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고인이 된 주태익씨는 한때 방송작가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22살때 평양신학교 예과를 마쳤으나 성직자의 길을 걷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행동과 글은 어느 목회자 못지 않게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언젠가 한 일간 신문에 이화여자대학교의 김 모 교수의 6.25 당시 피난가던 이야기가 실린적이 있었습니다. 한강 인도교가 폭파되자 김 교수도 다른 사람처럼 한강변에 나와 강을 건널 길을 찾고 있었다고 합니다. 운좋게 그는 한 작은 배에 오를 수가 있었는데 생사를 건 피난민들이 너무 많이 타서 배가 뜰 수가 없었습니다. 사공은 누군가가 내려야 한다고 소리쳤지만 아무도 내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공은 결국 배를 띄울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그 때 배에 타고 있던 몸집이 큰 한 신사가 조용히 내리더니 한강변 석양길로 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그 사나이의 뒷 모습을 바로 보면서 김 교수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후, 신문에서 그 글을 읽은 독자들로부터 그 한강변의 주인공이 누구냐는 질문이 빗발치듯 쏟아졌습니다.
김 교수는 독자들의 성화에 못이겨 그 주인공의 이름을 공개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방송작가 주태익 씨였습니다. 모두가 살겠다고 아우성 치는 현장에서 생면선에서 하선한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결코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주태익씨가 기꺼이 그 길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마음에 모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주님께서 먼저 가신 길을 뒤좇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