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일이

독일 의과 대학에 54년간 108학기째 등록한 '70세 대학생'

부산갈매기88 2011. 9. 15. 07:29

독일 북서쪽에 위치한 킬 의과대학에는 54년간 재학 중인 70세 할아버지 학생이 있다. 그의 만학은 공부를 늦게 시작해서가 아니라 반세기 동안 의사 자격시험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얼마 전 108학기째 등록을 했다.

킬 의과대학은 이 학생을 퇴출할 방법이 없다. 현행법상 독일 대학들은 마기스터 디플롬(한국의 석사 과정에 해당) 과정 학생들 가운데 지나치게 오랜 기간 등록하는 학생들에 한해 강제 제적시킬 수 있지만 이 노인처럼 국가고시(Stattexamen·의대·법대 졸업시험)를 준비하는 학생은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재등록을 막을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프랑크 켐프켄 킬 대학 부총장도 문제점을 시인했다. "학생이 장기간에 걸쳐 대학에 등록하는 것은 교육 정책상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킬 대학에는 이 '할아버지 의대생' 외에도 31학기(16년) 이상 재학 중인 '아저씨 학생'이 239명 있다.

학비가 거의 들지 않거나 아예 면제되는 독일은 대학생들의 천국이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3일 발표한 교육 보고서에서 "독일 내에서 고등 교육을 받은 젊은 근로 인력 부족 사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는 독일 대학의 개혁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OECD에 따르면 3차산업에 종사할 요건을 갖춘 OECD 27개 회원국 인력자원 가운데 55~64세 그룹에서 독일인 비율은 6.3%인 반면, 25~34세 그룹에서는 3.1%에 불과했다. 독일인 중 대학을 졸업하거나 전문 자격증을 가진 사람의 비율은 전 국민의 4분의 1이다. 특히 대졸자 비율은 29%로 OECD 평균인 39%를 크게 밑돌며, 27개 회원국 중 23위다.

OECD는 이런 문제의 원인 중 하나로 독일의 낮은 교육 분야 투자를 지목했다. 독일의 교육투자는 2008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4.8%로 OECD 평균(5.9%)에 못 미친다. 대학에서 호텔 경영학을 전공한 마리안(27)은 "독일인들에게도 미국 아이비리그는 꿈의 대학"이라며, "많은 학생들이 돈을 모아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와중에도 지난 겨울 학기 독일의 대학 등록자는 220만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전 등록자보다 4.5% 증가한 수치다. 슈피겔은 독일 대학의 등록자 수가 늘어나는 이유는 학비가 들지 않아 장기 재학생과 외국인 유학생 수가 계속 증가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조선일보/베를린=이혜운 특파원 liet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