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적인 고요와 만나다, 세량지
전라남도 화순군에 위치한 세량지는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1969년에 준공된 저수지이다. CNN에서 선정한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50곳에 선정되기도 한 이 저수지에 그 명성만 듣고 무작정 찾아갔다가는 실망과 더불어 분노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햇볕 쨍쨍 내리쬐는 덥디더운 여름 한낮에 세량지를 방문하여 유명세에 대한 의구심만 남기고 오지는 말자.
세량지는 벚꽃이 만개하는 봄이 되면 그 매력을 발산하는 곳으로, 해뜨기 직전의 물안개와 파스텔톤 벚꽃의 반영이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분홍빛 벚꽃과 초록빛 나무의 색깔이 잔잔한 수면에 거울처럼 투영되어 수면 위의 반영이 실감 나게 살아난다.
해가 뜨기 전에 몽환적으로 아른거리던 물안개는 해가 뜨는 즉시 연기처럼 사라지는데, 물안개가 사라지기 직전 햇빛이 서서히 나무들 하나하나 만지며 들어오는 그 순간이 바로 세량지의 가장 멋진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이 멋진 만남을 위해 봄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사진가들이 저수지 가장자리에 둘러앉아 장사진을 이룬다.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겨울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날씨에도 두꺼운 겉옷을 껴입고 새벽 내내 미리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 가을의 세량지 또한 단풍으로 알록달록 물든 산과 물이 만나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는데, 봄의 찬란한고 몽환적인 모습에 비하면 조금은 평범한 것 같다.
시간의 기억을 품은 옛길, 너릿재 옛길
광주에서 화순으로 넘어가는 경계에는 너릿재 터널이 있다. 옛날 옛적 너릿재는 광주와 화순 사이에 있는 험한 고개였다. 현재는 터널이 생겨 차로 몇 분 만에 쉽게 지나갈 수 있지만, 터널이 성기기 전에는 버스가 구불구불하고 좁다란 고갯길을 굽이굽이 넘어다녔다고 한다. 지금도 겨울에 눈만 쌓였다 하면 도로가 쉽게 얼어 차량 통제가 되는 구간이다.
▲ 너릿재 터널
▲ 광주에 속한 너릿재 옛길(좌)과 화순에 속한 너릿재 옛길(우)
터널이 생긴 너릿재의 새길 뒤로 너릿재 옛길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지만, 산책과 하이킹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길로 남아있다. 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의 좁다란 길을 쭉 따라 고개 정상에 다다르면 광주와 화순의 경계선이 나오는데, 한 가지 신기한 점은 광주에 속하는 길과 화순에 속하는 길이 확연히 틀린다는 것이다.
광주 쪽은 자동차를 배려한 포장도로이고 화순 쪽은 옛길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비포장도로이다. 화순 방향의 비포장도로 길이 너릿재 옛길 본연의 모습을 잘 유지하여 훨씬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분명하다. 광주 방향은 왜 예쁜 길을 굳이 도로포장 해서 옛길의 정취를 반감시켜버렸는지, 조금 안타깝게 느껴졌다.
봄에는 도로 가에 핀 예쁜 꽃들을 보면서 산책할 수 있고 여름에는 짙푸른 가로수가 방문객을 반긴다. 가을과 겨울 또한 각기 다른 멋진 풍경을 선사하리라. 편백나무의 피톤치드로 산림욕을 즐기며 걸으면서 가끔씩 다람쥐도 구경하고 시비(詩碑 /시를 새긴 비석)에 적힌 시도 감상하며 즐겁게 산책할 수 있다.
▲ 너릿재 옛길의 중간중간에는 벤치도 있고 오솔길이 나 있기도 해 한 숨 돌리며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준다.
▲ 전망대 쉼터
그리고 300년이 된 고목이 서 있는 쉼터가 있는데, 화순 방향의 전경을 즐길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한다. 이곳에서는 도시락을 먹는 가족들도 볼 수 있고 벤치에 앉아 잠시 주위 풍경을 감상하는 어르신들도 만날 수 있다. 고목 밑에는 너릿재의 유래에 대한 내용이 쓰여 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1971년 너릿재 터널이 완공되기 전까지 화순 사람들의 삶의 애환과 역사를 갖고 있는 유서 깊은 고갯길이다. 구전에 의하면 옛날 깊고 험한 너릿재를 넘던 사람들이 산적이나 도둑들에게 죽임을 당해 판, 즉 널에 실려 너릿너릿 내려온다고 해서 너릿재라고 불렀다고도…… "
너릿재에서 죽임을 당한 이들로 인해 생긴 이름이라니… 유래를 알고 나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너릿재는 수많은 역사와 함께 한 곳이다. 1519년 기묘사화 때 조관조가 유배 가던 길에 지났던 곳이고 1894-5년 동학농민군이 너릿재 동쪽에서 집단학살을 당한 곳이다. 또한 한국전쟁 때 남아있던 빨치산들이 한국군들과 교전을 벌여 수많이 사상자가 생겼던 곳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풍경과 아픈 역사가 공존하는 이곳, 이게 바로 너릿재 옛길의 또 다른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 전망대에서 바라본 화순 풍경
산적이 나타나던 옛길을 지나 소아르 갤러리에서 즐기는 커피 한잔의 여유
▲ 소아르의 정원
너릿재 옛길의 화순 방향 쪽 끄트머리에는 방문객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예쁜 갤러리가 존재한다. 예술을 탐구한 공간이란 뜻의 Space of Art Research의 줄임말인 소아르(SOAR)는 조각가 조의현, 조선대 미술대학 교수가 운영하는 곳으로, 이 곳에는 갤러리, 아트숍, 스튜디오, 카페, 레스토랑이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특이한 조각물이 방문객을 반기는데, 하늘을 향한 계단으로 올라가는 빨간 옷의 여인, 바로 <천국쇼핑>이라는 조각상이다.
▲ <천국쇼핑> 조형물
소아르 내에는 건물 하나하나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아름답게 자리 잡고 있고 정원 여기저기에 있는 특색 있는 조각품들이 절로 웃음을 짓게 만든다. 노출 콘크리트 건물과 파라솔이 붙어있는 화분 벤치, 돌로 만든 솟대, 냉동차에서 떼어낸 문 등등…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드는 게 없다. 햇살이 좋은 날이라면 야외 파라솔 아래 자리를 잡고 정원과 조각들을 벗 삼아 커피 한 잔을 해도 좋을 것 같다.
소아르를 방문하면 유독 똑같이 생긴 남자 캐릭터가 여기저기 보이는데, 레스토랑 내에 있는 <꽃 줄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꽃을 든 이 조각상은 바로 조의현 교수의 캐릭터라고 한다. 꼭 한번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재미있는 조각상이다. 건축물과 인테리어에서부터 벤치나 쓰레기통까지, 너무나 주위 환경과 잘 어우러져 작가가 설계부터 제작까지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지 상상만 할 따름이다.
▲ 조의현 교수의 캐릭터 / 각각 카페 입구와 레스토랑 내부에 위치해 있다.
▲ 레스토랑의 장식(좌)과 아트숍(우)
소아르는 예쁜 정원과 카페가 있어 연인과 함께 데이트를 즐기기에도 좋고, 각 건물 내부에도 신기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들로 가득 차 있어 예술과 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들러볼 만 하다.
▶여행정보
세량지: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세량리 250
소아르: 주소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이십곡리 601-12
– 홈페이지 : http://soar.myhome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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