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방

양반선교 이끌어낸 강도사건

부산갈매기88 2011. 2. 14. 07:23


미국 남장로교 의료선교사 포사이스는 1904년 9월 전주에 도착하여 수많은 병자를 치료하였다. 당시 전주에서는 전킨 선교사가 선교하고 있었는데 지체 높은 양반인 이씨가 전킨 선교사를 방문하여 복음을 듣고 있었다. 그때 심부름꾼이 달려와서 양반 이씨의 동생이 강도에게 심한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포사이스 선교사에게 32㎞나 떨어진 곳에 가서 치료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포사이스 선교사는 의료기구를 챙겨서 조랑말을 타고 가서 환자를 치료해주었다. 하지만 밤이 너무 깊어서 전주로 돌아올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포사이스 선교사는 이씨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다음날은 주일이었는데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또 하루를 이씨의 집에서 보내게 되었다. 월요일 새벽 4시쯤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복면을 한 강도 7명이 들이닥쳐서 포사이스 선교사를 칼로 찌르고 베어서 머리와 목에 큰 상처를 냈다. 포사이스 선교사가 죽었다고 생각한 강도들은 도망쳤다. 심한 부상을 입은 포사이스 선교사는 응급처치를 한 뒤 곧바로 군산에서 일하는 다니엘 의사에게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서울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경과가 좋지 못하여 1906년 봄 미국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는 귀국하는 배안에서 이런 글을 남겼다.

 

 “비록 우리의 노력이 불완전하다고 할지라도 주님의 이름으로,그리고 주님을 위하여 겸손이 드리는 사랑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포사이스 선교사의 말대로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전주에서는 “유명하고 부유한 이씨 가문의 가장이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가마를 타고 나타났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이것은 양반이 교회에 나오는 것은 더 이상 체면을 손상시키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양반의 도시 전주에서 양반선교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까지 이 지역 교회의 남자석은 상인이나 농부,그리고 막노동꾼뿐이었다. 이 사건 이후부터 인식이 달라지고 교회들은 유례 없는 부흥을 경험했다. 1906년 전주 서문교회가 완공되었으며 1909년에는 전주 제2 교회인 남문교회가 창립되었다.

 

 


/박명수<서울신대 신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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