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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1·2심 판결이 다른 진짜 이유

부산갈매기88 2012. 4. 24. 14:54

 

2심서 인정 안한 '善意로 줬다' 주장 무게 둔 1심 선고
판사는 어떤 집단 중시하느냐 따라 그 집단 성향과 일치하는 판결 할 가능성이 커

김낭기 논설위원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곽노현 교육감에게 1심인 서울중앙지법은 벌금 3000만원을 선고했으나 2심인 서울고법은 그보다 훨씬 높은 징역 1년 실형을 선고했다. 1심과 2심이 왜 이렇게 다른 판결을 내렸을까. 판사들은 이런 질문을 받으면 늘 "판결문에 다 나와 있다"고 말한다. 하긴 그렇다. 판결문을 보면 1심은 곽 교육감이 2억원을 다른 교육감 후보였던 박명기 교수에게 '선의로 줬다'는 주장에 상당한 무게를 뒀으나 2심은 이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2심은 곽 교육감이 후보 매수로 민주주의의 기본인 선거의 공정성과 수도 서울의 교육 최고 책임자로서 도덕성을 훼손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 1심은 곽 교육감이 돈을 주게 된 경위와 동기를 중시했다.

그렇다면 1심과 2심은 왜 같은 사안을 보는 눈이 이렇게 달랐을까. 사실 진짜 궁금한 점은 이것이다. 곽 교육감과 박 교수 사이에 무슨 일이 왜 어떻게 벌어졌는지 대한 1심과 2심 사이의 인식 차이, 선거의 공정성과 교육감의 도덕성이 갖는 중요성에 대한 1심과 2심의 판단 차이 같은 건 왜 났을까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사람들의 흥미를 끌 만한 미국 학계의 연구 결과가 있다. '청중(聽衆)을 의식하는 판사'라는 제목이다. 미국 학자들이 '판사들은 왜 그렇게 판결할까'에 대해 수십년간 연구한 결과인데 요지는 이렇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중요시하는 집단으로부터 호평·찬사·존중을 받고자 하는 욕망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이런 욕망을 충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하며 행동한다. 판사도 이 점에선 일반인과 똑같다." 판사는 주변 사람들이나 사회와 고립된 채 기계적으로 판결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중시하는 집단이 자기의 판결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무의식적으로라도 염두에 두고 판결한다는 말이다. 미국 법조계의 성현(聖賢)으로 불리는 연방대법원 대법관들조차 예외가 아니라고 한다.

판사들을 둘러싼 집단은 동료 판사, 변호사, 법학 교수, 언론, 특정 정치집단, 일반 대중, 가족과 친지 등 여럿이다. 판사들이 이 중에서 어떤 집단으로부터 가장 호평과 찬사와 존중을 받고 싶어하는지는 그가 처한 상황, 다루는 사안, 판사 개인 성향 등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판사들이 어떤 집단을 가장 중요시하는지에 따라 판결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동료 판사를 중시하는 판사는 판결이 사회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기보다 '법에 충실한 판결'을 내리려는 경향이 강하다. 판사들은 아무래도 법 논리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특정 정치집단을 중시하는 판사는 그 집단의 정치 성향과 일치하는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판사는 동료 판사들로부터 뒷말을 듣기도 하지만 자기가 지지하는 정치집단으로부터 받는 찬사로 자존감(自尊感)을 유지한다. 여론의 비판을 꺼리거나 반대로 대중적 명성을 원하는 판사는 언론을 의식한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판사가 청중을 의식한다는 말은 판사들이 양심과 법률을 떠나 외부 눈만 바라보며 판결한다는 뜻이 아니다. 판사가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 게 아닌 이상 사물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적 요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 요인의 하나로 판사가 어떤 집단을 중시하는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곽 교육감 사건에서 보듯 판결문은 같은 사안을 보는 눈이 왜 재판부에 따라 다른지를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이럴 때 '청중을 의식하는 판사'라는 관점은 판결문에 담기지 않은 이면(裏面)의 판결 배경을 추정해 판결 이유를 좀 더 심층적으로 파악해 볼 수 있는 방법의 하나가 될 듯하다.

 

<조선일보/곽남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