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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도 '너무' 뜨겁게 하는 대한민국

부산갈매기88 2011. 3. 17. 11:54

일본 동북부의 끔찍한 재난을 보면서 '이 와중에도 반일(反日) 감정에 들끓는 사람들은 악플을 달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정말 놀랍게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재앙 앞에서 한국인들은 이웃으로서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느냐'고, '힘내라'고 눈물을 흘리고 성금을 내놓는 사람이 벌써 20만 명이 넘었다. 일본에 대해 깊은 혐오감과 열등감을 동시에 느껴온 우리 국민이 벌써 '극일(克日)'에 한발 가까이 간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런데 정말로 우리의 매너는 일본 대지진 이전과 이후로 나뉠 만큼 며칠 사이 그렇게 세련되어진 것일까. 얼마 전,
조용기 목사가 "일본 대지진은 일본 국민의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라는 인터뷰를 하자 '진보 논객'이라 불리는 진중권씨는 이렇게 비난했다. "정신병자들이 목사질을 하고 자빠졌다."

말 참 험하다. 교인들은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밖에서 보기에는 하지 말았어야 할 실수를 한 사람은 조 목사다. 그걸 틈타 '막말 욕구'를 푼다고 의심되는 사람은 진씨다. 이에 신도들은 진씨에 대해 인터넷으로 융단폭격을 했고, 그는 또 험한 말로 이들을 물리쳤다. '광기(狂氣)의 핑퐁'이다. 그래도 이건 비정상적인 발언과 대응이라고 치면 마음이 좀 가벼워질 수 있다.

좀 더 이상한 것은 요즘 우리 인터넷에서 누구도 일본을 건드릴 수 없는 분위기다. 이웃에 대한 긍휼의 마음을 누가 비난할까마는, 이젠 그걸 떠나 '애도의 획일주의'라고 불러도 좋을 분위기다. 물론 일본인이 아니라 우리 네티즌들끼리 서로 강도 높은 비난을 주고받는다.

인간사회란, 매우 비정하게도 누군가의 고난을 마냥 슬퍼만 할 수는 없다. 남의 슬픔을 자기 일처럼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태가 어떤 손익을 가져올지 고민하기를 명령받은 사람도 있다. 일본 대지진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주식 애널리스트, 펀드 매니저, 외환 딜러 같은 이들이 그렇다. 이들에게는 좋은 소식이나 나쁜 소식이 그저 '시장의 재료'에 불과하다. "가장 비극적인 상황에서 주식을 사라"는 말은 주식시장의 오랜 관용어다.

그러나 사고 첫날,
MBC가 "이번 재난으로 신(新)한류에 타격을 입을까 우려된다"라는 철없는 보도를 내보낸 후, 격앙한 네티즌들은 다른 주체들의 다양한 판단의 여지를 거의 완전하게 봉쇄하고 있다.

그러면 네티즌들이 온전히 선의(善意)로만 가득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15일에는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통해 '일본에서
방사능이 몰려온다'는 루머가 엄청난 속도로 돌아다녔다. 우리 정부가 과학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설명했음에도 '방사능 괴담'은 쓰나미의 속도로 퍼져 나갔다. 광우병 괴담 시절의 초기 풍경과도 매우 흡사하다. 슬퍼하는 것도, 걱정하는 것도 대체로 '과잉'으로 넘친다.

물론 이런 격앙의 에너지는 때로 긍정적이다. 방재 시스템은 허술해도 우리에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자원봉사 문화가 있어
태안 기름 유출 때도, 연평도 포격 때도 걱정을 보다 빨리 덜 수 있었다. 다만, 열정 걱정 배려 모두 과하면 좀 질린다.

 

박은주 문화부장 zeeny@chosun.com/ 조선일보 2011.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