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이야기

폐교 직전 학교를 14대1 인기학교로… 기적 만든 교장선생님, 평교사 자원하다

부산갈매기88 2012. 8. 23. 15:18

군산 회현중 이항근 교장
[교과과정 바꿔… 재미있는 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문학작품 학생들이 직접 연극 만들게
수업 부담 늘어났지만 교사들도 "한번 해보자"
[전교생 71명뿐이었던 학교가…]
"그 학교는 다르다더라" 소문… 작년 입학설명회엔 전국서 승용차 500대 몰려
[스카우트 제의 모두 거절] "현장에 오래 남아 아이들과 호흡 하고 싶어"

 

"여러 군데서 '교장으로 와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다 거절했어요. 교장은 교사를 지원하는 역할이고, 교육은 일선 교사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 제게는 다시 일선으로 돌아가 학생들과 호흡하고 그들의 감정을 읽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 같아요."

전북 군산 회현중 이항근(55) 교장은 취임 4년 만인 다음 달 1일부터 자진해서 이 학교 수학 교사로 돌아간다. 그는 학교 안팎에서 '성공한 교장'으로 평가받는다. 폐교 위기 수준이었던 학교가 이 교장 임기 동안 전국에서 신입생이 몰려오는 학교로 탈바꿈한 덕분이다. 이 교장이 취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회현중은 전형적인 '폐교 수순을 밟는 시골 학교'였다. 군산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30분 이상 들어가야 하는 곳에 있는 데다가 인근 읍·면의 초등학생들도 군산 시내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학생 수가 꾸준히 줄었다.

4년 전 내부형 교장공모제를 통해 이 교장이 취임했을 때만 해도 회현중의 전교생은 71명. 면 단위의 학교 학생 수가 60명 이하면 통폐합 대상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폐교 직전이었다. 그랬던 학교가 4년이 지난 지금은 189명이 다니고, 신입생 경쟁률이 14대1이 넘는 인기 학교로 성장했다. 그 중심에는 이 교장이 도입한 각종 혁신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 교장은 '학생들이 돌아오는 농촌 학교, 학생들이 행복한 학교'를 내세워 교장에 뽑혔다. 취임한 뒤 가장 먼저 한 일도 군산 시내 초등학교를 돌아다니면서 "성적보다는 성장이 목표인 학교"라고 홍보한 것이다. 물론 슬로건만 내세운 것은 아니었다. 교과 과정도 대대적으로 손봤다. 전 학년을 상대로 한 진로 탐색 교육을 실시하고, 학년별로는 연극(1학년)·생태농업(2학년)·문화탐방(3학년) 수업을 받도록 했다. 연극 수업은 교과서에 나오는 문학 작품들을 학생들이 직접 연극으로 만들어서 공연까지 하도록 하고, 생태농업 수업을 받는 학생들은 매주 한 시간씩 991㎡(300평)의 땅을 직접 일구도록 하는 식이었다. 오후 4시 이후에도 전교생이 모두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외국어·퍼즐·바둑부터 밴드활동, 제과·제빵까지 다양한 활동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오후 7∼9시에도 희망자 지원을 받아 영어·수학 심화학습을 실시했다.

22일 전북 군산 회현중 이항근 교장은 4년 임기를 마치고 다시 수학교사로 돌아가게 된 감회를“설렌다”고 표현했다. 폐교 위기였던 회현중을 전국에서 학생들이 몰려오는 인기 학교로 성장시킨 이 교장은 전국 각지에서‘교장으로 와달라’는 제의를 거절하고“학생들과 호흡하고 싶다”며 평교사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이준헌 기자 heon@chosun.com
당연히 수업 부담이 늘어났는데도 교사들은 이 변화에 동참했다. 원어민 영어 강사는 '조선왕조의 역사'를 영어로 진행하는 아이디어를 냈고, 영어 교사는 영자신문사를 만들어 직접 신문을 발행하자고 제안했다.

"교장이 되면서 약속한 것이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수업 참관을 하지 않겠다는 것, 또 하나는 성적으로 비교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방학 때도 학생들을 '방치'하지 않았다. 학생들로부터 연수계획서를 받은 뒤 국토 순례 캠프, 언론 관련 캠프 등 각종 캠프에 보냈다. 모두 시골 학생들이 하기 어려운 경험이다. 재원은 이 교장이 발로 뛰며 동창회에서 매년 2000만원, 지자체에서 5000만원씩 지원받은 것으로 해결했다.

이런 변화가 서서히 알려지면서 학생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회현중에 가면 뭔가 재미있는 것을 배운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회현중에 가면 서울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소문이 퍼졌다. 2009년 신입생 정원 총 60명 중 관할 지역 학생을 제외한 나머지 32명을 모집하는데 180명이 온 것이 시작이었다. 재학 중인 전교생보다 더 많은 학생이 몰린 것이다. 2010년에는 24명 모집에 257명이, 작년에는 21명 모집에 297명이 몰려 14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작년 입학설명회를 하는 날에는 전국에서 온 500여대의 차가 몰리는 바람에 북새통이 되기도 했다.

회현중의 성공이 알려지면서 임기가 끝나가는 이 교장에게 전국 각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쏟아졌다. 교육 정책 전문가로 영입하겠다는 제의도 있었다.

"올해 입학시험 문제 중에 '인류 멸망의 날이 왔다. 미래 인류를 위해 절대 손상되지 않는 금고에 무엇을 넣어 두겠나'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아이가 '돈' 혹은 '다이아몬드'라고 썼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물질 만능주의에 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직접 체감한 거죠. 저는 현장 체질입니다. 교장이나 정책 전문가도 좋지만 현장에 오래 남아서 아이들과 호흡하며 좀 더 바른 방향으로 끌어줄 교사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실천하는 것뿐입니다."