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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위를 날던 새가 머무는 집, 구례 운조루

부산갈매기88 2010. 6. 29. 09:26

구름 위를 날던 새가 머무는 집, 구례 운조루


구름 위를 날던 새가 머무는 집, 구례 운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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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따라 넘나드는 구름처럼, 자유로이 제 집 찾는 새처럼 ’ 고향에 안겨 살고자 했던 이의 집. 전남 구례군 토지면 문화 류씨 10대 종가인 운조루. 이 집은 조선 영조 52년 삼수부사를 지냈고, 수원화성과 남한산성, 낙안읍성 등 이름만 들어도 익히 알 수 있는 건축 공사에 참여한 조선시대 무관인 류이주가 지은 99칸 대저택이다.

운조루가 자리한 곳은 지리산 노고단을 배산으로 섬진강을 임수로 삼고, 그 가운데 넓은 들판을 문전옥답으로 삼은 조선의 3대 양택 명당에 하나인 금환락지 터이다. 전망도 좋고, 풍수상으로 대명당에 해당하는 터이지만 이 지리산 아래 동네는 동학, 빨치산, 6․25의 중심현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주집인 이 운조루가 불타지 않고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것이 알고 보면 대단한 사실이다.

왜 부잣집인 운조루는 빨치산과 6․25에서도 살아남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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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의 사랑채 옆에는 나무통으로 만든 뒤주가 하나 있다. 두 가마 반이 들어가는 원통형 뒤주이다. 이 뒤주 아랫부분에는 조그맣게 네모진 나무에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글씨가 적혀있다. ‘다른 사람도 능히 열수 있다’는 뜻이다. 이 부잣집의 뒤주에 들어 있는 쌀은 지나가던 과객이나, 아니면 동네의 가난한 사람들이 아무나 와서 마개를 열고 1~2되씩 쌀을 퍼갈 수 있도록 배려했던 것이다. 운조루에서 배려했던 쌀의 양은 한 달에 두 가마 반이었다. 만약 월말에 뒤주의 쌀이 남아 있으면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책망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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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안이 덕을 베풀어야 하는데, 이렇게 쌀이 남아 있으면 덕을 못 베풀었다는 증거 아니냐!”

평소에 어려운 이웃들이 이 쌀을 퍼갔다. 6․25 때 빨치산들이 수없이 이 지역을 들락거렸지만 이 집은 피해가 없었다. 다른 동네 출신들이 뭣 모르고 운조루를 불태우려고 하면, 이 동네 머슴 출신의 좌익들이 이를 말렸다고 한다.

“다른 집은 다 태워도 저 집은 태우면 안 된다!”

또 하나 이집에 숨어있는 적선방법에 비결은 굴뚝을 높게 하지 않은 것이다. 끼니를 잇지 못하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밥 짓는 연기마저 보이지 않게 하기위해 부엌에 불편을 감수하며 굴뚝을 낮춰 지은점 하나만으로도 드러내지 않으며 이웃에게 배려하는 주인의 마음이 동학동민운동이나 6․25 때 빨치산의 최대 은거지인 지리산 자락 이곳에서 온전히 이집을 지켜 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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