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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열용기 ‘바로쿡’ 개발 노트: “불 없이 음식 끓이는 용기, 24개국 수출해 연매출 30억원 올립니다”

부산갈매기88 2022. 5. 12. 08:02

많은 아이디어가 발상의 전환이나 우연에서 시작되지만,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은 엄두내기 어려운데요.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견본이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취사도구 없이 조리할 수 있는 발열용기 '바로쿡'을 개발한 주식회사 사람의 라수환 대표. /더비비드

등산, 캠핑 등 야외활동 시 큰 골칫거리 중 하나는 음식 조리다. 안전을 위해 불 사용을 금지하는 지역이 많기 때문이다.

생활용품 제조 및 수출 업체 사람의 ‘바로쿡’은 취사도구 없이 음식을 따뜻하게 데울 수 있는 발열 용기다. 발열팩, 용기 그리고 물만 있으면 5분 만에 음식을 조리할 수 있다. 등산족, 캠핑족의 호응을 얻어 지난해 사각형 발열 용기만 50만개 이상 팔렸다. 주식회사 사람의 라수환(53) 대표를 만나 바로쿡 개발 노트를 엿봤다.

 

◇불없이 라면 끓여주는 발열 용기

바로쿡은 세계 최초의 비화식 발열 용기다. 외용기에 발열팩과 물을 넣어 뜨겁게 끓도록 만들어서, 내용기 속 음식을 데우는 방식이다.

 

발열팩은 물에 닿자 마자 끓는다. 발열팩의 크기에 따라 조리 시간을 조절할 수 있어 수프 같은 간단한 요리부터 파스타, 스테이크처럼 20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요리도 만들 수 있다. 온라인몰(https://bit.ly/3M5jOOo)에서 한정기간 공동구매 행사중이다.

바로쿡 용기에 발열팩을 넣어 물을 부으면 끓어오른다. /라수환 대표 제공

머릿속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일을 좋아한다. 1998년 생활용품 제조 및 수출 업체 아도글로벌을 창업했다. 프라이팬, 냄비 등 생활용품을 만들어 유통하는 회사였다. 국내 홈쇼핑뿐만 아니라 해외 온라인몰에도 진출했다. 2001년 밀폐 용기 시장에도 뛰어들었고, 2005년 사업 확장을 위해 주식회사 사람을 설립했다.

회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했지만 비약적인 성장엔 한계가 있었다. 밀폐 용기의 제조 과정이 단순해 경쟁업체가 많았던 탓이다. 분기점을 맞이하려면 독보적인 아이템이 필요했다. 그때 군대에서 전투 식량을 데우는 데 사용되는 ‘발열팩’이 눈에 들어왔다. “발열팩을 이용해 ‘음식을 데우는 용기’를 만들면 어떨까 싶었어요. 취사 시설이 없는 사무실뿐만 아니라 등산, 캠핑, 낚시 등 야외에서도 활용할 수 있으니 수요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죠.”

 

◇발열 용기 ‘로쿡’ 개발 노트

1. 내용기와 외용기를 구분한 단순한 발상 (제품 기획: 2010년)

바로쿡으로 라면을 조리해 먹는 모습. /라수환 대표 제공

야외활동을 즐기는 지인들을 대상으로 시장조사를 했다. ‘불 사용이 금지된 지역이 많아, 갖고 갈 수 있는 음식이 많지 않아 아쉽다’는 응답이 많았다. 화기 없이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용기를 만들기로 했다. 발열팩을 밀폐 용기에 접목한 형태로 제품을 구상했다.

관건은 발열팩과 음식을 분리하는 것이었다. “발열팩의 원료는 생석회입니다. 생석회는 석회석을 1000℃ 이상의 고온에서 연소시켜 만든 산화칼슘인데요. 물에 닿으면 130℃ 수준의 중화열을 방출하죠. 생석회는 절대로 음식에 닿아선 안 됩니다. 침만 닿아도 열을 방출해서 입 안을 다치게 할 수 있으니까요. 어떻게 발열팩을 음식과 분리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용기 2개의 크기를 달리해 감싸는 용기(외용기)와 안에 들어가는 용기(내용기)로 구분하기로 했어요. 외용기에 발열팩과 물을, 내용기에는 데울 음식을 담는 식이죠.”

열을 일으키는 발열팩 포장 모습. /더비비드

열이 닿아도 안전한 소재를 용기에 적용했다. “외용기의 소재는 밀폐 용기에 주로 활용되는 폴리프로필렌(PP)입니다. 내열 온도가 100℃에 달하는데 가격 경쟁력이 좋아 널리 사랑받는 소재죠. 내용기는 알루미늄으로 만들었습니다. 가스버너와 짝꿍인 알루미늄 직화 용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죠. 알루미늄은 200℃ 이상의 열도 견딥니다.”

2.음식 용량과 조리 온도별 테스트 후 제품 구성 (제품 개발과 설계: 2011년 1월~)

형태를 구상한 뒤 제품 개발에 들어갔다. 발열팩이 음식을 얼마나 따뜻하게 데울 수 있는지 시험부터 했다. “음식과 발열팩의 용량을 달리하며 음식을 데우는 과정을 수십번 거듭했어요. 소비자들이 야외에서 먹는 적절한 음식의 양을 500~2000ml, 적절한 온도를 70℃로 가정해서 시험을 반복했죠.”

초기 바로쿡 모습. 네모가 아닌 동그란 모양이다. /라수환 대표 제공

시혐 후 용량별 조리 시간을 한데 정리했다. “발열팩 20g 기준으로 500ml 음식을 75℃로 데울 수 있었어요. 100g짜리 발열팩은 2000ml 음식을 85℃로 데웠죠. 용량에 따라 5~20분이면 웬만한 음식을 조리할 수 있었습니다.”

용기에 쓸 발열팩도 직접 개발했다. “군대에서 활용되는 발열팩의 원료를 분석했어요. 보통 생석회가 주원료고 그 외에 칼슘 등의 혼합물질이 들어가는데요. 생석회와 혼합물질의 배합비에 따라 발열 온도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저희 제품에 넣기 적당한 음식의 양과 온도를 설정한 뒤 생석회와 혼합물질의 비율을 정했습니다.”

 

용기의 형태와 용량도 다양화했다. “처음엔 컵라면 용기처럼 생긴 원통형 용기를 만들었어요. 등산이나 낚시를 갔을 때 가장 많이 만들어 먹는 간편식 중 하나가 라면이니까요. 용량은 라면 1개가 들어가는 수준인 500ml로 정했죠. 뒤 이어 더 많은 종류의 음식을 조리할 수 있도록 용량을 1200ml로 늘린 도시락 모양의 용기도 개발했습니다.”

3.박람회를 제품 소개 무대로 활용 (대량 판매 및 수출 시작: 2011년 7월~)

라수환 대표와 바로쿡 발열 용기. /더비비드

2011년 7월 대량 생산을 시작했다. “밀폐 용기 사업을 할 때부터 제조를 담당했던 공장에 생산을 맡겼습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여러 공장을 찾은 후, 일일이 방문해 섭외한 곳인데요. 저희가 원하는 기술력과 설비를 보유하고 있는지 확인한 후 거래를 시작해 지금까지 연을 이어가고 있죠. 제조업체에겐 공장과의 신뢰 관계가 아주 중요합니다. 제품의 질과 직결되니까요.”

2011년 9월 미국과 중국의 쇼핑몰에서 화기가 필요 없는 발열 용기 판매를 시작했다. “세계 최초의 비화식 발열 용기입니다. 제품을 완성한 후 기존의 거래처뿐만 아니라 아웃도어 용품 판매처의 문도 두드리고 다녔습니다. 국내외 가릴 것 없이 아웃도어, 스포츠용품 박람회를 모두 찾아다녔어요. 현장에서 만난 업계 관계자들에게 제품을 직접 보여주며 설명했죠. 생소한 제품이라 반응이 뜨거웠어요. 독일, 중국, 미국, 일본 등에 특허를 내고 수출을 시작했습니다.”

4.더 나은 제품에 대한 고민 지속 (제품 개선 및 판매: 2015년~)

해외박람회에서 직접 제품을 설명하고 있는 라수환 대표. /라수환 대표 제공

4년간 해외 온라인몰을 중심으로 제품을 판매했다. 반응이 좋아 거래처가 점점 늘어났지만, 그만큼 아쉬운 점에 대한 피드백도 쌓였다. 2015년, 제품의 내열성과 내구성을 높이는 작업에 들어갔다. “기존에 사용한 PP와 알루미늄보다 더 견고하고 열에 강한 소재를 찾기 시작했어요. ABS, 트라이탄, 폴리에틸렌 등 용기를 만드는 데 쓰이는 플라스틱 기반 소재의 견고성, 가격, 내냉 온도, 내열 온도 등을 분석했습니다.”

외용기는 폴리카보네이트, 내용기는 스테인리스로 변경하기로 했다. “기존 소재보다 가격은 더 비싸지만 모두 열과 충격에 강합니다. 발열 용기에 최적의 소재죠. 춥고 더운 환경으로부터 음식의 온도를 보호하고, 더 오래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둘 다 -10℃보다 낮은 온도에 얼지 않고, 130℃ 이상의 열에도 녹지 않아요.”

바로쿡으로 음식을 데운 모습. /라수환 대표 제공

유해 물질이나 화상이 걱정된다는 후기도 적극 반영했다. “각종 산업 기준을 인증해주는 회사 SGS에 유해 물질 시험을 의뢰했어요. 유럽에서 금지하는 혼합물과 4대 중금속이 없음을 인증 받았습니다. 발열팩이 열을 내도 유해 물질이 전혀 방출되지 않아요. 혹시나 뜨거운 용기에 손을 다칠까 걱정하는 분들을 위해 네오프렌 재질로 만든 용기 커버도 추가했습니다.”

◇해외 24개국 수출, 연매출 30억원 달성

2019년, 새로 보완한 바로쿡을 출시했다. 850ml, 1200ml의 사각형 용기 2종과 900ml의 원형 용기 1종으로 구성됐다. 발열팩 단위는 20g, 50g, 80g 3종류로 조리 시간에 맞춰서 쓰면 된다. 7~10분만 데우면 되는 죽 같은 요리를 조리할 때는 20g 팩을, 15~20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음식을 조리할 때는 50g, 80g짜리 팩을 사용하는 식이다.

라수환 대표. 사각형 발열 도시락 제품만 지난해 50만개 이상 팔리며 연 매출 30억원을 기록했다. /더비비드

불을 지필 필요 없이 야외에서도 음식을 할 수 있는 도구라고 캠핑족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다. 사각형 발열 도시락 제품만 지난해 50만개 이상 팔리며 연 매출 30억원을 기록했다. “국내외 온라인몰(https://bit.ly/3M5jOOo)뿐만 아니라 아웃도어 용품점에서 제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해외 24개국에 수출 중이고, 바로쿡의 성과를 발판으로 아웃도어 관련 제품을 꾸준히 개발해 수출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예비 창업가에게 ‘섣부른 걱정은 기우’라고 신신당부했다. “사업을 시작한 지 벌써 23년이 넘었는데요. 지금은 발열 용기로 좋은 성과를 내고 있지만 처음엔 많이 힘들었습니다. 소위 ‘맨땅에 헤딩’의 반복이었죠. 그래도 사람들의 편리한 일상에 도움이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달려왔어요. 포기하지 않으면 내가 달려온 길이 성공을 향한 과정이 되지만 포기하는 순간 모든 걸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니까 중도에 관두지 말고 끝까지 도전하세요.”

 

조선일보 2022. 5.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