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방

양심

부산갈매기88 2011. 12. 20. 07:43

농사를 짓던 아버지는 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도 아버지를 따라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피가 섞인 형제는 형과 단 둘이었다.
부모 없이 고아로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형은 말했다.
“야 형우야, 너 어머니 아버지 없다고 나쁜 길로 빠지면 안 돼, 우리 앞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잘 살아야 해.”
그 때 마다 나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형 앞에서 수없이 다짐을 하였다.
형은 열심히 공부했다.
매 번 시험을 보면 1등을 하였다.
형의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의사가 되어 돈이 없어 병을 고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살리는 사람이 되겠다고 늘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못했다.
친구들의 부모님을 보면 부러웠다.
어머니가 없는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아버지를 따라 자살한 어머니가 미웠다.
우리를 남겨 놓고 자살한 어머니가 이해되지 않았다.
형과 나는 아버지가 아플 때부터 교회에 나갔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열심히 기도했다.
금식을 하며 기도하였고 가끔 산에 가서 기도하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도 우리만 남겨 놓고 아버지를 따라 세상을 떠나버렸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형은 열심히 교회에 다녔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하나님이 살아 있으면 왜 우리 아버지를 살리지 못했을까 의심이 생겼다.
아버지는 참 착하게 사셨다.
농사지으며 남의 땅도 밟으면 안된다고 멀리 돌아다니시는 분이었다.
그런데 그 착한 우리 아버지가 50살도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기도했던 어머니가 자살을 하신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형은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늘 교회에 나가 기도하고 즐겁게 지내었다.

형은 고등학교에 3년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학교에서 먹고 자며 공부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형은 나 때문에 학교 기숙사에 들어갈 수 없었다.
나는 형에게 큰 걸림돌이 되어 있었다.
나를 만나는 선생님들은 늘 같은 말을 했다.
“야 형우야, 너의 형은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데 너는 뭐냐? 형 반절만 따라가라.”
나는 그 말이 듣기 싫었다.
형과 비교되는 것도 형의 짐이 되는 것도 싫었다.

나는 자살을 결심했다.
집에 있는 빙초산을 먹었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병원에 있었다.
형이 옆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식도와 위가 오그라져 대장을 식도로 연결하는 수술을 하였다고 한다.
“형우야, 왜 그런 생각을 했어. 너와 나는 세상에 둘밖에 없는 형제야. 우리 커서 잘 살자고 맹세했지 않아.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 말어.”
형은 학교도 가지 않고 나를 간호하였다.
“야, 힘내 먹고 일어나야 해”
형은 밥을 먹여 주었다.
형은 나를 간호하느라 학교를 일년 휴학을 하였다.
치료비가 없어 공사판에 나가 일을 하였다.
나는 음독의 후유증으로 음식물을 섭취하기가 불편하였다.
형은 죽을 끓여 주며 전심을 다해 간병해 주었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하시던 대로 기도하며 나를 간호해 주었다.

형은 공부하여 의대에 들어갔다.
나는 공부를 포기하고 식당에 취직을 하였다.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형을 도와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형은 공부를 잘 하니까 누군가 조금만 도와 주면 형의 꿈인 의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형은 내가 공부하기 싫어 공부하지 않은 것으로 알지만 실은 형을 돕기 위해 나는 직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형이 의사가 되는 날 나는 세상에서 제일 기뻤다.
“형, 이제 의사가 되었어. 친구들 데리고 식당에 와, 내가 근사하게 한 떡 쏠게”
내가 주방장으로 근무하는 식당으로 형을 초대하였다.
그 때 나는 모든 것을 다 이룬 것 같았다.
형은 병원을 개업하였다.
돈이 넉넉하지 않아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개업을 하였다.

그런데 IMF 경제 위기가 닥쳐 온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다해 형을 도우려고 했다.
그러나 내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었다.
7억의 빚을 남기고 병원은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었다.
“야, 어떻게 하냐. 남은 가족과 너는 살아야 하지 않냐?” 나도 형에게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2억을 빌려 주었다.
“너 식당 하나 하고 싶은 게 소원이었지 않아, 내가 병원 잘 되면 꼭 네게 식당을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돈 많은 부모 만난 애들은 뭐든지 잘만 되는데 우리 같은 사람은 안되는 가 보다”
형은 나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요구했다.
보험에 10억을 가입해 놓았는데 그것을 받아 빚을 갚아 달라는 것이었다.
“형우야, 나 하나 죽어서라도 너의 형수와 네 조카들, 그리고 너의 식구들은 살아야 할 것이 아니냐? 내 말대로 해라.”
형은 계속해서 나를 졸랐다.
“간단해, 내가 길을 가고 있을 때 네가 뒤에서 나를 받고 도망가 버리면 되.”
뺑소니 사고로 위장해 죽이고 보험금을 받게 해 달라는 것이다.

나는 형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형을 죽였다.
10년이 되었는데도 술이 없으면 잠을 잘 수 없다.
한밤에 형이 방문을 덜컥 열고 들어와 무서운 눈으로 누운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다시 자살을 꿈꾸었다.
어머니가 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렇게 괴로워 했는지, 왜 갑자기 자살을 하였는지 이해할 것같았다.
술을 먹고 어릴 때 형과 다녔던 교회에 갔다.
강대 상 위쪽에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1:18)”라는 말씀이 쓰여져 있었다.

15년 만에 동네 파출소에 들어갔다.
어릴 때 형이 나를 찾으러 많이 왔던 곳이다.
자수하면 편할 것같았는데 여전히 마음은 무거웠다●

양심/섬기는 언어/김필곤 목사/2006.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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