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 만물박사

[자본주의 4.0]

부산갈매기88 2011. 8. 11. 13:12

자본주의 4.0] [8] 기업가 정신을 살리자
기업을 돈 빼먹는 수단으로 - 허위 공시 등 반칙 동원
경영보다 주식 장난으로 쉽게 돈 벌려고 하는 풍토
존경받는 자본가는 1세대뿐 - 가진 사람들의 만연된 불법…

자본주의 생명 끊는 것, 불로소득 봉쇄 장치
 필요

 

  자본주의의 생명력은 자본이 산업을 일으켜 고용을 창출하고, 활발한 지적(知的)·물질적 생산을 하고, 여기에서 얻어진 이익이 다시 산업에 재투자되는 ‘자본의 선(善)순환 구조’에서 나온다.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자본의 선순환 구조를 가졌던 우리나라는 2000년대에 들어 활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수조원의 유휴자본이 주식시장 주변을 맴돌며 불법적인 주가 띄우기와 기업 인수·합병·쪼개기 등으로 생산 없는 불로소득을 올리고 있다. 맨땅에서 세계 최고 기업을 키워낸 기업가 정신은 사그라지고, 자본주의3.0(신자유주의)식 탐욕만 흘러 넘친다. 자기 이익에 몰두하지 않고 재투자해 산업자본가로 성공하겠다는 열망이 분출돼야 양극화, 청년실업 등 우리 사회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고 자본주의4.0시대를 열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학습 보조기구 '엠씨스퀘어'를 만드는 지오엠씨는 2009년 10월 50대 여성 조모씨를 '경영지배인'으로 영입하고 150억원을 투자받기로 했다. 회사 경영과 자금에 관한 권한을 위임하는 '경영지배인' 자리를 줘야 할 만큼 지오엠씨는 돈이 급한 상황이었다.

조씨는 150억원을 회사 계좌로 입금해 새로 발행하는 주식(유상증자) 3000만주를 인수했다. 그러나 그날 바로 150억원을 다시 인출했다. 주식은 챙기고 돈은 '경영지배인' 권한을 이용해 다시 빼낸 것이다. 회사 통장에 돈을 넣었다가 바로 빼는 이 같은 '찍기'는 자기 돈 들이지 않고 회사를 인수하는 '무자본 M&A(인수·합병)'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유상증자로 신규 자본 유치에 성공했다는 공시가 나오면서 지오엠씨 주가는 주당 500원 수준에서 한 달 만에 650원선으로 30%나 올랐다. 이 값에 조씨가 주식을 다 정리할 수만 있었다면 150억원을 잠깐 입금시켰다가 50억원을 바로 벌 수 있었겠지만 금융 당국이 조씨 등이 보유한 주식을 팔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를 내리는 바람에 실현되지 않았다. 조씨와 지오엠씨는 아직도 송사(訟事)를 벌이고 있다. 이 와중에 지오엠씨 주가는 20원까지 떨어졌고, 공시를 믿고 주식을 샀던 투자자들은 투자자금의 97%를 날렸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스냅샷으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이런 식의 '돈 장난'은 다양한 수법으로 발전하고 있다. 주식·채권시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사채업자들은 직접 혹은 대리인을 내세워 갖가지 작전을 벌이며 기업을 카지노판의 카드패 꼴로 전락시키고 있다.

경영에는 관심 없고 기업을 '돈 빼먹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기업인도 많다. 음원 콘텐츠 전문업체 '디패션'은 분식회계 등이 적발돼 지난 4월 말 코스닥시장에서 퇴출됐다. 정리매매 때 주가는 주당 40원대까지 내려갔지만 최대주주 J씨는 이보다 훨씬 앞선 지난해 9월 주당 850~862원에 4만주를 처분했다.

기업 경영보다는 주식을 통해 쉽게 돈을 벌려는 행태는 대그룹 오너(owner) 일가들에게서도 나타나 국민들에게 박탈감을 안기고 있다. '재벌가(家)'라는 프리미엄을 이용해 인수하지도 않은 회사를 인수한 것처럼 꾸며 주가를 띄운 후 차익을 얻고, 내부 정보를 이용해 손쉽게 불로(不勞)소득을 챙기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이런 반칙이 만연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생명을 끊는 것과 같은 위험한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성공 신화를 쓴 벤처기업인들조차 회사를 쪼개 상장하거나 회사를 해외에 매각해 큰돈을 챙긴 뒤 한창 일할 30~40대에 은퇴해 호사스러운 생활을 누리는 경우도 많다.

일부 기업인들의 이 같은 천민(賤民) 자본주의적 행태가 젊은 창업가들의 준거(準據) 모델이 되어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을 지낸 손병두 KBS 이사장은 "기업가들이 창의 경영에 몰두하고 정직과 성실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며 "젊은 기업인들이 고(故) 이병철, 정주영 회장처럼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 자본주의 4.0

자본주의 4.0은 자본주의의 진화과정을 컴퓨터 소프트웨어 버전(version)처럼 진화단계에 따라 숫자로 이름을 붙일 때 네 번째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자유방임의 고전자본주의가 자본주의 1.0이고,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케인스가 내세운 수정자본주의가 2.0이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정부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자율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자유시장자본주의·자본주의 3.0)가 등장해 사상 최대의 풍요를 가져왔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심각한 빈익빈(貧益貧) 부익부(富益富)의 그늘을 짙게 드리우면서, 탐욕과 과다를 다스리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따뜻한 자본주의’(자본주의 4.0)를 요구하게 됐다.

 

조선일보/

  • 김덕한 기자 ducky@chosun.com
  • 하진수 조선경제i 기자 hj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