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힘

日 다카야마의 영어 안내원

부산갈매기88 2018. 10. 26. 10:05

지난 9일 일본 중부 기후현의 산간 도시 다카야마(高山). 꼬불꼬불한 산길을 3시간 달려 버스터미널에 내렸더니 70대로 보이는 안내원이 다가와 "뭐 도와줄 것 없느냐"고 영어로 말을 건네왔다. 관광안내소에는 영어·아랍어·히브리어 등 11종의 책자가 있었다.

'후루이 마치나미(옛 거리)'까지 10분을 걸어가는 동안 소매가 큰 일본 전통 축제 의상 '핫피(法被)' 차림의 일본인들이 20~30m 간격으로 서서 영어로 안내해줬다. 상점 직원은 영어 단어를 억지로 조합해 가면서 외국인에게 과자와 수공예품을 쉴 새 없이 팔았다.

영어로 안내하는 전통 료칸(여관)의 노(老)주인에게 "어떻게 영어를 배웠냐"고 묻자 "10년 전부터 시청이 하는 영어 강좌를 들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일본은 도쿄 맥도널드에서도 '커피'가 아니라 '고히'(커피의 일본식 발음)라고 해야 알아듣는 '영어 안 통하는 나라'다. 그런데 엉뚱하게 산골인데도 영어가 잘 통했다.

다카야마가 이렇게 변한 출발점은 '도시 소멸 위기'였다. 10여년 전 일본의 많은 지방 도시처럼 인구가 줄고 상점들이 문을 닫자 일자리가 없어진 청년들이 도시 밖으로 떠나갔다. 이러다가 도시 자체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공포가 밀려왔다. 활로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였다. 이른바 '1대 8의 법칙'을 돌파구로 삼았다. 고령화·저출산으로 인구 1명이 줄면 1년에 120만엔(약 1200만원)의 소비가 사라진다. 하지만 한 번 방문해 숙박하면 1인당 15만~16만엔씩 쓰는 외국인 관광객 8명을 유치하면 1명의 성인 인구가 생기는 것과 같다.

이 법칙을 실현하기 위해 10여년간 다카야마시는 영어를 가르치고, 표지판을 바꾸고, 외국 여행 박람회에 참석했다. 모니터단을 만들어 외국인 입장에서 관광 인프라를 점검하고 시설을 뜯어고쳤다.

결정적인 것은 주민의 자발적 노력이었다. 작은 식당도 영어 메뉴와 영어 페이스북을 스스로 운영하며 홍보 활동을 펼쳤다. 지난해 여행 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저가 선정한 외국인 선호 일본 식당 30개 가운데 다카야마의 식당 6개가 선정됐다.

노력은 보상받았다. 하루라도 다카야마에서 숙박한 외국인 관광객은 1997년 3만명에서 지난해엔 18배인 52만명으로 급증했다. 관광에서 파급된 고용·설비투자 등 효과는 2조원이었다. 고령화와 인구 감
소로 인한 내수 절벽과 경기 침체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다카야마가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관광입국 정책을 10년 넘게 밀어붙인 일본에는 다카야마 같은 곳이 속출하고 있다. 한국도 고령화로 인한 내수 위축이 본격화하고 있다. 관광으로 제2의 내수 시장을 창출하겠다는 절실함과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우리도 고령화 충격을 이겨낼 수 있음을 다카야마에서 확인했다.

출처 : 조선일보 2018. 10.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