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맛집

[100세 쇼크 축복인가 재앙인가]

부산갈매기88 2011. 1. 6. 11:51

[4] 활기찬 장수의 조건은… 변경삼씨의 경우

[장수 집안도 아니다]
업혀서 학교 갈 정도로 어렸을 적부터 허약체질… 80세 넘게 산 가족 없어

[자전거 장수론]
"자전거 멈추면 쓰러지 듯 끊임없이 일해야 건강"
작년 특허 출원할만큼 머리 쓰며 왕성하게 활동… 자동차는 성묘 갈 때만

나이 들수록 신체 장기는 힘을 잃고, 해가 갈수록 관절은 닳아간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노화 현상이지만 어떤 이는 '팔팔한 백세'를 즐기고, 어떤 사람은 '골골한 노년'에 주저앉는다. 그 차이는 뭘까. /편집자

올해 98세가 되는 변경삼씨(창생사 대표) 허리춤에는 항상 만보계가 채워져 있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귀가하는 저녁 9시에는 만보계에 어김없이 1만 걸음 이상 찍힌다. 그는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집 근처 야산을 4㎞ 걷는다. 성수동에 있는 자신의 회사에도 걸어서 출근한다.

포즈를 취해달라고 부탁하자 ‘팔팔 98세’ 변경삼씨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팔을 번쩍 들어 보였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의료기기 회사에 매일 출근해 자재·판매·영업까지 모든 업무를 직접 발로 뛰며 챙긴다.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그는 직원 10명이 안 되는 조그만 가정용 의료기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매일 지하철과 걷기로 세운상가와 영등포 공구점, 용산 전자상가 등을 누빈다. 현손자(7살)까지 둔 변씨지만 직접 자재도 구하고, 거래처도 챙긴다. 판매 현장에서 새로운 제품 아이디어도 얻는다. 그는 2년 전 96세에 7번째 발명 특허를 받았다.

그의 삶의 철학은 '자전거 장수론(論)'이다. 바퀴를 계속 굴리지 않으면 자전거가 쓰러지듯 사람도 살아가려면 걷고 또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77세 큰아들이 자가용을 권했지만, 변씨는 "아버지 죽일 일 있느냐"며 단칼에 잘랐다. 그가 승용차를 타는 경우는 일년 딱 두 번, 한식과 추석 성묘갈 때뿐이다.

키 1m51㎝, 체중 48㎏의 왜소한 체형이다. 하지만 악수를 할 때 기자가 느낀 악력(握力)은 젊은이 못지않았다.

그가 선천적으로 건강 체질을 타고난 것은 아니다. 어려서는 허약 체질로 매일 업혀서 학교에 다녔다. 위로 세 명의 형 모두 팔순을 못 넘기고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아 장수 집안도 아니다. 1940년대 일본 유학 시절에는 영양실조로 쓰러진 적이 있고, 6·25 전쟁 때는 폐결핵으로 거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40~50대에는 한 번에 양주 두 병씩 비우고 매일 담배 3~4갑을 피는 무절제한 생활도 했다.

변씨는 "이러다 폐인되겠다 싶어 술·담배를 완전히 끊고 단전호흡 수련을 하고 매일 만보 걷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 힘으로 골골한 노년을 만드는 각종 만성질환을 피해갔다.

취재팀이 서울대병원 건강증진센터에 의뢰해 변씨를 정밀 검진해보았더니 98세 나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결과가 나왔다. 혈압이 정상으로 유지되고, 심장병 예방 효과를 갖는 고밀도 콜레스테롤(HDL)이 매우 높았다. 영양상태를 나타내는 단백질 알부민 수치도 정상이었다.

빈혈도 없고 혈색소가 풍부하며 활력을 보여주는 남성호르몬 수치도 정상이다. 노인에게 흔한 당뇨병도 없다. 모두 꾸준한 걷기 효과라는 것이 의료진의 설명이다. 우리나라 65세 이상의 55%가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 등 3가지 이상의 만성질병을 앓는 것과 비교된다(국민건강영양조사·2008).

한 발걸음을 앞으로 뗐다가 흔들리지 않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최대 보폭은 62㎝로 측정됐다. 70대 연령층의 수준으로, 하체 근력이 튼튼하다는 의미다.

서울대병원에서 조비룡 교수의 안내에 따라 건강검진을 받고 있는 변경삼씨. /민봉기 기자 bongs85@chosun.com

뇌 MRI에선 노화로 인한 뇌조직의 퇴화가 90대 나이에 비해 현저히 적게 나왔다. 60대 초반부터 자기 사업을 하면서 끊임없이 제품 개발에 힘쓰고, 매일 관련 자료를 찾아 읽는 등 꾸준한 지적(知的) 활동을 해온 덕으로 추정된다. 그는 작년 8번째 발명 특허를 출원했다.

변씨는 김밥 한 줄을 40분에 걸쳐서 먹는다. 철저한 소식과 오래 씹기다. 혼자 식사할 때는 공깃밥 반 공기를 밥알 세가며 먹듯 한 시간에 걸쳐 먹는다고 했다.

식사 때는 항상 두부와 살코기 소량을 섭취한다. 한국인들이 쌀밥 위주의 식사를 하면서 영양소 섭취 중 탄수화물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데 반해, 변씨의 식사는 탄수화물 비율이 낮고 대신 단백질 비율이 높다. 근육의 활성을 유지하는 힘이다.

그는 "죽는 날까지 계속 걷고, 머리 쓰는 일을 할 것"이라며 "삶 자체가 움직임"이라고 했다. 81세 때 상처(喪妻)한 그는 84세에 재혼해 현재 67세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

[변경삼씨 정밀검진해보니…] 근지구력, 동년배의 倍… 당뇨·고혈압도 없어

정밀검진을 해보니 변경삼씨에겐 뇌하수체 종양이 있고, 뇌동맥과 심장의 관상동맥이 동맥경화로 약간씩 좁아져 있다. 노인에게 흔히 나타나는 골다공증도 있고, 전립선 종양도 의심된다. 노인성 청력장애도 있다. 그도 세월의 풍파를 비켜가진 못했다. 더욱이 왼쪽 폐 기능은 거의 상실돼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정한 것은 그가 끊임없이 체력을 단련했기에 가능했다. 그의 근육 지구력은 같은 연배 일반인 평균의 두 배 가까이 높다. 그 나이에 혈압이 정상인 것도 놀랍다.

그와 대화를 나누면 중년 정도로 느껴질 만큼 말이 또박또박하고 빠르다. 철저하게 소식(小食)하고 왕성하게 신체 활동을 한 덕이다. 매일 연구하고, 책을 읽고 쓰며 지적(知的) 활동을 활발히 한 것도 정신의 노화를 막아주었다.

'활기찬 장수'는 질병을 이겨내려는 의지가 충만하고, 끊임없이 신체를 단련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환경에서도 견디는 잡초처럼 끈끈한 생명력이 건강 장수를 이끈다. 앞으로 의과대학 강의 때 변씨의 사례를 모범케이스로 제시할 생각이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doctor@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