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쓰고 또 쓰고

부산갈매기88 2009. 6. 30. 10:42

루이 16세가 프랑스 왕이었을 때 왕비는 마리앙투아네트였다. 당시 프랑스는 유럽의 부국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귀족들이 부를 누리는 동안 찢어질 정도로 가난하였다.

 

그러나 프랑스의 왕실의 재력은 점점 기울었다. 그런 상태에서 미국의 독립전쟁을 지원하는 데 돈을 쓰다 보니 세금을 인상할 수밖에 없었다. 주된 납세자인 중산층과 하층 인민들이 빵을 달라며 폭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루이 16세는 귀족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려 했지만 귀족들이 반발하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베르사이유궁의 사치는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로 대단했다. 루이 14세 때부터 시작된 사치는 당시에 이르러 더욱 심해졌다. 게다가 왕비 앙투아네트가 사치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앙투아네트는 각각 열두 벌씩의 야외복, 무도복, 간편복을 갖고 있었다. 야외복에는 한 벌 당 일천 프랑 상당의 금과 진주를 수놓았다. 그녀는 일 년 사이에 전담 디자이너에게 8만 프랑, 승마복 재복사에게 3만 프랑을 지불하였다. 궁중 재봉사에게 준 돈은 별도로 계산하고도 그랬다.

 

그녀는 보석 수집에도 열을 올렸다. 그녀는 왕에게 돈을 빌리면서까지 보석을 수집하였다. 갖고 있던 다이아몬드를 팔아 40만 프랑짜리 더 비싼 다이아몬드를 사들이기도 했다. 그녀는 헤어스타일에도 돈을 마구 써댔는데, 이를 본받아 프랑스 귀족 부인들도 사치에 열을 올리게 되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그녀에게 ‘적자(赤字)부인’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불만을 참다못한 프랑스 국민들은 마침내 폭동을 일으켜 베르사이유궁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이 빵을 달라고 외친다는 말을 들은 왕비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시종에게 반문하였다.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될 게 아닌가?”

 

마침내 혁명이 성공하여 그녀는 서른여덟의 나이로 단두대 위에서 처형되었다. 프랑스 혁명이 몰락시킨 것은 그녀와 루이왕조만이 아니었다. 그를 기점으로 국가 권력의 최종 소유자는 특정 계급이 아닌 시민, 즉 모든 사람들로 바뀌었다.

 

 

동화출판사 <행복은 따뜻한 마음에서 온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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