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 만물박사

펭귄은 어떻게 추위를 견딜까

부산갈매기88 2012. 12. 6. 07:08

 

영하 50도, 시속 180㎞ 눈보라 속 촘촘한 털과 두꺼운 지방으로 견뎌
털 없는 부리에는 열 교환장치 갖춰 '뒤뚱 걸음'도 에너지 최적화의 결과
'순환 밀착'으로 바깥 동료를 보호… 개인 희생 강요 않는 게 민주주의

이영완 산업부 차장
폭설(暴雪)에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다. 얼마나 껴입었는지 학교로 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마치 펭귄이 뒤뚱거리는 듯하다. 그렇다. 우리보다 훨씬 추운 남극에 사는 펭귄이 있다. 섭씨 영하 50도까지 내려가고 블리자드(blizzard)라는 세찬 눈보라까지 부는 극한(極寒)을 펭귄은 어떻게 견딜까.

겨울엔 먼저 옷을 단단히 입어야 한다. 남극에 사는 황제펭귄도 자연의 방한복(防寒服)을 여러 벌 겹쳐 입는다. 우선 깃털은 매우 촘촘해서 물도 스며들지 못한다. 게다가 깃털 아래에는 보드라운 솜털이 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공기층은 찬 기운이 몸으로 전달되는 것을 막는다. 마지막 울타리는 지방층이다. 펭귄의 몸에는 추위를 막는 3층으로 된 두꺼운 지방층이 있다.

아무리 옷을 껴입어도 얼굴을 다 가릴 수는 없듯이 펭귄 역시 털이 막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부리다. 여기엔 동맥과 정맥 간의 특수 열 교환장치가 있다. 심장에서 오는 동맥에는 더운 피가 가득하다. 이 피는 몸 구석구석으로 가서 산소를 전달하고, 정맥을 통해 다시 심장으로 돌아온다. 부리 구석구석에 있는 정맥은 매우 찬 공기에 가까이 있어 쉽게 온도가 내려간다. 이때 정맥 바로 옆에 있는 동맥에서 열을 전달해 정맥에 흐르는 피를 데워서 얼지 않게 한다. 북극여우나 개의 발바닥, 돌고래의 지느러미에도 같은 구조가 있다.

추울 때는 에너지를 덜 쓰는 것도 한 방법이다. 펭귄의 우스꽝스러운 걸음걸이는 에너지 소비의 최적화(最適化)를 위해 만들어졌다. 펭귄은 걸을 때 좌우 한쪽으로 쏠리면서 순간적으로 정지한다. 2000년 미국 UC버클리대 연구진은 이를 추(錘)의 운동으로 설명했다. 추 역시 한쪽 정점에 갔을 때 일시적으로 정지한다. 이때의 위치에너지는 다른 쪽으로 움직이는 순간 운동에너지로 바뀐다. 펭귄도 같은 방법으로 에너지를 비축한다는 것이다. 실험 결과 황제펭귄은 두 걸음을 걷는 동안 80%의 위치에너지를 비축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다음 걸음을 걷는 데 쓰인다. 사람은 그 비율이 65%에 그친다.

황제펭귄은 이중 삼중의 보온장치로 무장한 채 이름 그대로 품위 있게 남극의 혹한을 견딘다. 그래도 시속 180㎞의 블리자드가 닥치면 품위도 팽개치고 뒤뚱거리기 시작한다. 놀라서 도망가는 게 아니다. 펭귄 수백 수천 마리가 서로 몸을 최대한 밀착시켜 거대한 덩어리를 이룬다. 마지막에 기댈 곳은 결국 동료의 체온인 것이다. 뭉치면 모두가 살 수 있다. 그러면 바람을 그대로 받는 맨 바깥쪽 펭귄은 어떻게 되는 걸까. 동물세계에서는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적 행동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드물다. 대부분 자신의 생존을 최고 목표로 놓고 산다. 펭귄도 마찬가지일까.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지난해 독일 에를랑겐-뉘른베르크대의 물리학자인 다니엘 지터바르트 교수는 펭귄의 군집(群集) 행동에 숨겨진 비밀을 풀기 위해 생리학자·해양생물학자들과 함께 남극으로 날아갔다. 연구진은 바깥쪽에 있는 펭귄이 순차적으로 군집 안쪽으로 자리를 옮기는 현상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수많은 펭귄이 한 치의 틈도 없이 밀착된 곳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까.

연구진은 몇 시간 동안 펭귄 군집을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했다. 그 결과 맨눈으로는 볼 수 없던 주기적인 움직임이 포착됐다. 펭귄 군집은 30~60초에 한 번씩 물결처럼 요동쳤다. 파동(波動)은 초속 12㎝로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블리자드가 불 때 펭귄 군집은 1㎡ 면적에 평균 21마리가 모여 있을 정도로 촘촘했다. 이런 단단한 밀집대형이 주기적으로 짧은 순간 흐트러지면서 바깥쪽 펭귄이 안쪽으로 조금씩 들어간 것이다. 연구진은 마치 밀가루 반죽이 늘어나는 것과 비슷했다고 밝혔다.

수학자도 펭귄 군집의 비밀을 푸는 데 동참했다. 지난달 말 미국 UC머세드의 프랑스와 블랑세 교수는 미국 물리학회 유체역학 모임에서 펭귄의 군집에서 나타나는 주기적 형태변화를 수학적으로 해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처음에 맨 바깥쪽 펭귄이 가장 안쪽으로 옮기는 원칙만 적용하자 군집은 갈수록 바람이 불어나가는 쪽으로 길고 좁은 모양으로 변했다. 실제 펭귄 군집은 그보다 원형에 가깝다. 바람으로 인한 소용돌이 등의 무작위적인 현상을 추가하자 시뮬레이션 모델은 실제와 비슷해졌다. 블랑세 교수는 "추위에 대항하는 펭귄의 군집은 이기적인 개체들이 모였어도 전체로는 열을 공평히 나눌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펭귄은 각자 살기 위해 군집을 이뤘을 뿐이다. 바깥쪽 펭귄에게 자리를 내준 것도 이타적 행동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바깥쪽 펭귄들이 얼어 죽고 결국에는 군집이 붕괴될 게 뻔하다. 그럴 바에야 전체가 조금씩 자리를 옮기는 게 낫다. 그러면 나중에 내가 밖으로 밀려났을 때도 다시 안쪽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누군가의 희생 없이도 다 같이 살 수 있다. 인간 사회의 민주주의도 그런 것이 아닐까.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