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진어묵 박종수 회장, '1억 기부'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에
1953년 피란민이 북적대는 부산 영도다리 판자촌에서 20대 청년이 쉴 새 없이 어묵을 튀겼다. 10대 시절 일본 홋카이도로 징용 갔다가 어깨 너머로 배워온 기술이었다. 제대로 된 밥 한 끼 먹기 힘든 판자촌 사람들에게 어묵은 동전 하나로 사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단백질 식품이었다.
그해 어묵집 단칸방에 누워있던 갓 낳은 아들이 아버지 뒤를 이어 반백이 되도록 어묵 사업을 키워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을 기부하고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아너소사이어티는 국내 최고(最古)·최대 규모의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이다. 박종수(65) 삼진어묵 회장은 아버지가 처음 솥단지를 건 1953년을 기념해 지난달 '1953호 회원'이 됐다. 이후에도 회원이 계속 늘어 25일까지 총 1991명이 동참했다. 박 회장은 "올해 손주를 봤는데, 기부하고 나니 손주 낳았을 때보다 더 마음이 벅차다"고 했다.
"창업주인 아버지가 '먹는 건 갈라 먹어야 칸다'는 말을 달고 사셨어요. 저도 아버지 뜻에 따라 어려운 주민들과 보육원에 수십 년 어묵을 보냈지만 그보다 더 큰 생각은 (이번 기부 전까지) 못 했습니다. 뉴스 보면 전 재산 기부하는 분들도 계신데, 민망하네예. 부끄럽습니다."
학창 시절 박 회장은 '어묵 공장 아들'로 통했다. 학교 파하면 집에 와서 저녁까지 어묵을 건지고 기름을 닦았다. 명절엔 일손이 달려 동네 사람들 모아 밤새 공장을 돌릴 만큼 장사가 잘됐다. 그래도 아버지인 고(故) 박재덕 창업주는 공장을 자식에게 물려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때 어묵은 '싸구려 불량 식품'이었다. 1986년 아버지가 자리에 누워, 6남매 막내인 박 회장이 공장을 맡았다.
이후 30년 넘게 삼진어묵은 떡볶이에 들어가는 '납작' 어묵, 꼬치 만드는 '길쭉' 어묵을 파는 회사였다. '대박'을 친 게 5년 전이다. 뉴욕에서 유학하고 온 박 회장의 아들이 "불량 식품 이미지를 없애겠다"며 '어묵 크로켓'을 선보였다. 쓰러져가던 공장을 '어묵 베이커리'와 '어묵 역사관'으로 리모델링하고, 손님들이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제조 과정을 보게 했다. 최고급 재료로 '땡초 어묵' '새우 어묵' '전복 어묵' 같은 새로운 메뉴를 60~70가지 개발했다. 아들이 "1년 안에 줄 서게 하겠다"고 했는데, 일주일 만에 손님들이 가게 앞에 줄 섰다. 연매출이 2013년 82억에서 지난해 860억, 올해 920억으로 뛰었다.
박 회장이 '어렵던 옛날'을 떠올린 게 그때였다. 삼진어묵 영도 본점 앞에 줄 선 이들을 보며 박 회장은 아들에게 "우리가 이렇게까지 사랑받을 자격이 있나. 어깨가 많이 무겁네" 했다. "아무나 동전 하나로 사 묵을 수 있는 기 어묵이었는데, 인자 한 개 몇 천원씩 하니 이것도 마음껏 사 묵긴 어렵겠다"는 얘기도 했다.
박 회장은 "실제로 3년 전 겨울에 손님들이 한 시간씩 줄서서 기다리길래 제가 뜨끈한 어묵 국물을 떠서 나눠드렸는데, 중년 아주머니가 갑자기 우시더라"고 했다. '왜 우시냐'고 했더니, '이거 먹고 싶어 대전에서 3시간 걸려 왔는데 비싸서 많이는 못 사 먹겠다'고 해요. '어묵이 아무리 고급이 돼도, 서민 애환을 달래는 음식이어야겠다' 이런 다짐을 했어요."
박 회장이 기부한 1억원은 삼진어묵이 창업 이래 가장 오래 만들어 판 상품 '사각 어묵'을 67만장 팔아야 버는 돈이다. 아들 박용준 대표는 "아버지가 나 안 주고 기부한 거, 아깝지 않다"고 했다. "지금껏 키워주신 것만도 감사해요. 제가 어렸을 땐 삼진어묵이 지금처럼 큰 회사가 아니었고 집안 사정도 그리 넉넉하지 않았어요. 유학 가서도 아버지가 '네가 벌어 쓰라'며 용돈을 너무 안 보내주셔서 온갖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박 회장은 "솔직히 일하고 벌 줄만 알았지 '나눔의 기쁨' 같은 거 모르고 살았다"고 했다. "근데 기부를 해보니 '카타르시스'가 있네예. 사실 돈은 써야 돈이지 갖고 있으면 뭐 합니꺼. 앞으로는 가족 모두 기부에 동참하는 게 안 좋겠나 생각합니다."
출처 : 조선일보/2018/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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