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맛집

"이러다 큰일 난다" 의사 경고에도 술 먹게 되는 당뇨 환자

부산갈매기88 2011. 12. 20. 07:08

 

당뇨병 진단받았으나
영업상 늘 따르는 술자리 피할 수 없는 중년 일과 건강 사이에서 고민

근면과 절제, 小食하는 종교인처럼 살 순 없지만
술 권하는 문화 안 바뀌면 질병 뿌리 뽑을 수 없어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의사
요즘 중년의 고개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당뇨병 환자가 아주 많이 눈에 띈다. 질병 상태는 아니더라도 혈당 수치가 정상을 넘어서 환자 수준에 근접한 이들도 많다. 현재 30세 이상 성인 10명 중 1명(9.7%)이 당뇨병을 앓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현실로 느껴지는 통계다. 그런데 이들의 상당수가 당뇨병을 '감추고' 사회생활을 이어간다.

중견회사에 다니다 그만두고 조그만 자영업을 하는 49세 김모씨도 그런 케이스다. 그에게 당뇨병이 들어선 것은 2년 전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특별한 이유도 없이 왠지 몸이 피곤하고 얼굴이 푸석푸석해졌다. 다이어트를 한 것도 아니고, 운동을 열심히 한 것도 아닌데 체중이 조금씩 줄었다. 다섯달 만에 몸무게가 77㎏에서 69㎏으로 떨어졌다. 처음에는 살이 빠진다고 해서 좋아했다. 하지만 이는 당뇨병 발생의 이상(異常) 신호였다. 통상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6개월 동안 자기 체중의 10%가 넘게 빠진다면 몸의 이상 징후다. 아침밥을 굶고 병원에 가서 잰 그의 혈당은 300(㎎/dL)을 훌쩍 넘었다. 정상은 126 이하다.

"이러다 큰일 난다"는 의사의 말에 그는 혈당 강하제를 먹기 시작했다. 식사량도 줄여보려고 애썼다. 혈당은 점점 낮아졌지만 어느 한순간 도로아미타불이 됐다. 그의 일상이 혈당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 영업상 중요한 만남에는 항상 술이 따랐다. 거래처를 만나고 투자자를 설득하는 '을(乙)의 입장'에서 그는 환자티를 낼 수는 없었다. 한 잔은 여러 잔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다음 날 어김없이 혈당이 치솟았다. 혈당 관리는 비행기 착륙과 같다. 낙하 고도가 어긋나면 비행기를 상승시켜 다시 멀리 돌아와야 하듯, 일그러진 혈당 관리가 새로운 세팅으로 안정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그의 혈당은 하강과 상승의 널뛰기를 이어가다 인슐린 주사를 맞는 신세가 됐다. 그는 한동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회식과 모임 자리에 빠졌고, 가더라도 술을 자제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소외'였다. 그는 일과 건강을 놓고 삶의 무게를 어디에 둘지 결정해야 할 시기라고 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지난해 서울 강북삼성병원 당뇨병센터가 30여명의 남자 환자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통해 당뇨병 대처에 어떤 문화적 요소가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혈당 관리의 가장 큰 장애물로 한국 특유의 술 문화가 꼽혔다. 음주는 우리 사회에서 중년 남자들의 집단 놀이문화이기 때문에 당뇨병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환자'로 살아가기 무척이나 어려운 생활문화를 갖고 있다. 특히 왕성한 사회활동을 해야 하는 중·장년층에는 더욱 그렇다. 일터나 생활에서 집단성과 일체성이 강한 탓이다. 그러기에 감춰진 환자들이 많다.

원광대 보건복지학부 김종인 교수팀이 1963년부터 2010년까지 48년간 언론에 난 3215명의 부음 기사와 통계청의 사망 통계자료 등을 바탕으로 직업별 평균수명을 조사한 바로는 승려·신부·목사 등 종교인의 수명이 80세로 가장 높았다. 아쉽게도 기업인(73), 법조인(72), 언론인(67) 등은 종교인과 비교하면 크게 낮았다.

절제를 전제로 한 종교인의 삶은 현대인의 건강규범이다. 스님의 경우를 보자. 이들은 일단 적게 먹는다. 하루 섭취 칼로리양이 직장인의 절반 수준이다. 따라서 잉여 칼로리 축적으로 인한 노화를 막을 수 있다. 소식(小食)은 현재까지 과학적으로 수명 연장 효과가 있다고 입증된 유일한 수단이다. 이들은 또 매일 새벽 정시에 일어나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100세 이상 사는 장수인의 80%는 생활태도가 근면했다. 스님들은 하루를 108배(拜)로 열며, 꾸준한 운동을 한다. 선(禪)체조 등으로 관절과 근육을 유연하게 한다. 채식 위주의 식사는 고혈압·고지혈증 등 만성질환의 출현을 줄인다. 된장·콩·두부를 골고루 섞어 먹어 단백질 부족도 적다. 차를 자주 마시는 생활은 콜레스테롤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낸다. 차를 마시는 자체가 스트레스 관리 등 정신수양에도 좋다. 참선이나 명상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항상 경전을 읽고 염불을 외우는 등 지적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대부분 담배와 술 하고는 거리가 먼 삶이며, 환경오염이 적은 곳에서 지낸다. 이런 복합 요인들이 건강 장수와 연결된다.

누구나 종교인처럼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중독성이 강한 고(高)칼로리·고지방(脂肪) 식품 산업이 번창할수록, 성공지향적인 경쟁사회에 머물수록, 음주가 집단 놀이문화인 환경일수록 수도승이나 수도사 같은 절제의 생활이 더 필요하다. 고령 장수 시대를 앞둔 이제, '개인 웰빙'에서 '사회 웰빙'으로 넘어가야 한다. 사회 전체가 바뀌지 않으면 개인의 질병도 변하지 않는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