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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마트에서 마진이 큰 상품을 오른쪽에 배치하는 이유

부산갈매기88 2012. 6. 1. 07:29

 

[유통업계 불황 넘는 진열의 과학]
매출 극대화하는 진열 전략 - 마진 큰 상품일수록 오른쪽 배치
인기 브랜드 매장은 구석에 숨겨… 냉동식품, 최대한 계산대 근처에
고객에 맞춰 끊임없이 진화 - 평균 키 커지자 매대 높이도 조절
백화점 창문 없다는 불문율 깨고 가구 매장 거실처럼 연출하기도

이마트는 최근 구매 고객의 상품군별 매장 방문 비중을 조사했다. 가공식품 코너가 27.9%로 가장 높았고, 신선식품(21.5%)과 간편 가정식(20.2%)도 5명 중 1명꼴로 방문했다. 가전·문화 매장은 5.2%로 가장 낮았다.

쇼핑 목적에 따라 매장 방문 빈도가 달라지지만,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산 고객이라면 반드시 지나칠 수밖에 없는 장소가 있다. 바로 계산대이다. 최근 매출 둔화를 고민하는 대형마트업계가 '포스(POS·point of sales) 엔드캡'이라 부르는 계산대 바로 앞 진열대를 주목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대형마트에서 단위 면적당 매출이 가장 높은 곳이다. 이마트가 매장 3.3㎡(1평)당 매출을 분석한 결과, 계산대 앞 진열대는 1주일 평균 매출이 2700만원으로 일반 매장 평균(1800만원)보다 2.6배나 높았다.

◇대형 마트 진열대의 과학

과거 계산대 앞 진열대에선 껌이나 초콜릿, 음료 등을 파는 것이 보통이었다. 최근에는 부피가 작은 장난감 등 어린이 상품이 인기다. 계산대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1~2분 동안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부모의 지갑을 열게 하는 판매 전술이다.

대형마트에 들어가면 왜 과일매장부터 나올까. 백화점 의류매장 탈의실엔 왜 거울이 없을까. 대형 유통업체의 매장 구성과 상품 진열에는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한 갖가지 장치가 숨어 있다. /이마트 제공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곳곳에는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부추기는 갖가지 '장치'가 숨어 있다. 매장 구성과 상품 진열을 통해 고객이 더 오래 쇼핑을 하게 하고, 더 많은 물건을 사게 하려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이민훈 수석연구원은 "유통 매장(place)이 마케팅 전략의 성패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며 "상품을 즉각 체험하는 매장은 광고·판촉보다 구매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라고 말했다.

상품의 원래 카테고리와 상관없이 전혀 다른 성격의 상품을 함께 판매하는 '연관 진열'은 대형마트에서 보편화한 시스템이다. 생선 매장에서 화이트 와인을 팔고, 라면 매장에서 양은 냄비, 자동차용품 매장에서 졸음방지용 껌을 파는 식이다. 이마트에서 요리가 익숙하지 않은 초보 주부들을 위해 수산물·정육 코너에서 요리책을 같이 판매하자 서적 판매량이 10배 이상 뛰었다.

대형마트는 고객의 쇼핑 동선을 입구부터 시작해 시계 반대방향으로 순환하는 것으로 설정한다. 오른손잡이인 대다수 고객이 오른손에 힘을 주어 쇼핑카트를 밀면서 자연스럽게 왼쪽으로 방향을 틀기 때문이다. 아이스크림 등 냉동식품 코너가 매장 왼쪽 끝 계산대 바로 앞쪽에 있는 것도 이유가 있다. 쇼핑 막바지에 냉동식품을 집어들게 해 고객의 변심으로 인한 상품의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계산이 숨어 있다.

백화점에서는 소위 '잘 나가는' 브랜드가 메인 동선에서 벗어난 구석진 매장을 차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차피 인지도가 높아서 고객이 알아서 찾아가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 평촌점은 건물이 'ㄱ'자 형태로 만들어져 고객 시야에서 사각(死角)지대가 있는데, 대부분 인기 브랜드가 입구에서 바로 보이지 않는 곳에 입점해 있다.

사람의 시선은 보통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이 때문에 같은 진열대라도 인기 상품이나 마진이 큰 상품을 오른쪽에 놓는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대형 마트 PB(Private Brand·자체 상품)는 경쟁 상품과 함께 진열한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PB의 저렴한 가격을 먼저 보게 한 다음 (오른쪽에 놓인) 비슷한 상품이 더 비싸게 팔리는 것을 확인시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상품 종류와 브랜드가 많은 소스류 판매대는 고객이 한눈에 여러 상품을 볼 수 있게 동일 상품을 위아래로 진열하는 기법을 쓴다. 같은 상품을 수평으로 진열할 경우 가지런하게 보이는 장점이 있지만, 위아래에 있는 상품을 보지 못하고 지나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식품팀 김광태 담당은 "소스류는 진열 방법에 따라 매출의 8~10% 정도가 움직일 정도"라고 말했다.

백화점 매장 곳곳에 놓인 판매대의 높이는 82㎝이다. 고객이 허리와 팔도 구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쇼핑할 수 있는 높이라는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79㎝가 업계 표준이었지만, 국민 평균 체형이 커지면서 판매대가 높아졌다.

◇백화점에 창문 달고 벽 허물기도

반대로 유통업체가 일부러 고객의 불편함을 조장할 수도 있다. 백화점 여성복 매장에서 옷을 갈아입는 피팅룸 안에 거울이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옷이 잘 어울리는지 확인하려면 다시 밖으로 나와 거울을 보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옷을 입고 나온 뒤 판매사원으로부터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들을 때 고객의 구매율이 더 높은 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백화점에는 창문과 시계가 없는 것이 보통이다. 고객이 해 가는 줄 모르고 쇼핑을 하라는 의도다. 롯데백화점 김포공항점 5층 가구 매장은 업계의 오랜 금기(禁忌)를 깨고 한쪽 면을 통유리로 만들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자연 채광이 되는 일반 가정집 거실을 연출해 고객의 구매의도를 높이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최근
중국인 관광객의 방문이 증가하면서 매장 구성이 달라진 경우도 있다. 롯데백화점 본점은 지난 4월 2층 여성 영패션 매장 벽을 허물었다. 자신의 매장에 들어온 고객을 다른 매장에 시선을 돌리지 못하게 하는 불문율을 깬 것이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손이 큰 중국인 고객은 짧은 시간에 여러 매장을 휙 둘러보면서 대량으로 상품을 사기 때문에 벽이 없는 매장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