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메아리

부산갈매기88 2011. 8. 29.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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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머슴인지라 아무 것도 물려받은 것이 없었습니다. 농사를 많이 짓는 부잣집 사랑채에서 살았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 집 식모로 들어와 일하다가 그의 아버지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서로 의지할 것이 없었는데 가난하지만 마음 착한 그들은 함께 살면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생활이었지만 아이를 기르는 재미는 부잣집 사람들과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무럭무럭 잘 자랐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아이를 기르면서 누리는 부모의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부모가 자신의 기를 펴지 못하게 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기 시작하였습니다. 대부분 동네 사람들이 집이 있는데 자신은 집이 없었습니다. 남의 집 사랑채에서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부모는 글을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부모는 주인이 시키는 일만 하는 힘없는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잘 같이 놀다가도 동네 친구들이 자기들이 불리한 일을 당하면 "머슴새끼"라고 욕하며 상대를 해 주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머슴의 아들이라는 것을 안 후부터 아버지, 어머니가 미워졌습니다. 어느날 구슬치기를 하다가 주인 아들과 다투었습니다. 주인 아들은 그를 하인 부리 듯하였습니다. 힘으로 모든 구슬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러다 주인 아들과 싸웠습니다. 분명 주인 아들이 잘못하였는데 어머니가 뛰어 나와 자신을 야단치며 사랑방으로 끌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어머니를 원망했습니다. "왜 내 잘 못이 없는데 그러냐"고 소리를 치며 울었습니다. 어머니는 "너 그렇게 하면 우리 이 집에 있을 수 없어"라고 아이를 가슴에 안았습니다.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 갔습니다.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좋은 옷을 입고 왔습니다. 친구의 집에 따라갔습니다. 자신의 집에는 없는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것들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집도 크고 친구의 어머니 아버지는 양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이사를 왔다는 것입니다. 친구는 서울에 대하여 소개해 주었습니다. 차도 있고 기차도 있고 인형들도 많이 있다고 했습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것들이었습니다. 어떻게 서울에 갈 수 있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기차를 타면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친구는 책받침도 있었고 연필 통도 있었습니다. 가방에 책을 넣고 다녔습니다. 자신은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한 것입니다. 가을이 되어 운동회가 있었습니다. 모두 운동회를 준비하였고 그 날은 학부모를 초청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가 학교에 오는 것도 싫었지만 어머니는 더욱 학교에 오는 것이 싫었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은 온통 화상을 입어 보기가 싫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어머니인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화상을 입은 것은 자신이 어릴 때 사랑방에 불이나 자신을 구출하려다가 화상을 입은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불이나 동네 사람들이 불을 끌 때 자신의 어머니가 물에 담근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불길 속으로 들어가 자신을 그 보자기로 싸안고 나오면서 입은 화상인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운동회나 학예발표나 어머니날이 다가오는 것이 가장 괴로웠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도 그의 뜻을 알고 아예 학교에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친구의 필통을 보니 색연필이 있었습니다. 그는 색연필이 갔고 싶어 훔쳤습니다. 그러나 결국 들키고 말았습니다. 선생님은 부모님을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어쩔 수 없이 선생님에게 불려갔습니다. 선생님께 빌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비록 머슴으로 살며 가난하게 살았지만 한 번도 남의 물건에 손을 댄 적이 없었습니다. 아들이 남의 물건을 훔친 것을 보고 그의 아버지는 참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모질게 아들에게 체벌을 가했습니다.

 

  그날 밤 그는 집을 도망 나갔습니다. 그리고 서울로 갔습니다. 서울에서 구두닦이를 하였습니다. 봉제 공장에 취직하여 보조공으로 일을 하였습니다. 서울은 그가 어릴 때 친구로부터 들은 것처럼 그렇게 좋은 곳이 못되었습니다. 자신을 머슴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자신처럼 가진 것 없는 사람이 살만한 곳은 못되었습니다. 그래도 시골에서는 친구집에 가면 밥을 주었고 친구들과 함께 잘 놀 때는 머슴의 아들이라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서울은 달랐습니다. 아무도 그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모두가 그를 이용하려는 사람들 뿐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남의 물건을 훔치다 감옥에 갔습니다.

 

  청년은 감옥에서 한 자매를 만났습니다. 교회에서 전도 나온 자매였습니다. 그 자매도 술집에 나가다 예수님을 믿고 새로운 삶을 산 사람입니다. 그들은 결혼하였습니다. 서로가 가난한 지라 사글세방을 얻어 살림을 차렸습니다. 그는 취직할 곳이 없었습니다. 학력은 초등학교 중퇴이고 배운 기술도 없었습니다. 결국 막노동에 나갔습니다. 어떻게 하든 가난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도 막노동 일을 계속해야만 했습니다. 운동회가 되었습니다. 아이가 아무 소리 없이 운동복을 챙겨 입고 나갔습니다. 하루 종일 막노동판에서 일하는 그의 귀에 "오늘 운동회인데 아빠 엄마 오지 않아도 돼, 선생님이 부모님 모셔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라고 말한 그의 아들의 소리가 귀에 메아리쳤습니다.●

 

<김필곤/섬기는 언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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