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

임진왜란때 끌려간 웅천 도공 아십니까?

부산갈매기88 2011. 1. 14. 09:26

 

종차관-거관 등 3대 사기장
명품 ‘미카와치 도자기’ 일궈

 

재한() 7년의 전쟁을 겪고 귀국하면서 웅천의 사기장(·도사) 거관() 등 100여 명의 한국인을 데려와 히라도() 성 아래 마을을 정하여 고라이() 정이라 하고 여기에 살게 했다.”

1918년 발간된 ‘히라도도자기연혁일람’의 한 구절이다. 마쓰라() 백작가 편수소에서 발간한 60쪽 분량의 유인물로 경남 웅천(현 창원시 진해구 일대)에서 끌려간 종차관(), 거관, 에이(X·일명 고라이바바) 3대 사기장과 그 후예들의 활동 등을 담았다.

이 일람과 다른 사료연구, 현지답사를 통해 일본 나가사키 현 히라도 섬과 미카와치() 도자기 발달에 조선 도공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추적한 ‘임진왜란과 히라도 미카와치 사기장’(황정덕, 도진순, 이윤상 지음)이 최근 출간됐다. 일람은 2008년 황정덕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이 히라도 마쓰라사료박물관에서 발굴한 것이다. 웅천 출신 도공들의 내력이 일반에게 이처럼 상세히 알려진 적은 없었다.

이 일람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사기장의 이름은 종차관이다. 차 사발과 불상을 빚는 데 능숙했던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후쿠모토 야지우에몬’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이후 그의 아들이 미카와치로 이주해 정착한다. 조선 여인 에이는 나카자토 집안과 결혼해 그 성을 따랐으며 미카와치에 가장 먼저 정착했다. 일람에는 에이가 흑색 자기를 빚는 데 능숙했고 회색 자기를 발명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거관은 미카와치 도자기의 전성기를 구가한 인물로 1634년 히라도 청자도자기를 발명하기도 했다. 이 같은 기술은 현대까지 이어져 1978년 미카와치 도자기는 일본에서 아홉 번째 국가지정 전통공예품으로 지정됐다. 이 외에도 책은 현지에서 조선 도공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리고 있는지와 현재 미카와치에 사는 3대 사기장 후손들의 현황도 담고 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