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전국서 채집한 '1930년대 이후 한국인의 일생 의례' 보고서 나와]
사라진 의례 - 신부집서 혼례 올리고… 금줄 치고… "객귀 쫓자" 아이 첫 외출때 숯검댕칠
남은 의례 - 함에 넣어보내는 혼인증명서 '婚書紙', 백일떡 돌리고… 돌잡이하고…
1960년대까지 결혼은 신부 집에서 했다. 친정에서 예식을 치른 신부가 시댁에 가서 신랑 부모를 처음 알현하던 의례가 '폐백(幣帛)'이다. 신부는 친정에서 가져온 닭·밤·대추 등 음식을 놓고 시댁 어른에게 인사를 올렸고, 시부모는 밤과 대추를 신부에게 던져주며 "아들 딸 많이 낳아라!" 덕담했다. 시대가 변해 요즘은 양가(兩家) 부모가 참석한 가운데 예식장에서 식을 올리지만 '폐백'만은 여전히 남아있다.
- ▲ 요즘 폐백음식으로 쓰이는 육포. /반가원 제공
'출생부터 무덤까지' 한국인이 살면서 거치는 일생 의례는 어떻게 변해 왔을까.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영원)가 지난 2007년부터 5년간 전국적으로 실시한 '일생 의례' 현지 조사가 최근 경기도편 보고서 발간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일생 의례는 한국인이 인생의 단계마다 치르는 각종 의례로 출생·혼례·상례·제례로 대표된다. 전국 각 시·군에서 2~3개 마을을 선정, 70~80대를 찾아다니며 구술 조사를 벌였고, 이렇게 채집된 '살아 있는 기록'이 '한국인의 일생 의례' 보고서 9권으로 정리돼 나왔다.
◆예식장에서 결혼해도 폐백은 드리는 한국인
한국인의 전통 혼례에서 약혼식이란 개념은 없었다. 혼인이 결정되면 신랑 집에서 신랑의 사주를 적어 신부 집에 보냈고, 사주받는 것을 약혼으로 간주했다. 혼인 하루 전날이나 당일엔 신랑 집에서 신부 집에 함을 보내는데, 함 속에는 채단(저고리와 치마를 만들 옷감)과 혼서지(婚書紙), 폐물 등을 넣었다. 정연학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지금도 결혼식 전에 혼서지를 넣은 함을 보내는데 이것이 혼인 증명서 역할은 물론 사후에 부부가 다시 만나게 하는 증표 역할을 한다"고 했다.
신랑이 혼례를 위해 신부 집에 처음 가는 것이 '초행', 혼례 후 신부가 신랑을 따라 처음으로 신랑 집에 가는 것이 '신행'이다. 이때 신부의 가마 안에는 찹쌀과 잡곡을 가득 넣은 요강을 넣어줬다. 신부가 시집가서 3일째 되는 날 이 찹쌀로 밥을 지어 시어른께 대접한다. 요강에 찹쌀을 담는 것은 '오줌이 요강 안에 모이듯이 재물이 모이라'는 뜻이다. 요즘은 다 사라진 의식들이다.
혼수는 대체로 수저와 이불, 요강과 세숫대야만 준비하면 됐다. 충남 태안에서는 "혼수품은 이불 두 채 이상이면 잘 준비한 것"이라 했고, 제주 동남부에선 "버선을 만들어 시집 친족들에게 한 켤레씩 나눈 게 전부"라고 했다.
◆금줄은 사라져도 돌잡이는 남았다
아기가 태어나면 삼신에게 아기의 무병장수를 비는 삼신상을 차렸는데, 일부 지역 민간에만 남아있다. 아기 탄생 후 대문에 치는 금줄은 잡귀를 막는 도구였다. 대체로 아들을 낳으면 고추와 숯, 딸은 솔가지와 숯을 걸었는데 부산에서는 특이하게 아들을 낳으면 미역을, 딸을 낳으면 작은 칼을 꽂기도 했다.
황경순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금줄은 1980년대 이후로 점차 사라졌으나 산후 조리의 중요성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백일과 돌에는 백설기와 수수팥떡을 준비했다. 1960년대에 들어와서 백일 선물로 반지가 등장하고 서양 빵 케이크는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돌상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도 백일떡 돌리기, 돌잡이 같은 의례는 남아 있다. 당초 돌잡이 도구는 책·공책·붓·실·돈·자물쇠·쌀 등이었는데 지금은 더 다양화·현대화됐다.
아이의 첫 외출 때는 어떤 객귀도 붙지 못하도록 아기의 콧등(부산), 이마(청주·해남), 얼굴(청주·강릉)에 숯 검댕을 발라주거나 붉은 고추를 옷깃에 실로 꿰는 '벽사(辟邪)' 의례가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음식에 관한 각종 금기도 흥미롭다. 오리고기를 먹으면 아이 손가락이 오리처럼 붙어 나온다고 해서 금지시켰고, 미역국을 끓일 때 볶은 미역을 쓰면 아이 얼굴에 부스럼이 생긴다고 여겼으나 대략 1990년대 이후 사라졌다.
◆상갓집에서 육개장을 내놓는 이유는
- ▲ 상갓집에서 내놓는 육개장. 붉은 색이 잡귀를 쫓는다 해서 예전에는 팥죽을 내놨으나 요즘엔 육개장으로 바뀌었다.
전통적인 상가(喪家) 음식은 지역마다 달랐다. 충남에선 팥죽이 일반적이었고, 전북에선 팥죽 외에 닭죽을 내놓기도 했다. 충남 당진의 한 주민은 "붉은색이라 잡신들이 상가에 얼씬도 말라는 의미로 팥죽을 내놨다"고 했다. 정연학 연구관은 "요즘 보편적인 상갓집 음식인 육개장도 여기서 온 것"이라며 "육개장의 붉은색이 액운을 막고 장례식장의 잡귀를 막는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지방만의 특색인 줄 알았던 것이 전국 공통 특징인 경우도 있었다. 초분(草墳)은 시신을 땅에 바로 묻지 않고 관을 땅 위에 올려놓은 뒤 2~3년 후 뼈를 골라 땅에 묻는 장례 풍습. 남해 섬 지역의 특이한 장례 풍습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번 조사를 통해 전국적으로 행해지던 의례였음이 드러났다. 연구소는 "외래문화가 유입되면서 의례가 획일화·간소화되기는 했으나 그 뿌리는 전승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허윤희 기자 ostinat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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