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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20년 日本에서 배운다] 취업 의욕마저 잃은 '니트족'

부산갈매기88 2010. 12. 14. 08:16

잃어버린 20년 日本에서 배운다] [2] 희망 잃은 청년, 활력 잃은 韓·日
"대기업 친구들 부럽지만 그 고생하고 月200만원… 차라리 속 편한 게 낫다"


막연한 바람만 있을뿐 이 악무는 노력 안해
서울 강북지역에 사는 김인순(가명·60)씨는 매달 1일, 15일이면 외아들(33) 손에 30만원씩 용돈을 쥐여주고 집을 나선다. 김씨는 공기업에 다니다 정년퇴직한 남편(65)과 동네 상가에서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아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곧 남들처럼 취직도 하고 장가도 가려니 했다. 그러나 아들은 5년째 뚜렷한 직업이 없다.

아들이 일해서 돈을 번 건 2006년 4월이 마지막. 건설공사 계약직 조경(造景) 감독으로 근무하다 1년4개월 만에 "힘들다"며 집에 들어앉았다.

그는 이후 단조로운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오전 8시에 일어나 오전 내내 TV를 보거나 인터넷을 하다 오후에는 간단히 운동을 한다. 어머니는 애가 타지만 정작 자신은 남의 일처럼 덤덤하다. 어머니가 주는 돈으로 교통비(6만원)·통신요금(4만원)·기름값(4만원)·용돈(하루 1만~2만원)을 해결하는 생활에 익숙해진 것 같았다.

"이런저런 업체에 취직하려 했는데 그때마다 면접에 떨어지거나 조건이 안 맞았어요. 그러다 보니 나이가 걸려서 취업을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이런 젊은이들을 '니트족'이라고 한다. 직장도, 학교도 안 다니고 그렇다고 투철하게 직업훈련을 받는 것도 아니라는 뜻(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ing)이다. 취업난으로 임시직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아예 의욕마저 사라져버린 청년들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9년 현재 진학·군복무·질병 같은 뚜렷한 사유 없이 일도 안 하고, 구직 활동도 하지 않는 15~29세 청년들은 29만7000명. 니트족 집계가 시작된 2003년 이후 6년 만에 7만2000명이 늘었다. 인구 1억2700만명의
일본 니트족(44만명·2009년)과 비교해도 결코 작지 않은 규모. 1990년대 중반 이웃 일본이 니트족 때문에 고민할 때 한국은 "요즘 일본 청년들은 패기가 없다" "일본의 미래도 알 만하다"고 혀를 찼다. 그러던 한국이 어느새 같은 증상을 앓고 있는 것.

니트족의 핵심 증상은 '의욕 상실'. 청년실업자 단체 '전국백수연대'의 주덕한(41) 대표는 "요즘 청년들은 자기 자신을 스스럼없이 '잉여'라고 부른다"고 했다. 취업이 안 되는 상황에 분노하거나 이를 악무는 대신 맥없이 자조(自嘲)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

지난 8월 수도권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서정희(가명·23)씨는 재학 중
LG전자삼성전자에 각각 한 차례씩 도전했다 떨어진 것을 빼면 단 한 번도 입사 원서를 써본 적이 없다. 서씨는 "취업이 잘 된다기에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학점이 별로 좋지 않았다(4.5점 만점에 3.3점)"며 "'나보다 학점 좋고 영어 잘하는 사람들도 다 떨어지는데…' 싶어 취업은 완전히 포기했다"고 했다.

지난 8월 대학졸업 후 취업 대신 인터넷 쇼핑몰 모델 등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서정희씨가 늦은 오후 집을 나서고 있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서씨는 현재 인터넷 의류 쇼핑몰 모델과 과외 아르바이트로 월 170만원을 벌어 원룸 임대료(40만원)와 개인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 친구를 보면 약간 부럽죠. 하지만 취업한 친구들 보면 너무 힘들어 보여요. 전날 술 마시고 아침 일찍 출근하고…. 큰 회사 들어갔다는 친구들도 월 200만원 정도밖에 못 벌고요. 그렇다면 힘들게 취업하느니 차라리 속 편하게 사는 게 낫다는 판단도 들었어요."

한국고용정보원 정연순 진로교육센터장은 서씨 같은 젊은이들을 '진로 미성숙형 실업자'로 분류했다. '전문직·정규직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만 있을 뿐 이를 악물고 실력을 키울 생각도, 고생스럽게 조직 생활을 해낼 각오도 안 돼 있다. 그러다 보니 실업기간이 장기화된다.

문제는 시간이 흐른다고 의욕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 센터장은 "일본 니트족은 골방에 틀어박혀 지내는 '은둔형 외톨이'처럼 개인적으로 심리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이 많은 반면, 한국 니트족은 취업난과 눈높이 격차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전국백수연대의 주 대표는 "청년 실업은 개인 탓이라기보다 구조적인 요소가 크지만, 국가 예산으로 전부 책임질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정규직을 철폐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고 했다. 2000년대 들어 일본에서는 '하류지향'이라는 시사용어가 나왔다. 목표 없이 하루하루 때우는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 대표는 "한국도 이미 일본식 청년실업의 궤도에 들어섰다"고 했다.


☞ 니트족(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ing)

의무교육을 마친 뒤에도 취직을 하거나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직업훈련도 받지 않는 젊은이를 가리킨다. 1990년대 영국 정부가 고안해낸 통계용어지만, 일본에선 일할 의욕을 상실한 젊은이를 가리키는 용어가 됐다. 우치다 타츠루 고베여학원대 교수는 “유럽의 니트족은 사회적 상승 욕구가 있는데도 기회가 없어 좌절한 젊은이가 많은 반면, 일본의 니트족은 상승 기회가 열려 있음에도 스스로 그 기회를 포기한 젊은이”라고 지적했다.

 

 

  • 김수혜 기자 goodluck@chosun.com
  • 곽창렬 기자 lions3639@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