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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호르몬 '옥시토신'… 자폐증·거식증 고친다

부산갈매기88 2014. 4. 7. 10:26

[엄마와 아기 친밀감 높이는 호르몬… 마음의 병에 효과 있어]

엄마의 뇌하수체서 분비되는 자궁수축 호르몬 '옥시토신'


자폐 환자에게 흡입하게 하자 호의적인 상대의 눈 똑바로 봐
거식증 환자 강박관념 줄기도

세상에서 사랑만큼 아름다운 게 또 있을까. 아기를 바라보는 엄마나 서로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연인은 보는 사람의 마음마저 따듯하게 한다. 국내외 과학자들이 엄마와 아기, 남자와 여자를 이어주는 '사랑의 호르몬' 옥시토신(oxytocin)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치유하러 나섰다. 이들은 마음의 문을 닫은 자폐증과 거식증, 심지어 성욕(性慾) 감퇴까지 사랑의 호르몬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본다.

◇고혈압약으로 자폐 치료 가능

옥시토신은 아기를 낳을 때 엄마의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자궁 수축 호르몬이다. 아기가 젖을 빨 때도 옥시토신이 분비돼 엄마와 아기의 친밀감을 높인다. 동물 실험에서 옥시토신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새끼가 어미를 따라다니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치 인간이 자폐증에 걸린 것과 같다.

프랑스 신경과학인지센터의 안젤라 시리구(Sirigu) 박사는 2010년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자폐증 환자들이 옥시토신을 코로 흡입하고 나서 컴퓨터에서 가상의 상대와 공을 주고받는 게임을 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전에는 자신에게 호의적이거나 적대적인 상대를 구별하지 못했다. 사회성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옥시토신을 흡입하자 적대적인 상대를 멀리했다. 옥시토신은 사람의 눈도 바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자폐 환자는 사람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턱이나 입을 바라본다. 시선도 자주 바꾼다.


	(왼쪽 사진)‘사랑의 호르몬’옥시토신의 분자구조로 만든 목걸이. 연인에게 사랑의 징표로 선물한다. (오른쪽 사진)옥시토신으로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프레리 들쥐.
(왼쪽 사진)‘사랑의 호르몬’옥시토신의 분자구조로 만든 목걸이. 연인에게 사랑의 징표로 선물한다. (오른쪽 사진)옥시토신으로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프레리 들쥐. /madewithmolecules.com·Nature 제공
프랑스 국립의학연구소(INSERM)의 에헤즈켈 벤-아리(Ben-Ari) 박사는 기존 고혈압 치료제가 옥시토신이 자폐를 막는 과정을 대신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산모가 분비한 옥시토신은 출산 시 태아의 뇌 세포에서 염소(Cl) 이온의 농도를 낮춘다. 동물 실험에서 출산 후에도 염소 이온이 계속 높으면 나중에 자폐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염소 이온은 자궁에서 태아가 자라는 동안 신경세포를 계속 흥분 상태로 유지한다. 뇌가 급속히 자라기 위해서다. 그런데 출산 과정에서도 신경세포가 계속 민감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벤 아리 박사는 한 고혈압 치료제가 신경세포에서 염소 이온의 전달을 막는 점에 주목했다. 어미 쥐에게 이 고혈압 치료제를 먹이자 새끼의 뇌에서 염소 이온과 신경세포 활동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연구 결과는 지난 2월 '사이언스' 인터넷판에 발표됐다.

◇거식증 환자, 마음의 문 열어

거식증(拒食症)도 마음의 병이다. 몸매가 정상인데 자신의 눈에는 뚱뚱하게 보인다고 음식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주로 청소년들이 걸리는데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명의 환자가 있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치료제는 없는 상황이다. 인제대 서울백병원 김율리 교수와 영국 킹스칼리지 자넷 트레저(Treasure) 교수 연구진은 옥시토신으로 거식증 환자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음을 입증했다.

연구진은 지난달 13일 '심리신경내분비학'지에 거식증 환자에게 음식이나 사람의 몸을 찍은 사진을 보여준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거식증 환자는 보통 고칼로리 음식이나 뚱뚱한 몸매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음식 때문에 자신의 몸이 뚱뚱해졌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옥시토신을 흡입하면 이런 경향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옥시토신은 남녀가 사랑할 때도 분비돼 친밀감을 높인다. 북아메리카 대초원에 사는 들쥐는 다른 종과 달리 한 번 짝짓기를 한 암수가 평생 같이 산다. 짝짓기를 하면 암컷이 옥시토신을 분비해 수컷의 눈에 평생 콩깍지를 씌우기 때문이다. 독일 하노버의대 연구진은 '호르몬과 행동 저널' 3월호에 옥시토신을 흡입한 남녀는 이전보다 성 만족도가 높았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앞으로 옥시토신이 성욕이 낮거나 발기부전이 있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지 알아보겠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2014. 4.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