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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째 흡연-휴대전화-왕따 없는 장성고, 비결은?

부산갈매기88 2012. 1. 27. 07:13

 

14년째 흡연-휴대전화-왕따 없는 전남 장성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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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너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면 미안하구나. 우리 딸 시험 잘보고… 파이팅!’

전남 장성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황상길 교사(56)는 지난해 5월 중간고사를 앞두고 제자 김모 양(17)의 ‘대리 아버지’ 노릇을 하기로 했다. 황 교사는 이런 내용의 e메일을 김 양의 아버지에게 보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직접 편지를 쓴 것처럼 해서 김 양의 필통에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김 양은 2010년 광주에서 학교를 다니다 자퇴했다. 이듬해 장성고에 입학한 김 양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담임인 황 교사는 김 양을 불러 상담했지만 마음을 열지 않았다. 황 교사는 김 양 어머니와 30차례 넘게 e메일을 주고받았다. 그러면서 김 양이 성적 문제로 아버지에게 손찌검을 당해 정신과 치료를 받은 사실을 알게 됐다. 이 편지 하나로 김 양은 아버지와 화해했다. 이후 김 양은 공부에 매진해 전교 1등을 했다. 교사의 헌신적인 사랑이 자칫 왕따의 수렁에 빠질 뻔한 제자를 구한 것이다.

○ 14년 전통 이어가는 3무(無) 학교

황 교사처럼 장성고 교사들은 1인 3역을 한다. 전교생 850명 가운데 75%가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때로는 부모가 되기도 하고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방과 후엔 학원 강사로 나서기도 한다. 이런 교사들의 열정은 학생들의 실력 향상으로 이어졌다. 2011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언어, 수리 가·나, 외국어 등 4개 영역 표준점수에서 전국 1위를 싹쓸이해 농촌지역 명문 사립고로 자리매김했다. 장성고가 유명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1998년부터 14년째 흡연, 휴대전화, 왕따가 없는 ‘3무(無) 학교’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 학교가 ‘3무 카드’를 꺼낸 것은 흡연과 휴대전화, 왕따를 없애야만 학교폭력을 예방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가장 힘든 것은 흡연 규제였다. 우선 학교 측은 중학교 때 흡연을 한 적이 있는 학생들을 특별 관리했다. 신입생 250명 가운데 5% 정도가 흡연자로 분류됐다. 본인 동의를 얻어 담배를 끊겠다는 서약서를 쓰게 하고 주말 외출 후에는 반드시 소변테스트를 받도록 했다. 유장훈 학생부장(53)은 “체벌 대신 상담을 통해 담배를 끊게 했더니 효과가 컸다”며 “이제는 중3 때 담배를 끊지 못하면 장성고 진학은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담배를 피우는 교사들도 금연 대열에 동참했다. 유 부장은 “학생들에게 끊으라고 하면서 (우리가) 피울 수는 없지 않느냐”며 웃었다.

○ 삼겹살데이, 목욕탕데이…

이 학교에는 다른 학교에서 보기 힘든 ‘삼겹살데이’와 ‘목욕탕데이’ 행사가 있다. 한 달에 한 번 학년별로 갖는 삼겹살데이는 전교생이 손꼽아 기다리는 이벤트. 운동장 잔디밭이나 급식실에서 학년별로 모여 삼겹살을 구워 상추쌈을 싸서 먹는데 비용은 학교에서 댄다. 남학생반은 체육대회가 끝나면 교사와 함께 읍내 목욕탕에서 가서 ‘알몸 미팅’을 한다. 서로 때를 밀어주고 장난치다 보면 서먹서먹한 사이도 금세 친해진다. 박아론 군(18·2년)은 “우리 학교도 왕따가 있는데 우리는 ‘왕 따스함’이라고 부른다”며 “게임보다는 함께 포켓볼을 치고 농구를 하는 게 훨씬 재밌다”고 웃었다. 15년째 교장을 맡고 있는 반옥진 교장(58)은 “최근 10년간 퇴학이나 부적응으로 전학 간 중도 탈락생이 한 명도 없었다”며 “3무 학교가 정착된 만큼 이제는 웃음과 배려, 희망이 넘치는 ‘3유(有) 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동아일보/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