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5일 한국인 최초로 ‘수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Fileds Medal)’을 수상한 허준이(39)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를 새해 첫 날 단독 인터뷰했다. 국내외 수학계에선 이미 허 교수가 올 필즈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을 때였다. 당시 허 교수는 “상을 받기 위해 연구하는 건 아니다. 필즈상 이야기는 안 하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다”며 기사에 언급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로부터 7개월 뒤, 그는 세계 수학계 최고봉에 올랐다. 수상 직후 연락이 닿은 기자에게 허 교수는 “수상 통보를 받고 그 인터뷰, 그때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허 교수가 곱씹었다는 인터뷰. 인간적이며 천재적인 그의 이야기다.
새해 첫날. 12진법 세상에서 사는 열두 달이 한 바퀴 돌아 원점으로 돌아왔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각 분야에서 세계의 엔진을 돌릴 한국 인재가 많다. 학계에서도 한류가 시동 걸고 있다. 대표 주자 중 하나가 서른아홉 살의 천재 수학자인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수학과 교수다.
50년 가까이 풀리지 않았던 난제 ‘리드 추측’을 대학원 시절 증명해 세계 수학계를 놀라게 한 인물. 2015년엔 동료 둘과 함께 또 다른 난제인 ‘로타 추측’도 풀어내 ‘블라바트니크 젊은 과학자상’(2017) ‘뉴호라이즌상’(2019) 등 세계적 권위의 과학상을 휩쓸었다. 작년엔 국내 최고 학술상인 호암상도 받았다. 지난해 프린스턴대에 부임하기 직전엔 6년간 프린스턴 고등연구소(IAS) 장기 연구원과 방문 교수로 있었다. IAS는 아인슈타인 등 세계 최고 지성이 거쳐 간 곳이다. 2020~2021년엔 스탠퍼드대 교수로도 있었다.
더 놀라운 건 뻔한 예상 경로를 거부한 그의 인생 궤적이다. 어린 시절엔 구구단 외기도 버거웠던 수포자(수학 포기자)였다. 고등학교 땐 시인이 되고 싶어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쳤다. 대학 전공은 수학이 아닌 과학(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성적표엔 F가 수두룩했다.
수포자가 세계 수학계의 스타가 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미국에 있는 허 교수를 화상으로 만났다.
◇시인 꿈꾸며 고교 자퇴한 수포자
“제가 사람들하고 말하기를 굉장히 좋아해요. 게다가 10년 넘게 외국에 있으니 한국 사람과 얘기할 일이 굉장히 적어요. 이런 대화가 굉장히 즐겁답니다.” 화면 속 허 교수가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골방에 갇혀 혼자만의 세계에 몰두하는 영화 속 천재 수학자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굉장히’라는 부사를 습관적으로 많이 쓰시네요.
“앗! 그게 굉, 장, 히 아쉬운 점이에요. 어휘가 파도처럼 밀려들어 왔다 나가야 유지되는데 몸에서 자꾸 한국어가 빠져나갑니다. 정교한 어휘 선택을 못 하는 거죠. 언어를 냉동 상태로 보존할 수도 없고.” 수학자가 아니라 언어학자와 대화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시인을 꿈꿨다던데요?
“중고등학교 때 시에 빠졌어요. 특히 기형도 시인의 작품을 좋아했죠. 시를 읽으면 일상 대화에선 느낄 수 없는 다른 종류의 소통을 느낄 수 있었어요. 시적 표현이 모호해서 저자가 의도한 바를 명확히 알기 힘들었지만, 그것 때문에 오히려 깊은 유대와 공감대를 갖게 되는 특별한 경험을 몇 번 했거든요.”
-시인을 꿈꾼 수학자. 언뜻 연결이 안 됩니다.
“알고 보면 공통점이 많아요. 시는 어떻게 보면 모순적인 표현 양식입니다. 표현하기 어려운 것을 언어로 소통하려는 시도니까요. 그래서 시적 모호성이 생기죠. 수학은 땅으로 끌어내리기 어려운 추상적 개념을 수와 논리로 표현해 공유하는 거고요. 둘 다 대상을 고도로 함축해 강력한 상징을 만들죠.”
-어릴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습니까?
“전혀요. 사립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적응 못 해 동네 초등학교로 전학했어요. 고등학교 땐 시 쓴다고 학교를 관뒀어요. 학교 다닐 시간에 시 쓰면 금방 등단할 줄 알았죠. 중2병도 아니고 고1병을 심하게 앓았어요. 결론은 허송세월. 학교 안 가고 매일 교문 앞에서 하교하는 친구들 기다렸다가 PC방에 갔답니다.”
아버지는 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명예교수, 어머니는 이인영 서울대 노어노문과 명예교수다. 그는 부모가 유학 시절 미국에서 태어나 두 살 때 한국으로 왔다. 초등학교부터 석사과정까지 한국에서 보내고 박사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학교를 관둔다고 했을 때 부모님 반대는 없었나요.
“제 의사를 존중해 주셨어요. 특히 어머니가 건강에 무척 신경 쓰는 스타일이신데, 야간 자율 학습이 많아 건강에 좋지 않은 것 같다고 했더니 수긍하시더라고요.”
-통계학자인 아버지에게 수학을 배우진 않았습니까.
“초등학생 때 아버지가 문제집을 풀게 하신 적이 있어요. 몰래 답안지 보고 베꼈는데 눈치 채셨죠. 어느 날 보니 답지를 몽땅 잘라 숨기셨더라고요. 머리 굴려 동네 서점에서 같은 문제집을 펼쳐 답을 적어 왔다가 들켜서 혼났답니다. 그 뒤로 바로 포기하셨어요(웃음).”
-수학을 싫어했단 얘긴가요.
“처음엔 수학이 재미있었지만, 입시와 연관돼 있어 수학의 기쁨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중3 때 경시 대회 나가볼까, 과학고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지금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하시더군요. ‘나는 수학 못하는 아이’라고 생각해 버리게 됐어요. 수학자가 된 지금 돌이켜 보면 말이 안 되는 얘기예요. 한국 사람들은 ‘뭘 하기에 늦었다’는 말을 너무 많이, 가혹하게 해요.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어떤 일이라도 시작하기에 늦은 일은 없지 않을까요?”
-수포자였지만 세계적 수학자가 됐어요. 결국 수학 머리는 타고나는 건가요.
“그런 면이 없진 않겠지만 수학은 다른 학문에 비해 능력 편차가 크진 않다고 봐요. 능력 차이라기보다는 ‘취향의 밀도’ 차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이걸 사랑한다는 강렬한 끌림을 느끼는 사람이 그 분야를 특화해 계발하는 과정에서 천재가 된다고 생각해요.”
-과거 인터뷰에서 “사람은 환경의 함수”라고 표현한 걸 봤습니다.
“소위 천재라는 동료를 보면 부모나 친구에게 지속적으로 지적 자극을 받은 경우가 많았어요. 세포 하나가 분열하는 과정에서 어떤 환경에 처하느냐에 따라 간 세포, 뇌 세포 등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세포로 갈라지듯, 어렸을 때 어떤 환경에 있느냐에 따라 인생도 달라진다고 봅니다.”
-당신의 어린 시절은 어떤 함수에 있었는지요.
“운이 좋은 편이라 생각해요. 부모님이 바빠도 매일 저녁 같이 산책하고 주말엔 영화 보러 가주셨어요. 예측 가능한 일상을 만들어 주셨기에 심리적 안정감을 가질 수 있었어요. 그 덕에 수학처럼 추상적인 학문에 관심 둘 수 있었다고 봐요.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순수 학문을 하기가 아무래도 어려워요.”
허 교수는 한 살, 여덟 살 두 아이를 둔 아빠다. 부모님처럼 아이들에게 예측 가능한 일상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아내는 서울대 수학과 대학원 동창. 처음엔 부부가 함께 수학자의 길을 걸었지만 아이가 생기면서 아내는 공부를 접었다. “다 저의 불성실한 육아 참여 탓”이라며 허 교수가 웃었다.
수학자의 자녀 수학 교육은 어떨까. “저희 애는 수학에 영 관심이 없어요. 대신 K팝 천재 같아요. 드럼 비트 한 번만 들어도 BTS 노래인지, 블랙핑크 노래인지 다 맞힌다니까요!”
◇과학도에서 늦깎이 수학자로
-학부에선 수학이 아니라 천문학을 전공했습니다.
“외부에 구체적 연구 대상이 있다는 게 매력적으로 보였어요. 지금 보는 별이 몇 억 년 전 우주 저 멀리서 출발한 빛이다, 그걸 연구한다! 얼마나 가슴이 뛰던지요. 그런데 막상 천문학을 업으로 선택한 선배들의 삶을 보니 상상했던 것과 달랐어요. 복잡한 실험 기구와 씨름하는 인생이더군요. 게다가 동네 재수 학원의 족집게 강의 덕에 운 좋게 서울대에 들어가긴 했는데 친구들이 너무 뛰어났어요. 갑자기 바보가 된 느낌이었죠. 군대도 안 갔는데 방황하다가 학부를 6년이나 다녔답니다.”
-학부 마지막 학기 때 일본 출신 세계적 수학자인 히로나카 헤이스케(91) 하버드대 명예교수의 수업이 인생을 바꾼 거로 압니다.
“교수님이 쓰신 ‘학문의 즐거움’이 워낙 베스트셀러였어요. 유명 수학자가 강의한다니까 호기심에 수강 등록을 했습니다. 과학 기자도 잠시 꿈꿀 때라 혹시 나중에 인터뷰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죠. 교수님 전공인 ‘대수기하학’ 중 ‘특이점 이론’을 집중적으로 가르치셨는데 무척 어려웠어요. 전공 학생 대부분 수강 철회를 했는데 저는 끝까지 들었어요. 전공자가 아니라 ‘이해한다’는 기대치가 낮았고 관찰할 만한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거든요.”
하루는 혼자 밥 먹는 히로나카 교수에게 먼저 다가가 학생회관에서 밥을 같이 먹자고 했다. 이후 거의 매일 점심을 같이 먹는 밥 친구가 됐다.
-특이점 이론이 이후 업적에 영향을 미쳤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이론인가요.
“‘공간을 이해하는 시도’인 기하학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공간의 공통점은 표면이 매끄러워요. 그런데 수십 년 전 히로나카 교수님이 ‘특이점’이라고 하는 매끄럽지 않은 공간 연구에 중요한 기여를 했습니다. 그걸 응용해 제가 대학원에 갔을 때 리드 추측을 풀었고요. 리드 추측은 원래 이산수학(離散數學)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는 히로나카 교수님께 들어 익숙했던 특이점 이론을 접목해 기하학적 방법론으로 풀었습니다. 후속 연구로 동료와 함께 ‘로타 추측’을 증명했고요.”
-히로나카 교수도 피아니스트를 꿈꾸다가 뒤늦게 수학으로 들어선 ‘늦깎이 수학자’로 유명합니다. 인생 얘기도 많이 나눴나요.
“수학 얘기만 하셨어요. 바둑 고수가 하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듯 쉽게. 교수님은 방황하던 저에게 살면서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음을 보여준 은인입니다.” 히로나카 교수의 권유로 학부를 마치고 서울대 수학과 석사과정에 들어갔다.
-2009년 해외 대학 박사과정에 진학하려고 12곳에 지원서를 냈는데 미국 일리노이대 한 곳만 됐다고요?
“당연한 결과였어요. 학부를 6년이나 다녔고 성적도 안 좋았으니. 그나마 히로나카 교수님 추천서 덕에 일리노이대에서 도박하는 심정으로 뽑아준 것 같아요(웃음).” 도박 결과는 잭팟이었다. 박사과정 첫 해 리드 추측을 해결했다. 한 해 전 그를 떨어뜨렸지만 다시 러브콜을 보낸 미시간대로 옮겨 박사 학위를 마쳤다.
-’콴타 매거진’(과학 전문 미국 온라인 매체)에서 교수님의 성취를 “테니스 라켓을 열여덟에 잡았는데 스물에 윔블던 우승한 격”이라고 비유했더군요.
“지나친 과장이에요. 열여덟에 라켓 잡고 스물에 윔블던 우승한 사람은 한 명도 없지만, 수학에선 저처럼 늦게 시작한 경우가 수백 명 있을걸요.”
◇수학 매력? 정답 있으니 언성 높일 필요 없어
-한국처럼 전 국민이 수학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나라도 없어 보입니다.
“수학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 입시 구조가 문제예요. 수학 스트레스 없앨 방법은 아주 간단해요. 수학자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내년부터 입시에 수학을 안 넣겠다고 하면 바로 해결되지 않을까요(웃음).”
-수학의 세계는 광범위하지만 일반 사람들에게 수학은 계산과 같은 의미로 다가옵니다.
“수학이라는 세계의 언어를 일단 구축하기 위해 초중고 과정에서 계산 훈련을 집중적으로 시키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으려면 먼저 알파벳부터 배워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죠. 아이러니한 건 국적이 다양한 학생을 가르쳐 보니 그렇게 수학 공부를 많이 하는 한국 학생들이 뜻밖에 수학을 접한 정도가 낮았습니다. 톱 레벨 대학에 온 미국 학생들은 대학 수준 수학을 이미 다 공부하고 온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수학 스트레스는 한국 학생이 심해요. 입시 수학의 병폐죠.”
-수학의 매력이 뭘까요.
“정치나 다른 분야에선 아무리 많은 이야기를 나눠도 서로 소통이 안 되면 내가 사는 섬과 상대가 사는 섬의 거리를 좁힐 수 없어요. 수학은 답을 찾는 데 걸리는 시간과 방향은 사람마다 달라도 도달하는 정답은 하나예요. 내 의견을 설득하려고 언성 높일 필요도 없고요. 충분히 시간만 있으면 서로 한 치 어긋남 없이 완벽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요즘처럼 의견 대립하다가 지치면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어물쩍 결론 내려버리는 세상에선 더 의미가 있죠.”
-호암상 수상 소감에서 “나 자신의 편견과 한계를 이해해 가는 과정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소설책처럼 한 번 읽어 바로 이해되면 좋으련만 수학자도 누군가 정리한 이론을 이해하기 쉽지 않을 때가 많아요. 그 사람의 논리 사슬을 따라가야 하는데 내가 이미 만든 틀로 이해하려 들기 때문이죠. 그걸 편견이라 표현했어요. 사람의 두뇌는 천천히 생각하기를 잘 못 합니다. 어떤 정보를 주면 1초 만에 이런 걸 거야 하고 큰 그림을 그려 버려요. 상대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자기 나름의 파악을 끝내버리죠. 정교한 소통이 필요한 경우엔 큰 약점이 됩니다.”
-일상에서도 편견을 두지 않으려고 노력하나요?
“상대 말에 반발심이 생겨도 성급하게 결론으로 뛰어가지 말자고 마음 다잡습니다. 나중에 한 수 한 수 복기해 보면 내 편견이나 암묵적 가정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걸 아니까요.” 자기 확신에 찬 사람이 넘쳐나는 세상을 향한 뼈 있는 일침 같다. 수학을 연구하다가 인생을 통달한 듯했다.
◇수학자는 최후의 분필 수호자
그에겐 예술가의 피가 흐른다. 한국 근대 조각의 거장 권진규(1922~1973)의 조카 손자다. 지난해 그의 할머니 권경숙(권진규 여동생) 여사가 서울시립미술관에 권 화백의 작품을 기증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어린 시절 집 안 구석구석 권진규의 테라코타 조각상이 있었단다. “밤에 화장실 다녀올 때마다 너무 무서웠던 기억이 나요. 집안 어른들이 유명 조각가라고 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제가 좀 컸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는 얘기를 해주셨어요. 막연하게 어른이 되면 사는 게 그만큼 힘들 수도 있구나 생각했죠.”
-뉴호라이즌상을 탔을 때 “수학자의 내적 동기는 예술가의 그것과 같다”고 말했죠. 실제로 옥스퍼드대 수학과 교수면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루이스 캐럴처럼 예술과 수학을 병행한 사람도 꽤 있던데요.
“기질적으로 비슷한 지점이 있어요. 둘 다 추상적 대상을 공유하면서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요. 내가 굉장히 애써서 어떤 아름다움을 간신히 봤는데 나만 아는 게 아니라 너한테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요즘도 시를 쓰나요?
“쓰지는 않지만 많이 읽습니다. 최근엔 시인 데이비드 화이트의 작품을 즐겨 읽어요. 그의 산문 ‘위로’는 특히 강추! 언어를 굉장히 정교하게 사용해 곱씹으며 읽는 즐거움이 있어요.”
-인문학적 소양이 많아 보입니다.
“수학은 인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천문학, 물리학 등은 자연이 만든 대상을 연구하는데 수학은 사람이 만들어 낸 걸 연구해요. 그런 면에서 철학, 문학과 오히려 결이 비슷하죠.”
컴퓨터를 360도 돌려 보여준 허 교수의 연구실은 텅 비어 있었다. 보이는 건 칠판과 분필뿐이었다.
-아직 분필을 쓰나 봅니다.
“수학자는 분필과 칠판을 사랑하는 최후의 사람들이랍니다. 대학에서도 자꾸 칠판을 없애려는데 수학과에서만 꿋꿋이 고집해요. 수학자들이 최고로 치는 분필 브랜드가 일본의 ‘하고로모’예요. 몇 해 전 이 회사가 문 닫는다는 소식이 전해져 전 세계 수학자들이 분필을 사재기했어요. 그런데 한국 사람이 이 회사를 인수했다고 해요. 지금은 ‘메이드 인 코리아’ 분필이 전 세계 수학자들의 심리적 안정에 크게 기여하고 있답니다.”
-수학자들만의 낭만일까요.
“분필로 칠판에 쓰는 행위는 머릿속을 떠다니는 생각을 응고시키는 행위예요. 연주자가 곡을 연주하는 것처럼 무언가 물리적으로 구현해 낸다는 즐거움도 느끼고요. 답이 보이지 않다가도 한 줄 쓰기 시작하면 안 보였던 해법이 보이기도 해요. 또 하나. 판서는 반드시 지워질 숙명을 지녔어요. 죽는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 현재를 더 충만하게 보내듯, 칠판에 쓰여 있는 필기가 곧 사라질 걸 알기에 그 순간 더 집중하게 됩니다.”
-수학자로서 꿈이 있다면?
“그런 건 좀…. 누가 물었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없는 꿈을 출력하는 건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그저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신년 계획을 묻자 “있긴 한데 공개할 수는 없다”고 했다. “지금까지 제 인생 패턴 분석을 완료한 결과 늘 작심삼일이었거든요. 안 지킬 거란 걸 뻔히 알면서 공공연하게 말하면 거짓말하는 거니까, 하하!” 새해 소망마저도 패턴에 대입하는 천생 수학자의 2022년이 궁금해졌다. 비밀에 부친 그의 계획이 성공하기를!
조선일보 2022. 7.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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