객이 될지도 모른다. 이 달갈잖은 불청객과 어떻게 공존하는 것이 생존의 조건이다. 그렇다고 뒷문으로 늘 도망만 쳐다닐 수도 없다. 보다 당당히 맞서리라. 

              ▼관음정사 앞 분홍색집 대문의 수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