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식히기

목숨을 건 장기내기

부산갈매기88 2013. 7. 12. 07:44

한 부자 청년이 오랜만에 사부를 찾아갔다. 응석받이로 자라난 청년은 사부에게 큰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비결을 가르쳐달라고 청했다. 사부는 비단옷차림에 곱상하기만 한 제자를 잠잠히 바라보았다. “네가 가장 즐기는 일이 무엇이냐?” “장기 두는 것을 좋아합니다.” “좋다, 그렇다면 장기를 두도록 하지.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내가 정하는 규칙에 따라 두어야 한다.” 비결을 알고 싶은 애타는 마음에 청년은 동의했다. 사부가 말했다. “자, 새 규칙은 한 가지뿐이다. 지는 사람은 죽어야 한다.”


청년은 장기를 두면서 비 오듯 땀을 흘렸다. 일평생 무엇에 열중한 적이 없었는데 목숨이 걸린 일이고 보니 그는 몇 수를 내다보게 되었다. 차츰 승세가 굳어졌다. 이윽고 노사부가 결정적인 실수를 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청년은 사부를 바라보았다. 사부는 자신의 실수를 눈치채지 못한 듯 장기판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청년은 사부의 지혜로운 눈과 주름 잡힌 손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사부는 수많은 사람을 도와주었고 그 앞에 앉아있는 자신은 쓸데없는 일로 허송세월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윽고 그는 마음을 굳혔다. 청년은 상관없는 졸을 움직였다. 결정적인 ‘장’을 부르지 않은 것이다. 그 순간 사부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고 장기판은 뒤집어졌다.

 

“아무도 죽지 않는다. 너는 네가 바라는 것을 얻었다. 너의 집중력이 대단하구나.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네가 큰 동정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훌륭한 인생을 위해서는 이 두 가지만 있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