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

한국서 30년째 "일본 반성하라" 외치는 일본인

부산갈매기88 2011. 3. 1. 12:53

'사죄와 화해의 목회' 펼치는 서울 일본인교회 요시다 고조 목사
"알아야 사죄도 한다"… 일본인들 경복궁 가자 하면 꼬여서 탑골공원 데려가
'망언' 日총리·각료에 편지… 위안부·독도 문제 꾸짖어 日신문에 日 비판 기고도
NHK에 "왜 한글강좌는 없나"… "우리가 뺏으려했던 언어다" 항의하자 강좌 개설돼

"알아야 회개도 하고, 사죄도 할 수 있어요. 일본이 진심으로 인정하고 사죄하지 않는 것은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국민도 위정자도 정부 당국자도 똑같이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내 유일한 일본인 교회인 서울 성수동 '서울일본인교회' 요시다 고조(吉田耕三·69) 목사는 일본인 학생방문단이나 목회자, 신도들이 한국에 오면 꼭 데리고 가는 곳이 있다. 독립기념관, 서대문형무소, 탑골공원, 일제의 기독교인 학살이 있었던 제암리교회 같은 곳이다. 일본인들이 경복궁이나 인사동에 가자고 하면 "잠깐만 탑골공원 들렀다 가자"며 '꼬여서' 데려간다. 가능하면 일본에서 온 학생들은 위안부 할머니와 직접 만나도록 주선한다. "할머니들이 옛 고통을 떠올리게 하는 건 죄송하지만, 학생들 또래에 겪은 일을 들려주는 것보다 더 좋은 교육은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역사 인식과 인생관이 바뀌었다. 한국과 아시아분들 섬기는 일을 하고 싶다"는 일본인 학생도 생겼다.

요시다 고조 목사는 독도 문제에 대해“야구에는 역전 홈런이 있지만 역사에는 그런 것이 없다. 한국이 천년 먼저 독도를 관할했는데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일본인 목사, 한국 역사에 빠지다

요시다 목사는 81년 9월부터 30년째 '사죄와 화해의 목회'를 하고 있다. '일제 통치도 창씨개명도 한국인의 부탁을 받아서 한 것'이라는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처럼 망언을 하는 일본 정치인이나 각료 등을 꾸짖는 편지를 써 보내고, 아사히나 마이니치 등 유력지에 일본을 비판하는 글을 써낸다.

일본어 억양이 살짝 느껴지는 한국말로, 요시다 목사는 '일제' '핍박' '사죄' 같은 단어를 또박또박 힘주어 발음했다. '일본 반성'을 외치게 된 계기는 1974년 여의도에서 열린 세계선교대회 '엑스플로 74'였다.
도쿄 신학교를 졸업한 뒤 아이치(愛知)현에서 목회를 하던 그는 한국에 처음 와서 본 일본 만행의 현장에서 충격을 받았다. "탑골공원이나 제암리교회를 보면서 조금이나마 사죄의 사역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지요." 한국에 가겠다고 했을 때, 누나는 펄펄 뛰었다. "한국에 가면 너 틀림없이 한국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야."

◆일장기, 기미가요는 악행의 잔재

그렇게 결심하고 한국에 오니 저절로 관련문제에 깊이 빠지게 됐다. 기미가요(君が代), 히노마루(日の丸), 야스쿠니(靖國), 독도에 관한 그의 입장은 단호하다. "기미가요는 일제시대 천황을 찬양하는 노래이고, 일장기(히노마루) 역시 일제 악행의 피해자들이 볼 때는 과거의 고통을 떠올리게 만드는 상징입니다. 공식적인 국가와 국기로 삼아선 안 됩니다." 그는 "온순하던 한국분들이 독도 이야기만 나오면 눈꼬리가 이렇게 치켜 올라간다"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위로 잡아당겨 보였다. "한국분들의 독도 사랑에 일본 사람들은 절대 따라올 수 없습니다."

그의 보물은 일본 학생들의 감상문 40편. 탑골공원에 들러 3·1운동 이야기를 듣고 간 여교사가 아이들이 쓴 글이라며 보내왔다. "일본의 만행에 대한 고민과 슬픔이 학생들의 감상문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소중히 보관하고 있습니다."

요시다 목사는 한국에 올 준비를 하던 70년대 말, 일본 NHK에 항의 편지를 보냈다. "한국은 이웃 나라이고, 일제시대에 우리가 언어를 빼앗으려 했던 나라인데, 어째서 한국어 강좌는 없는가." NHK측은 "'한국어 강좌'라 하면 총련에서, '조선어 강좌'라 하면 민단에서 항의를 해서 할 수 없다"고 답을 해왔다. 목사는 "그때 하나님의 지혜로" 이런 제안을 했다. "그럼 남북한 모두 쓰는 말인 '한글강좌'라고 하면 어떨까요?" 1981년 NHK가 라디오 한글강좌를 열었고, 현재는 TV로도 강의가 방송되고 있다.

한국 목회에 빠진 아버지를 보면서 "목사 남편은 싫다"던 맏딸 노리코(範子·38)씨는
숙명여대 4학년 때 판문점을 보러온 일본인 전도사와 만나 결혼해 이젠 목사 부인이 됐고, 목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둘째 딸 유카코(由架子·34)씨는 올해 신학교를 졸업한다. 가족엔 부족한 아버지였지만 그는 마음을 졸이지 않는다. "한국에 있느라 부모님 임종을 못했지만, 그래도 하나님 나라로 가면 두 분 다 '수고했다'고 어깨를 두드려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 이태훈 기자 libr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