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북부의 칼레는 영국의 도버와 가장 가까운 항구도시다. 백년전쟁(1337~1453년) 초기, 칼레는 영국군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칼레 사람들은 시민군을 조직해 싸웠다. 영국군은 칼레를 우회해 프랑스 본토를 공략했고, 전쟁 막바지에 칼레를 봉쇄했다. 시민군은 굶주림을 견디며 1년 동안 저항했지만 끝내 항복했다.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항복 조건을 내걸었다. “시민들 중 6명을 뽑아와라. 칼레 시민 전체를 대신해 처형하겠다.” 칼레의 갑부 외스타슈 드 생피에르를 비롯한 부유층들로 7명이 채워졌다. 누구를 뺄 것인가를 두고 혼란이 벌어졌다. 제비뽑기를 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최초 자원자인 생피에르가 반대했다. 그는 다음날 아침 가장 늦게 나오는 사람을 빼자고 제안했다. 다음날 아침, 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다름 아닌 생피에르였다. 군중들이 허탈해할 때 급전이 전해졌다. 생피에르가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나머지 6명은 영국왕의 명령대로 목에 밧줄을 걸고 맨발에 홑옷만 걸친 채 교수대로 향했다. 그러나 임신중이던 영국 왕의 아내 필리파 드 에노가 이들을 죽이면 태아에게 불행한 일이 생길지 모른다며 왕을 설득했다. 처형은 집행되지 않았다. 독일 극작가 게오르크 카이저의 희곡 <칼레의 시민>의 내용이다. 생피에르의 극적인 죽음을 제외하면 실제 있었던 일로, 저 유명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탄생 비화다.
오귀스트 로댕은 1884년 가을 칼레시청의 의뢰를 받아 불멸의 작품을 남겼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은 모두 12개의 판본이 있는데, 12번째 작품이 서울 로댕갤러리에 전시돼 있다. 로댕갤러리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부인 홍라희씨가 삼성생명 건물에 만든 미술관이다. 편법으로 얼룩진 3대 세습의 완성을 눈앞에 둔 삼성에 ‘칼레의 시민’은 어떤 존재일까.
한겨레신문/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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