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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극한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 시각장애인 송경태

부산갈매기88 2011. 4. 18. 09:24

"사막의 회오리바람은 내 마음속에선 천상의 오케스트라가 되고…"

군복무 폭발사고 失明 빛을 지각 못하는 1급장애 결승점에서는 늘 꼴찌로
동료들에겐 ‘정신적 지주’ 본능으로 사막 길을 알아 아파트단지에선 집 못 찾아
배낭 속에는 식량·물통·침낭·의약품·나침반·호루라기·헤드랜턴·손전등·칼·손거울

송태경씨는 "사막 마라톤에서 배낭이 무거울 때 우선 먹는 것을 줄인다"고 말했다.

전주의 한 아파트에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있던 송경태(50)씨가 내게로 왔다. 허공에 둥둥 뜬 채 걷는 것 같았다. 약간의 빛조차 지각할 수 없는 '1급 시각장애인'에게 이 대낮도 깜깜한 암흑일 것이다. 그런 그가 사하라사막·고비사막·아타카마사막·남극대륙에서 '4대 극한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그는 어떻게 생겼을까. 내가 만나려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궁금했던 적이 없었다. 짧게 깎은 머리에 그는 마르고 단단한 체형을 갖고 있었다. 눈앞의 실물을 보면서도 나는 "당신이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다"고 말했다. 그는 즉시 대답했다.

"이봉주 체격과 비슷합니다."

―그걸 어떻게 아나요?

"국내마라톤대회에서 만나 한 번 만져봤어요. 만져봐야 확실하니까. 키나 몸매가 거의 같았어요. 황영조는 좀 뚱뚱하고."

―나는 어떨 것 같습니까?

"좀 말랐을 것 같아요. 키는 170 내외. 안 만져봐서 정확하게 모르지만, 목소리로 상대의 성격과 체격을 어느 정도는 인지해요."

얼마 전 그가 쓴 '신의 숨결 사하라'라는 책이 출간됐다. 2005년 그가 처음으로 참가한 '
사하라 사막마라톤'에 대한 기록이다. 6박7일간 뛸 수는 있다 해도, 눈으로 보지 못하는데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했다는 것이 내게는 더 신기했다.

"사막을 뛰다가 발바닥에 닿는 감촉이 달라졌다 싶으면 레이스 파트너에게 '주변 풍광이 어때?' 물어봐요. 직접 손으로 모래도 만져보죠. 제 눈으로는 빛과 색과 선을 볼 순 없어요. 하지만 마음으로 그릴 수가 있어요. 눈 빼고는 온몸의 감각이 동원되죠. 이를 머릿속에 입력해놓죠. 달리면서도 계속 되뇝니다. 귀국할 때면 동료들은 달렸던 구간을 거의 기억 못해요. 눈으로만 봤기 때문이죠. 오히려 눈이 안 보이는 제게 당시 상황이 어떠했는지 물어볼 정도죠."

―섭씨 50도가 넘는 사막에서 250㎞를 달린다는 것은 미친 짓이죠.

"그것도 대회참가비 3000달러를 내고 '생명각서'까지 쓰면서 달리죠. 많은 사람들이 '돈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해요."

―더욱이 앞이 안 보이는 입장에서는 더 치명적이지 않을까요?

"우스갯소리로 눈에 뵈는 게 없으니까요. 도우미 선수의 배낭에 연결된 1m 길이의 끈을 묶고 뛰죠. 사실 안 보이는 게 축복이었어요. 다른 레이서들은 보이는 것들로 인해 좌절해요. 망망대해처럼 가도가도 끝이 없는 사막의 길, 회오리바람의 공포, 홀로 떨어져 있다는 고독…. 가시거리(可視距離)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한눈에 식별하는 것이 장점이 될 수 있지만, 다른 면에서는 그것은 '제약'이 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안 보인다는 것은 불편하고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이 되지 않나요?

"과거에
캐나다 로키산맥의 암벽에 도전한 적이 있었어요. 중간에서 내려왔지만 307m까지는 로프를 잡고 올라갔어요. 만약 그 수직벽을 제 눈으로 봤으면 엄두를 못 냈겠지요. 바로 1m 앞에 무엇이 있는 줄도 모르는 장애가 오히려 가능성이 될 수 있어요. 모든 것에 한계가 없어지는 거죠. 사막의 회오리바람은 제 마음속에서 천상의 오케스트라가 되고, 발에 밟히는 모래언덕에 오르는 것은 마치 무대에 서는 것으로 느끼면 돼요."

그는 1982년 군복무 중 폭발사고로 실명했다. 양쪽 고막도 나갔다. 자대 배치를 받고서 일주일 됐을 때였다. 광주통합병원에서 여섯 달 입원한 뒤 '국가유공자'로 제대했다.

"제 모습을 본 이웃 할머니는 '평생 방안에 갇혀 해주는 밥이나 먹고 살아야 할 팔자'라며 혀를 찼어요. 몇 차례 자살도 시도했어요. 결국 세상 속에서 살아야 했어요. 점자를 배웠어요. 흰 지팡이로 걷는 보행법을 익혔어요. 대학에 다시 들어갔어요. 안마사와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땄어요. 하지만 취직원서를 받아주는 덴 없었어요. 월급 안 받는 조건으로 장애인신문사에서 잠시 일했지요. 안마시술소를 운영하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제 삶이 다른 장애인들에게 뭔가 희망이 되기를 원했어요."

그는
전주시의원에 한 차례 당선됐다. 주위의 도움으로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을 세웠고, '동물도감' '아동문학전집' 점자책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국토 종단과 석달간 미대륙 도보횡단을 했다. 1998년에는 안내견을 분양받아 춘천국제마라톤 5㎞ 구간에도 참가했다.

"학창 시절부터 사막에 대한 동경이 있었지요. 낙타 대상 행렬, 작열하는 햇볕, 모래언덕, 회오리바람…. 미대륙을 도보횡단하면서 사막마라톤에 대해 알게 됐어요. 그 뒤 6년을 준비했죠. 사막에 적응하기 위해 강릉 경포대와 남해 송정리에서 모래주머니를 정강이에 차고, 배낭에는 벽돌 6개를 넣고 뛰었어요. 한여름철 쨍쨍한 대낮에 전주 천변(川邊)을 서너 시간씩 달렸어요. 건식사우나에 들어가서도 뛰었어요. 그렇게 준비했지만…정말 미친 짓인 줄 모르고 갔어요."

―미친 짓인 줄 알았다면 그 뒤로 멈췄어야 옳지요. 지금까지도 매년 사막마라톤에 출전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다음부터는 중독(中毒)이 돼서 갔어요. 사막은 묘한 매력이 있어요. 야생(野生)의 세계로 사람을 던져 놓지요. 외국선수 중에는 대기업 CEO들이 많아요. 여기서는 돈도 휴대폰도 필요 없어요. 똑같이 6박7일간 원초적인 인간이 되죠. 문명에서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것을 비우죠. 비워야 채워진다는 겁니다. 극한적 상황에서 성찰과 창의성을 얻는다고 해요."

―그런 성찰보다 당장 육신(肉身)의 고통이 먼저일 텐데요.

"대부분 '포기냐 강행이냐' 갈등은 마라톤 첫날에 옵니다. 포기하는 순간 입속이 쩍쩍 갈라지는 갈증, 탈진, 다리 통증은 끝나죠. 하지만 계속 강행을 하면 이 모든 고통을 이고 가야 돼요."

―포기하면 비정상적 극한에서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인데.

"그 고통이란 게…고통이 없으면 인생의 맛이 없어요. 제 두 다리한테는 미안하지만, 통증을 이겨내고 결승점에 도달했을 때의 성취감에 미치는 거죠. 사막에서는 첫날과 둘째날만 잘 극복하면 끝까지 가게 됩니다."

―실제 포기하고 싶었을 때 어떤 마음이 충돌했습니까?

"사하라 사막마라톤에서는 큰아들이 따라와 자원봉사를 했어요. 아들이 없었으면 포기했을지 몰라요. 내가 포기하면 아들의 사기가 떨어질 것 같았어요. 물론 체력이 안 받쳐주면 어쩔 수가 없어요. 첫날 32㎞ 구간을 10시간 19분 39초에 달렸어요. 꼴찌였죠. 제가 탈진했을 때 함께 뛰는 파트너가 '조금만 더 가면 돼요' 말하곤 했어요. 이 말이 기가 막혀요. 사실은 아직 까마득한데, 조금만 참으면 된다니…. 저는 안 보이니까 이 말이 희망이 되는 거죠. 외국선수에게 '얼마 남았느냐?' 물으면 '앞으로 몇 마일' 합니다. 아마 그랬다면 끝까지 가기 어려웠을 겁니다."

사하라 사막 마라톤 장면

―지금까지 사막마라톤에 여섯 번 참가했지요. 한 번도 중간에서 포기하지 않았나요?

"이제는 '관록'으로 뛰어요. 하지만 2년 전 초청받은 '나미브 사막마라톤' 코스에는 모난 바위가 많았어요. 힘들어 막 포기하려는데, 남아공 대표선수가 저를 지나치며 '저 미스터 KT(경태)도 가는데 포기할 순 없지' 혼잣말을 했어요. 그 순간 '나를 보고 힘을 내는 사람들도 있는데 포기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늘 꼴찌예요. 하지만 결승점에 도달하면 다들 제게 '당신이 정신적 지주가 됐다'며 고맙다고 해요."

―이번 6월 고비사막마라톤, 9월 호주 캥거루사막마라톤에 초청받았지요. 이처럼 극한의 도전을 멈추지 않으니까, 선생의 부인이 "찬사에 굶주린 사람이다. 찬사에 허기가 들 때면 에베레스트에도 오르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면서요.

"제 내면을 들여다보면 맞을지 몰라요. 아무도 안 알아줬다면 제풀에 지쳤을 겁니다. 사막마라톤에 참가하면 저는 '블라인드 맨(blind man)'이라 특별히 소개돼요. 제가 반환점을 돌고 들어올 때면 환호합니다. 이런 관심과 박수 때문에 더 힘을 낸 것이 아닐까요. 끝나면 다음 대회가 그리워지고, 더욱 가속페달을 밟게 되죠. 에베레스트봉에도 꼭 오를 겁니다."

사막마라톤에서 선수들은 '생존용' 배낭을 메고 뛴다. 그 안에는 7일치의 식량·물통·침낭·의약품·나침반·호루라기·헤드랜턴·손전등·칼·손거울(길을 잃었을 때 햇빛을 반사시켜 자신의 위치를 알림)이 들어있다. 10㎞ 체크포인트마다 주최 측에서 물을 공급해준다.

―배낭 속 식량과 장비는 풍족한 게 좋지만, 막상 뛰면 그 무게로 사람을 녹초로 만듭니다. 그 균형점은 어디일까요?

"
사하라에서 처음 뛸 때 배낭 무게는 18.5㎏이었지만, 그 뒤로는 8㎏으로 줄었어요. 다른 장비는 생존과 직결되니 먹는 것만 줄이면 돼요. 처음에는 허기가 질까봐 못 줄여요. 막상 뛰면 요만큼도 못 먹어요. 알파미(농축건조한 쌀)와 컵라면을 가져가죠. 햄과 아몬드·건바나나·땅콩·사탕·초콜릿·이온음료도 필요해요. 컵라면은 무게를 줄이기 위해 부숴서 비닐팩에 넣어요. 더운물을 부어 먹는데, 실제로는 그냥 씹어먹은 뒤 물을 마셔요. 배 속에서 부풀어올라 포만감을 느끼죠."

―사막마라톤에서는 그날그날 주파해야 할 거리가 주어지고, 정해진 시간에 못 들어오면 탈락이라고 들었습니다.

"주최 측에서는 참가선수 중 30%를 탈락시키려고 해요. '서바이벌(살아남기)'이니까요. 탈락자가 적으면 다음날 코스의 난이도를 높여요. 모래언덕을 계속 오르락내리락하는 코스를 설정하죠. 선수들 뒤에는 낙오자를 태우기 위한 낙타가 딸랑딸랑거리며 따라옵니다. 늘 꼴찌인 제게 낙타는 '저승사자'예요. 낙타보다 뒤지면 레이스에서 탈락하게 되죠."

―길을 잃은 적도 있었나요?

"100m마다 작은 깃발로 표시해둬요. 출발하기 전에 코스를 브리핑하고 지도와 나침반을 줍니다. 하지만 꺼내놓고 볼 시간이 없어요. 앞사람의 발자국을 보고 가죠. 바람이 불면 발자국은 지워지고 깃발은 날아가죠. 엉뚱한 곳에서 헤맬 때가 많았죠. 이제는 본능적으로 압니다. 눈 감고도 얼마를 더 가면 모랫길이고, 다음에 자갈길, 모래언덕, 체크포인트에는 언제쯤 도착할 것인지 발바닥 감촉에서 느껴져요."

하지만 그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자기 집을 못 찾는다. 자신이 사는 13층은 다른 동(棟)에도 있고 구조가 똑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그의 곁에 부인이 있고, 두 아들은 공군장교와 육군장교로 복무 중이다.

 

최보식 선임 기자 congchi@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