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식히기

[ESSAY] 그래도 내가 기부를 하는 이유/류시문 한맥도시개발 회장

부산갈매기88 2010. 12. 8. 12:56
류시문 한맥도시개발 회장

사람들은 내가 부자인 줄 안다 그렇지만 난 아니다
차 유지비 아까워 지하철과 버스 타고 아들 생일날 외식도 외면했다
냉장고도 붉게 녹슬고 양복도 10년이 더 된 것이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이라 추앙받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경영이란 단순히 '돈벌이'가 아니라 사람들의 행복에 기여하는 가치 있는 일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많은 어려움과 위기를 겪게 되는데 만약 '돈벌이'로만 생각했다면 그 많은 위기를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기업인으로서 이익을 얻는 것 이상의 숭고한 사명을 가지고 사회를 위해 일한다고 생각했을 때 보람과 자부심이 생겼다.

마쓰시타는 '가난, 허약 체질, 짧은 배움'이 성공의 바탕이라고 했다. 누구나 이런 조건에서 태어났다면 좌절했을 텐데, 그는 자신의 어려움과 여건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남달랐다. 가난해서 일찍이 돈 버는 법을 배웠고,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해 운동을 하고 남에게 부탁하는 법을 배웠으며, 배움이 모자라 항상 남에게 가르침을 구했다고 한다. 좋지 않은 여건을 오히려 긍정적인 면으로 바꾸는 지혜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나 역시 어렸을 때 사고로 한쪽 다리가 불편해졌고, 중이염으로 양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중복 장애를 가졌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신문배달도 하고 남의 집살이도 하면서 대학도 남들보다 뒤늦게 진학했다. 청년 시절은 암울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절망과 한숨뿐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너에게도 희망이 있다"고,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예언 같은 믿음을 주셨던 노부부 교수님이 계셨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내가 수업시간에 귀가 안 들려 늘 옆의 친구에게 노트를 빌려서 공부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나를 친자식처럼 여겨주셨다. 창업할 때도 자금 500만원이 없어 고생하는 것을 보고, 선뜻 정기예금을 해약해 그 10배인 5000만원을 대주셨다. 나중엔 집까지 저당잡히며 사업에 쓰라고 내주셨던 분들이다. 바로 이분들 덕에 기업을 일구었고, 그래서 오늘 기꺼이 이 사회를 위해 기부를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어느 정도 사업에 성공한 후 사회복지사들을 위해 2억원을 기탁했다. 그리고 다른 사회사업이나 교육, 문화예술, 선교 등에도 힘이 닿는 대로 기부했다.

사람들은 내가 부자인 줄 안다. 그렇지 않다. 조그만 기업의 창업주일 뿐이다. 차량 유지비가 아까워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녔다. 집에는 냉장고가 낡아 붉게 녹슬어 있다. 아내는 불만이다. 그래도 냉장고 속은 아직 하얗다고 호통을 쳐서 잠재운다. 생일날 외식 한번 시켜달라고 조르는 아들에게 버릇없다고 훈계로 때우기도 했다.

집을 나와 하늘을 보면, 아내와 아들의 얼굴이 어른거려 얼른 고개를 숙여 땅만 보고 걸었다. 공짜로 운동한다고 열심히 계단을 오르내렸다. 지금은 정상적인 다리의 관절마저 마모되어 지팡이에 의지해 산다. 양복은 10년이 더 된 것이고, 넥타이는 선물 받은 것까지 합쳐 4개다. 회사에서 이면지를 쓰지 않는 직원을 보면 호통을 친다.

50년 전, 누구나 어려운 시절을 살았지만 몸서리칠 정도로 가난했던 그때가 내 생활의 눈높이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더 채우려고 기를 쓰는 것을 본다. 나는 그저 덜어내면서 살려 한다.

그러나 최근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성금을 잘못 써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내가 받은 충격을 실망이나 안타까움이라고만 표할 수는 없다. 한 언론사에서 나에게 이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누며 살자는 마음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일부의 잘못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접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번 일로 사회복지 일을 하는 모든 기관과 사람들은 인격적 자기실현을 위해 더욱 분발해야 할 것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이 기회에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다시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기를 바라는 마음 정말 간절하다.

다행히 이번 일로 1억원 이상 기부자들의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중 단 한명도 이탈하거나 기부를 철회한 사람은 없다고 들었다. 기부할 때의 마음가짐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누구에게 보이려고 기부를 한 것이 아니다. 덜 가지고도 더 많이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겨울,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

chosun.com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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