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이야기

문순득 표류기

부산갈매기88 2011. 4. 29. 07:30

  조선 시대 때 본의 아니게 세계를 여행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이도의 홍어 장수 문순득이었죠. 배에 홍어를 가들 싣고 영산포에 가서 팔고 오던 중 풍랑에 휩쓸려 간 곳은 일본 류쿠국(오키나와), 조선에 사신을 자주 나라여서 제법 말이 통했습니다. 먹을거리와 잠자리도 제공받고, 조선으로 가는 배가 없어 아홉 달을 지내다 배를 얻어타고 고향으로 향하던 길, 또다시 폭풍우에 떠밀려 표류했습니다. 3주 가까이 헤매다 다행히 땅에 닿았는데, 그곳은 듣도 보도 못한 여송국(필리핀)이었습니다. 

 

  문순득은 여송국에 스스럼없이 스며들어 살아갈 방편을 찾았습니다. 여송 사람이 연날리기를 좋아하면서도 연줄로 쓰이는 노끈을 꼴줄 모르는 걸 눈여겨 본 그는 노끈을 모아 생활비를 마련했습니다. 그러다 여덟 달만에 상선을 타고 광동, 북경, 의주에 이르러서야 조선관료들을 만나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표류한 지 3년 2개월 만인 1805년 1월이었습니다. 도착한 문순득은 유배당해 이웃에 살던 정약전에게 인사하려 갔습니다. 정약전은 여행담을 매우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며칠에 걸쳐 그와 이야기한 이국의 풍습, 옷차림, 외국어 등을 상세히 적어 내려갔고, <표해시말>이라는 책을 엮었습니다. 문순득의 표류기인 셈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전라감사 이면응이 지인에게서 문순득의 여행담을 듣고 그에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하루빨리 제주도로 와 달라는 것으로, 사연을 이러했습니다.

 

  1801년 온몸이 새까만 외국인 다섯 명이 장삿길에 올랐다가 표류해 제주도로 흘러들어 왔습니다. 제주 관리는 고국으로 보내 주려 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고, 글씨도 실을 죽 늘어놓은 듯해 국적을 알 수 없었습니다. 외국인들은 속수무책으로 제주도에서 외로운 생활을 하며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 사이 두 명이 풍토병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제주도에 도착한 문순득은 옷차림만 보고서도 그들이 여송 사람임을 알아채고 통역을 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그들은 9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일이 궁궐에 전해져 상인으로는 드물게 <조선왕조실록>에 이름 석 자를 올렸고, 조선 최초의 여송 어 통역사가 되었습니다. 뜻하지 않은 표류가 그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준 것입니다.

 

<좋은 생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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