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겨울, 나는 그때 강남에 있는 한 룸살롱의 웨이터로 일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위장취업인 셈이다. 우물가(유흥가 선교)를 시작하면서 어떻게 접촉점을 찾아나갈 것인지 고민을 하다가 묘수를 찾아내게 되었는데 그것이 술집에 웨이터로 취직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과 친해지기 위해 최대한 애를 썼다. 손님이 없는 무료한 초저녁 시간을 메우기 위해 동료 웨이터들과 함께 동전 따먹기 놀이를 하거나, 아가씨(호스티스)대기실에 들어가 고스톱을 치거나, 웨이터 보조들의 일을 도와 룸을 청소하기도 했다. 또 성냥과 담배를 준비해 가지고 로비에 나와 앉아 있다가 담배를 찾는 아가씨들이 있으면 불을 붙여 주었고, 그리고 어떤 날은 일을 끝내고 나이든 마담들과 함께 포장마차에 앉아 그들의 푸념을 아침까지 들어주기도 했다. 우리는 친해졌다. 나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속 깊은 내면의 비밀이나 고통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의 세계를 점점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예수님께서 낮고 천한 사람들에게 바리새인들보다 관대하게 대했던 이유를 가슴으로 깨닫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었다. 24일은 보통 날보다 손님이 많았다. 여덟시가 채 되기도 전에 여덟개의 룸이 모두 찼고 단골 손님들조차도 돌아가야 했다. 나는 선물과 케익을 준비하고 생일 초대장을 만들었다. 나는 모든 웨이터와 호스테스들에게 생일 축하파티에 참석해 줄 것을 부탁했다. 누구의 생일파티냐고 물었지만 웃어만 주었다.
밤은 점점 깊어졌다. 술좌석은 달아올랐다. 그리고 루돌프 사슴코 와 같은 캐롤송이, 심지어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이 가요처럼 연주되기도 했다. 그들은 크리스마스 노래에 맞추어 고함을 쳤고 술을 마셨고 온갖 음담패설과 음란한 행위를 즐겼다. 술과 음란과 욕설과 거룩한 캐롤송, 그게 세상이었다. 마침내 열두시가 넘었고 셔터가 내려지자 손님들은 아가씨를 끼고 여관으로 갔다. 우리 웨이터들과, 짝짓기에 참여하지 못한 아가씨들은 대충 정리를 끝내고 B룸으로 모였다. 두시 삼십분이었다. 모인 사람을 세어보니 열일곱명이나 되었다. 나는 전등을 끄고 케익에 불을 붙였다. 분위기는 조금 산만했다. 남궁마담이 누구의 생일이냐고 질문했다.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차근차근 위대한 그분의 생일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분이 누구며? 그분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말해 주었다. 또 그분이 이 땅에 사는 동안 누구에게 관심을 가지셨고 어떻게 사셨는지도 말해 주었다. 나의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산만했던 분위기는 숙연해졌고 그들은 조용히 머리를 숙였다. 부유함으로 거만했던 자들의 친구가 아니라, 가난하고 외롭고 비틀거리는 상한 마음들을 눈물로 어루만져 주었던 그 분의 사랑은 지금 듣고있는 그들의 심정을 가장 잘 덮어주고 있었다. 누군가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고 마침내 여기저기서 눈물을 찍어내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가슴에 안는 순간이었다. 가장 음란하고 추악한 일에 쓰임 받던 그들이, 그리고 그곳 그 공간이..... 가장 거룩하게 드려지는 순간이었다. 우리 모두는 그날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을 가슴이 미어지도록 소리쳐 불렀다.
그날 이후에 나는 그들로부터 예수님에 대해 좀더 알려달라는 요구를 받게 되었고, 그 룸살롱에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매주 성경공부모임이 열려지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모임을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성경공부모임을 2년 만에 끝을 보게 되었다. 그 룸살롱의 주인이 예수님을 믿어 직업을 바꾸었기 때문이었다.
(우물가 선교회 무명의 전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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