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일이

췌장암 남편의 선물 '마지막 결혼식'

부산갈매기88 2011. 11. 28. 11:17

 

필리핀 신부와 3년전 결혼
단칸방서 행복했지만 암걸려… 결혼식후 20일만에 세상떠나

"남편은 죽음을 예감했나봐요. 결혼식은 제게 주고 간 마지막 선물인 거죠. 다시 태어나면 남편과 한 번 더 결혼식을 올릴 거예요."

지난 24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보라매병원 장례식장의 한 빈소에는
필리핀인 아내 마르셀 나바레떼(25)가 남편 최영훈(41)씨의 영정을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남편은 지난 22일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부부는 지난 2008년 3월 필리핀에서 처음 만났다. 남편은 부인의 순수함이, 부인은 남편의 든든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둘은 같은 해 5월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보증금 1000만원, 월세 10만원 단칸방을 얻어 신접살림을 차렸다.

지난달 29일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에서 다문화가정 합동결혼식을 올린 신랑 최영훈(41)씨와 필리핀 국적의 신부 마르셀 나바레떼(25)씨. /연합뉴스

형편은 넉넉하지 못했지만 두 사람은 행복했다. 보물 같은 두 아이도 생겼다. 나바레떼는 "남편은 언제나 '집이 너무 비좁아서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우리 가족은 세상 누구보다 행복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남편에게 복통이 찾아왔다. 장염인 줄 알고 약을 먹었지만 배가 계속 아팠다. 석 달 후 찾아간 병원에서는 췌장암 말기라고 했다. 암세포가 심장까지 전이돼 수술도 불가능했다.

죽음을 앞둔 최씨에겐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다. 낯선 땅에 시집와 고생한 아내에게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혀주지 못한 것이다. 남편은 아내 몰래 동작구 다문화가족 지원센터가 주최한 합동결혼식에 신청서를 냈다. 지난달 29일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에서 합동결혼식이 열렸다. 웨딩드레스와 검은 턱시도를 차려입은 부부는 식이 진행되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항암 치료로 앙상하게 여윈 최씨는 결혼식 중 아내를 꼭 껴안고 "사랑한다"고 했다. 결혼식 닷새 뒤인 지난 4일 최씨는 다시 입원했고, 보름이 안 돼 세상을 떠났다. 나바레떼는 서툰 한국어로 영정 속의 남편에게 약속했다. "여보, 아기들 잘 키우고 꼭 잘살게."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