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맛집

'고작' 멸치·무·다시마로 이런 국물 맛이/부산 창선동 '남포수제비'

부산갈매기88 2010. 12. 16. 12:08
먹고 살기 힘던 시절, 밀가루 반죽 동동 띄운 허여멀건 수제비는 서민의 대표적 음식이었다. 아무렇게나 밀가루 뜯어 넣어 만든 것 같은데 어찌나 맛이 났던지. 전쟁 후 밀가루 배급으로 수제비는 '간편식' 메뉴가 됐지만 조선시대까지 수제비는 양반집 잔칫집에만 올랐던 귀하디 귀한 음식이었다. 그 귀한 음식 맛을 좌우하는 건 국물이었음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손가락 두 개 크기로 얇게 뜯어낸 수제비와 김, 그리고 계란. 이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수제비 한 사발이 '남포수제비'의 38년 대표 메뉴였다니. 그런데 국물 한 숟갈을 떠 넣고 나니 생각이 달라진다. '뭘 넣었기에 이렇게 깊고 진한 맛이 나지?'

한데 대답이 싱겁다. 딴 거 없단다. 멸치와 무, 그리고
다시마. 이 세 가지 기본 재료만으로도 그렇게 깊고 시원한 맛을 낸단다. 대신 고춧가루와 멸치, 다시마는 딱 맛있을 때 1년치를 대량으로 사들여 창고에 쟁여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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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밥초고추장에 찍어 통째로 입에 넣었다. 찰진 주먹밥이 고소한 참기름 향을 퍼뜨리며 입 안에서 '착착' 감기는데 하나를 다 씹어넘기기도 전에 또 하나가 탐이 난다. 주먹에 딱 쥐어지는 크기라 쉽게 생각하고 계속 입에 넣었더니 어느새 배가 불러온다. 수제비와 주먹밥의 조합. 언젠가 청도에서 맛봤던 피자와 짬뽕의 조합처럼 절묘한 조합이다 싶다. 주먹밥이 참기름 향을 '폴폴' 풍기면서 들떠 입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 진한 국물과 쫄깃쫄깃 수제비가 들어와 이를 진정시켜 주는 느낌.

역시나. '38년동안 한 자리에서, 꾸준히 제 맛을 지켜온 이 집이 소문이 안 났을 리가 없는데…. 매스컴에서는 왜 그동안 조용했나' 싶었더니. "그동안 책 만드는 데서, 신문 만드는 데서 연락이 많이 왔었는데 다 거절했어요." 며느리 사장님 이야기다.

"분점 내자고, 가게 넓히자고 제안이 많이 들어왔었어. 근데 우린 그저 수제비 맛 잊지 않고 찾아와주는 손님들만 여기서 끝까지 받고 싶어. 큰 욕심 없어. 입에 풀칠만 하면 되지 뭐. 그래서 거절했고." 가게 면적 해봐야 38년째 2층, 3층을 합쳐 14평 남짓이 전부.

이 집 원조 사장인 김영자(71·여) 씨는 몇 년 전부터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가게를 아예 아들, 며느리 내외에게 맡겼지만 국물만은 매일 아침 나와 직접 우려내고 있다. "국물 만드는 진짜 비법은 아무한테도 안 가르쳐줬어. 며느리도 몰라. 모르지. 내가 정말 많이 아파서 가게에 더 이상 못 나오게 되면 그땐 가르쳐 주게 될지."

그런 김 사장에게 최근 고민이 생겼다. '남포수제비'란 이름을 내건 가게들이 최근 부산 곳곳에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것. 궁여지책으로 김 사장은 얼마 전 남포수제비
로고와 상표의 특허출원을 냈다. "우리 가게는 분점이 없어. 여기밖에 없는데 다른 손님들이 자꾸 분점 수제비 맛이 다르다고 하면 속이 상해." 특미수제비 3천500원(곱배기 1천 원 추가), 참치·소고기주먹밥 3천 원, 충무김밥 3천 원, 비빔국수 3천500원. 오전 9시~오후 9시 반. 연중무휴. 부산 중구 창선동 광복로 B&C 골목 50m 안. 051-245-6821.

글·사진=이현정 기자 yourfoot@ /부산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