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가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오르던 중의 일이다.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 심한 갈증에 고인 물을 마셨는데, 다음 날 보니 어젯밤 마신 물이 해골에 담긴 썩은 물이었다. 놀라 구역질을 하던 원효는 순간 깨닫는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음을 얻은 원효는 유학을 포기하고 저잣거리로 나와 대중 교화에 앞장선다.
이것이 그 유명한 원효의 해골 물 깨달음 이야기다. 원효를 다룬 온갖 위인전들은 물론 춘원 이광수의 소설 <원효대사>에도 등장하는 이 유명한 이야기는 실제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힘든 설화에 불과하다. 일연의 <삼국유사> ‘원효불기조’에도 이 같은 장면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원효의 해골 물 이야기는 대체 어떻게 시작된 걸까? 중국 문헌인 연수의 <종경록>, 찬녕의 <송 고승전>, 덕흥의 <임간록>등의 책에 지금 알려진 원효의 해골 물 이야기와 유사한 사례들이 기록되어 있는 원효의 깨달음 부분이 각각 조금씩 다르다는 사실이다. <송 고승전>에서는 해골 물 대신 귀신이 나오고, <종경록>에선서는 해골 물이란 표현 대신 시체 썩은 물이란 뜻의 사시지즙이란 표현이 등장한다.
<임간록>에서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해골 물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다. 하지만 <종경록>과 <임간록>은 불서라기보다는 선가쪽 책으로 분류되는지라 아무래도 신뢰하기 힘들다. 신비주의적인 선가의 특성상 원효가 깨달음을 얻는 장면이 보다 극적인 장면으로 윤색됐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문정 <잡학박물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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