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풍가는 날처럼
천상병이란 시인이 있습니다. 군사정권 시절에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푸르른 꿈도 펼쳐보지 못한 채 그의 삶은 시들어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음이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왔음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는 그는 <귀천>이라는 시를 남겼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좌절과 분노와 원망과 불평을 퍼부어대며 살 수 밖에 없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그는 생각를 달리하여 하루하루를 '소풍가는 날'처럼 즐겁게 살았노라고 이 시에서 노래했습니다.
유명한 미술가 루오의 판화에 재미있는 제목의 판화가 한 점 있습니다. 그 판화의 제목은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날에도 향을 묻힌다'입니다. 괴롭히고, 아픔을 주고, 상처를 주는 도끼날에도 독을 묻혀주지 않고 오히려 향을 묻혀주는 향나무. 올 한 해에도 우리가 넘어야 할 산과 건너야 할 강이 많습니다. 그것들이 우리에게 좌절을 주고 아픔을 주고 때론 분노와 절망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그때마다 '소풍가는 날처럼' 생각을 바꾸어 살고 싶습니다. 또 '자기를 찍는 도끼날에도 향을 묻혀주는 향나무처럼' 일년을 달려가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그런 삶이었습니다. 비방하고 멸시하고 죽이려는 자들 앞에서 오히려 그들을 용서하고 기도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를 찍으려 달려오는 사람들 앞에서도 예수의 향을 묻혀주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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