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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을 동경했던 80대 노인의 1억

부산갈매기88 2011. 3. 4. 09:12

"노벨화학상 받는 분에게 주세요" 평생 아낀 돈 서울대에 기탁
"화학은 나의 어릴 적 꿈" 일제 근로대 동원되느라 수학 달려 문과로 진학
"일본은 노벨화학상 7명… 우린 왜 한 명도 없나"

지난달 16일 오후 빛바랜 갈색 양복에 허름한 겨울 외투를 걸친 80대 노인이 서울대발전기금 사무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예고 없는 방문이었다. 서울대발전기금 상임이사인 김형주 교수와 마주 앉은 노인은 양복 안주머니에서 흰색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는 "이 돈은 서울대 교수나 학생 중에 노벨화학상을 받는 분이 나오면 포상금으로 사용해 주십시오"라며 김 교수에게 봉투를 건넸다. 1억원짜리 수표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차림새에 어울리지 않는 큰돈에 김 교수가 놀란 표정을 짓자 노인은 "노벨상에 어울리는 많은 액수는 아닙니다만…"이라며 부끄러워했다.

서울 성동구 행당동 A씨의 집 거실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투명 비닐로 막혀 있었다. “오래된 집이라 난방이 잘 안 돼서 이렇게 안 하면 춥다”고 했다. 기자가 카메라를 꺼내자 “세상에 이름을 내려고 한 일이 아니다. 꼭 사진을 찍을 거라면 뒷모습을 찍어 가라”고 손을 내저었다. 그가 3년 전 사별한 부인의 사진 액자를 만지는 동안 사진을 찍었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그는 "일본은 벌써 노벨화학상 수상자를 7명이나 배출했는데 인구 비례로 보면 한국도 최소한 1명은 나왔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근데 아직 한 명도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 찾아왔습니다"라는 말을 하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 교수는 "이렇게 불쑥 찾아와 억대의 기부금을 놓고 가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며 "놀랍고, 고맙고,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느낌 그런 것이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2일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하는데도 찾아가보니, 노인의 집은 37년 된 서울 성동구의 2층 주택이었다. 그는 "대단한 것도 아닌데 이름과 얼굴은 알리고 싶지 않다. 그냥 A씨로 해달라"고 했다. 노인은 키 157㎝, 몸무게 32㎏의 작은 체구였다.

그는 "어릴 때 화학에 관심이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인) 중학생 때 근로봉사에 동원되는 바람에 수학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문과인 서울대 상대에 진학했다"며 "화학은 나에겐 동경의 대상이었다"고 말했다.

그에게 화학은 마술같은 것이었다. 그는 "국민학교 5학년 때 다리가 아파서 1년을 집에서 쉬었어요. 집에 장난감 하나가 있었는데, 그림이 그려진 파란색 셀로판 종이 뒤에 흰 종이를 대고 햇빛에 비췄더니 흰 종이에 그림이 나타나는 겁니다. 그때 '셀로판 종이에 도대체 뭐가 묻어 있기에 이렇게 되나' 무척 궁금해하던 기억이 납니다"라고 말했다.

서울이 고향인 그의 가족은 1·4후퇴 때 부산으로 내려가 정착했다고 했다. 서울상대 49학번인 A씨도 졸업 후 부산에서 선친(先親)의 건설자재업을 도왔다. 1974년 상경해 여러 사업에 손을 댔지만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고 한다. 다행히 상경 직후 매입한 낡은 빌딩 한 채에서 나오는 임대료와 오래 전 사놓은 주식을 조금씩 팔아 생활한다고 했다. 그는 3년 전 부인과 사별했다.

서울대에 기탁한 1억원에 대해서는 "이리저리 아껴, 남들이 흔히 쓰는 돈을 안 써서 모은 돈"이라고 했다.

그는 절약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자가용 승용차를 가져본 적이 없다고 했다. 1987년 현재 사는 곳으로 이사 올 때 구입한 세짝짜리 장롱도 안방에 그대로 놓여 있다. 15년 된 흰색 냉장고는 누렇게 변색돼 있었다. 거실엔 10여년 전 13만원을 주고 산 20인치 TV가 그대로였다. 지난달 서울대를 찾았을 때 입은 양복과 외투도 모두 30년 된 옷이라 했다. 그가 갖고 있는 양복은 겨울용과 여름용 각 1벌씩이 전부다. 그의 딸은 "아버지는 소변을 보신 뒤에도 '물 아깝다'며 내리지 않으실 정도로 쩨쩨하다"며 웃었다.

그는 집 안에서도 두꺼운 스웨터를 입고 귀마개를 착용하고 있었다. 손발이 차고 저혈압인데, 집이 오래돼 난방이 잘 안 된다고 했다. 정원으로 난 1층 창문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찬 공기를 막기 위해 대형 투명비닐을 커튼처럼 걸어놓고 겨울을 보냈다. 그는 지난 10여년간 매달 5000~2만원 단위의 소액 기부도 꾸준히 해왔다. 월드비전을 통해 아프리카 국가 어린이 10여명과도 결연을 맺고 있다. 어린이들이 커가는 사진을 받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보육원과 나병환자 복지시설에도 매달 후원금을 보낸다. 그는 "서울대에 맡긴 기부금을 계기로 화학 분야는 물론이고 다른 과학 부문에서도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훌륭한 연구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팔십 먹은 노인의 마지막 소원입니다"라고 했다.

 

이석호 기자 yoytu@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