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 만물박사

대통령 전용객차

부산갈매기88 2011. 2. 15. 13:20

1888년 베이징에 첫 철도가 들어서자 리훙장(李鴻章)은 권력자 서태후(西太后)를 위해 전용 객차를 만들었다. 독일제 객차 내부를 고급 소재로 치장했고 창(窓)엔 황금빛 커튼을 쳤다. 서태후는 기적소리가 시끄럽다며 기관차 대신 내시들이 기차를 끌게 했다. 행차하는 철로변엔 궁녀들이 늘어섰다. 미식가 서태후를 위해 객차엔 아궁이가 설치됐고 요리사들도 탔다.

 

도쿄 하라주쿠역과 요요기역 사이에 지붕이 하얀 임시역이 있다. 일본 사람도 잘 모르는 왕실 전용열차 출발역이다. 일본 왕실 전용열차는 '오메시열차(お召し列車)'라고 부른다. 왕에게 바쳐진 열차라는 뜻이다. 이 열차는 1989년 아키히토(明仁) 일왕 즉위 이후 40차례 남짓 운행하는 데 그쳤다. 이 열차가 운행할 땐 다른 모든 열차의 운행 스케줄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스탈린 전용열차는 지금 고향 그루지야 고리시(市)에 전시돼 있다. 방탄설비와 위성전화를 갖춘 김정일 전용열차는 스탈린 열차를 본떠 객차는 초록색, 지붕은 검은색이다.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이 탔던 객차는 의왕 철도박물관에 있다. 1927년 일제가 만든 객차를 55년 대통령 전용으로 개조했고 2008년 등록문화재 419호가 됐다.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 전용객차는 이제 일반 열차로 신분이 바뀌었다.

 

▶지난 11일 광명역 인근 일직터널에서 탈선한 'KTX 산천호'에 대통령 전용객차 3량이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 전용칸이 딸린 단 한 편의 KTX가 하필 사고가 난 것이다. 전용객차는 탈선하지 않은 앞쪽 4량 중에 있었다. 평상시엔 나머지 7량에 승객을 태우고서 일반 KTX처럼 운행한다. 보안 때문에 대통령 전용칸은 잠겨 있고 창도 검정 코팅을 해 들여다볼 수도 없게 돼 있다.

 

▶대통령 객차를 비워둔 채 만날 끌고 다니는 게 낭비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법하다. 새마을호는 객차를 필요에 따라 떼고 붙일 수 있지만 KTX는 열차 구조상 따로 분리할 수 없다고 한다. 게다가 전용객차를 오래 세워 두면 객차가 녹슬고 성능이 떨어진다는 게 철도공사 설명이다. 보안을 유지하고 내부 설비를 보호하려면 대통령 전용칸에 승객을 태울 수도 없다. 그렇다고 전용칸만 떼어놓을 수도 없어 빈 전용칸을 달고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 전용객차가 드러나면서 그대로 사용하기도, 그렇다고 쉽게 없애기도 힘든 딱한 처지가 돼버렸다.

 

정우상 논설위원 imagin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