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가장 가까운 데 있는 가장 중요한 사람

부산갈매기88 2009. 6. 29. 09:52

한 할머니가 십 리 길을 걸어 절에 도착했다. 할머니는 먼 길을 머리에 쌀을 이고 온 탓에 숨이 몹시 가빴다.

 

스님이 할머니를 마중하며 물어보았다.

 

“그 짐을 이리 주시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오셨는지요?”

 

할머니가 숨을 고른 다음에 대답했다.

“불공을 올리려고 왔습니다.”

“무슨 불공을 드리려는 거지요?”

“며느리 불공을 드리렵니다. 새로 들어온 며느리가 마음에 영 안 들어요.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의 도움을 받아 며느리의 마음을 좀 고쳐 보려고 합니다.”

 

“허어!”

스님이 탄식했다.

 

“그렇다면 굳이 절에까지 오실 게 없는데 그랬습니다.”

“예?”

“절에 계신 부처님보다 집에 있는 부처님이 더 용하거든요. 얼른 이 쌀을 갖고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애써 십 리 길을 왔는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집에 가시면 부엌에서 앞치마를 입고 하루 종일 왔다 갔다 하며 일하고 있는 분이 한 분 계실 겁니다. 그분이 바로 집에 있는 부처님이고 관세음보살님입니다. 집에 직접 영험을 주실 분이 계시는데 굳이 절에 계신 부처님을 찾으실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제 며느리가 부처님이라는 말씀인가요?”

“물론 지금은 아니지요.”하고 스님이 말하였다.

 

“그러나 만일 할머니께서 이 쌀을 팔아 며느님에게 선물을 해주어 보십시오. 그리고 마음도 좀 써주시고요. 그러면 어느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공손히 모시지 않겠습니까?”

“며느리를 부처님처럼 대하는 것은 난 못해요! 며느리가 나를 부처님처럼 대한다면 그때는 혹 몰라요.”

 

“이렇게 하시지요.”

 

스님이 웃으며 말했다.

 

“먼저 할머님께서 할머니 자신을 부처님처럼 대하시는 겁니다. 친절한 마음을 갖는 것, 그것이 바로 할머니가 할머니 자신을 부처님처럼 대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가슴 안에 훈훈한 봄바람을 넣었다고 여기고 주무시도록 하세요. 깨어나실 때에도 내 윗저고리 안에 따뜻한 기운이 들어 있다고 여기고 한참 누워 계셨다가 일어나세요.”

 

“그러면요?”

“그게 참 영험이 있거든요. 그렇게 하신지 며칠이 지나면 할머니의 얼굴색이 환해지실 거예요. 다시 며칠이 더 지나면 입가에 웃음이 저절로 나오시게 될 거구요. 그러다보면 며느리에게도 친절하게 되실 거고, 그러면 며느리도 할머니께 친절해질 거 아니겠습니까?”

 

“무슨 말씀인지 이제 알겠습니다.”하고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덧붙여 말했다.

“그러나 이 쌀은 스님과 부처님께 드리고 가겠습니다. 집에 가서는 이 널 부처님이 진짜 영험이 있다는 걸 마을 사람들에게 자랑도 할 겁니다.”

 

머리에 인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대신 가벼운 봄바람을 가슴에 품게 된 할머니는 나는 듯이 집으로 돌아갔고, 며칠 뒤부터 할머니의 집 부엌에서는 즐거운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김정빈 <행복은 따뜻한 마음에서 온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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